(3) 스웨덴에 ‘월급도둑’은 없다

2016.03.06 16:16 입력 2016.03.07 11:39 수정

“스웨덴이 지상낙원인 복지국가인 줄 알고 오셨으면 안되는데.”

지난 1월9일 스톡홀름 쇠데른말름의 한 펍에서 만난 미리암 앤더슨 시스(45)가 웃으며 인사했다. 굵고 낮지만 부드러운 목소리에는 흑인 억양이 섞여 독특한 리듬감이 느껴졌다. 앤더슨은 어머니의 성, 시스는 감비아에서 온 아버지의 성이다. 미리암은 오랜 실업 기간을 끝내고 얼마 전 일자리를 얻었다. 스톡홀름의 문화센터와 스웨덴 북부 지방의 청소년센터 두 곳에서 연기를 지도하는 일이다. 22살 때 지역 극장에서 연극 감독으로 데뷔한 그가 연극과 관련한 일을 하는 것은 6년 만이다. 오랜만에 본업으로 돌아온 소감은 의외였다. “기쁘죠. 하지만 일에 지배를 받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1월9일 스웨덴 스톡홀름 쇠데른말름의 한 펍에서 만난 연극연출가 미리암이 ‘행복’이라는 단어를 듣고 연상되는 표정을 보여주겠다며 환호하듯 두 손을 들어올리고 있다.

지난 1월9일 스웨덴 스톡홀름 쇠데른말름의 한 펍에서 만난 연극연출가 미리암이 ‘행복’이라는 단어를 듣고 연상되는 표정을 보여주겠다며 환호하듯 두 손을 들어올리고 있다.

미리암은 자신을 전형적인 노동계급이라고 소개했다. 어머니는 어린이집 교사였고, 미리암은 학교 다닐 때부터 식당 종업원, 어린이집 보조교사 등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했다. “세상 모든 것들은 우리로부터 나오잖아요. 자부심이 있죠.” 꿈은 연극 감독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드라마 학교에 다니면서 연출 코스를 밟았다. 극장 건물에서 식당 일을 하면서 기회를 엿보다 마침내 꿈을 이뤘다. 스웨덴의 흑인 여성 1호 연극 감독이었다. “<강함과 약함>이라는 독일 연극인데 작품의 메시지가 참 좋았어요. 그때 22살이었는데 22명이서 만들어낸 연극이었죠. 첫 무대 때 관객들이 박수를 치던 순간을 잊을 수 없어요.”

2008년 유럽 금융위기가 시작되면서 그의 삶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문화예술 분야부터 타격을 입었고, 미리암은 실업자가 됐다. 실업급여가 나오지만 2년 넘게 일자리 없이 지낼 수는 없었다. 그는 국가직업훈련센터에 등록해 운전연수를 받고 시내버스 운전기사로 취직했다. 곳곳마다 대량 실업이 벌어진 상황에서 운전이 여성들에게 ‘블루오션’으로 떠오르던 때였다. 여성들이 안전운전을 한다 해서 회사 쪽에서도 좋아했다.

버스기사 생활은 쉽지 않았다. 회사가 프랑스 기업에 팔리더니 근무 관행에 변화가 생겼다. 초과근무 수당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스웨덴에서는 직원들에게 함부로 야근을 시켰다가는 회사가 파산한다. 일이 늘면 직원의 근무시간을 늘리는 대신 채용을 더 해야 한다는 것이 사회의 상식이었다. 그러나 육아 등의 이유로 법정 근로시간의 30~85% 내에서 시간제로 일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위기 국면에서 칼날로 작용했다. 원래는 노동자가 자발적으로 업무시간을 줄여야 하지만, 회사가 일방적으로 정상 근무시간의 70~80%만 일하게 하고 급여를 줄이는 일이 허다했다. 미리암은 파견사원처럼 회사가 지정한 시간과 코스에 운전해야 했다. 급여도 문제였지만 일방적으로 일의 양과 내용을 결정하는 회사 눈치를 보고 주눅들게 된다는 점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

[행복기행] (3) 스웨덴에 ‘월급도둑’은 없다

“스웨덴 기업이었다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여성에 대한 임금차별은 없었다. 그 점은 노동조합이 나서 철저히 지켜냈다고 한다. “어떤 모임에 가면 예술가로서 저를 높게 평가하지만, 어떤 모임에서는 버스 운전기사라는 점에 존경을 보내요. 하지만 적성에 안 맞아 너무 괴로웠어요.” 미리암은 “시장자유주의가 확장되면서 사회민주주의의 협약을 위협하고 노동자들을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스웨덴도 예외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미리암은 버스운전 일을 1년 반 정도 하다 그만두고 한동안 단기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 시절 미리암에게 중요한 것은 친구였다. 일주일에 한두 번 아파트에 마음 맞는 사람들을 초대해 요리를 해주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채식 전도사예요. 채식이 얼마나 맛있고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지 알려주는 게 보람 있죠. 특별한 채식요리를 만들기도 하지만 피자 같은 일상적 음식을 오로지 채소로만 만들어 친구들을 놀라게 해줘요.”

돈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사회적 관계인 듯했다. 다른 사람들과 이어져 있다는 생각, 그것이 주는 연대의 감정과 따뜻함. 미리암은 “연극을 하더라도 같이 봐주고 즐거워해줄 친구가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말했다. 친구는 아무래도 뮤지션, 배우 등 예술인들이 많았지만 어린이집 교사, 정보분석가, 백화점 직원, 디자이너 등 연령과 계층을 가리지 않았다. 요가를 통해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데도 신경을 썼다.

“어떤 방식으로 친구를 사귀느냐고요? 글쎄요. 워낙 다양해서 모르겠는데. 그냥 오다가다 만나서 마음 맞으면 친구 하는 거죠.” 같은 학교를 나왔거나 비슷한 또래이거나, 혹은 비슷한 일을 하는 처지가 아니면 친구가 되기 쉽지 않은 한국의 7년차 직장인의 질문이 그에게는 낯선 듯했다. 얼마 전에는 미리암의 사촌이 문화부 장관이 됐다. 전화로 문화예술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주고받는다. 사촌이 장관이라는 것도 별반 대수로운 일 같지는 않았다.

미리암이 전한 지난 몇 년간의 이야기는 확실히 책에서 보고 생각한 ‘복지국가 스웨덴’의 이미지와는 달랐다. 하지만 혹여 취직 못한 친구에게 상처가 될까 싶어 e메일 한 통을 보내면서도 고민해야 하는 한국에서의 내 생활을 생각하면 미리암이 말하는 ‘친구의 중요성’이나 ‘친구 사귀는 법’은 감동적이었다. ‘일이 있어야만’ ‘잘나가야만’ ‘남 보기 번듯해야만’ 자신을 사랑할 수 있고 인간관계의 그물 속에 안길 수 있다는 생각에서 멀찌감치 벗어나 있는 듯해서였다.

미리암은 이번 달부터 하게 될 일에도 기대가 크다. “전문 배우만 가르쳐봤는데 아마추어 연기지망생을 가르친다니 또 다를 거 같아요.” 미리암은 2011년 연극계에서 아프리카계 여성의 지위 향상에 기여한 공로로 공공재단에서 수여하는 ‘올해의 여성’상을 수상했다. 그는 “내가 연극에 입문할 때 흑인들의 발음을 교정하려 한다거나, 이민자들에게 불리한 스웨덴 고전만을 좋은 작품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런 관행들과 맞섰다”고 말했다. 일이란 밥벌이인 동시에 사회와 관계를 맺는 과정이다. 일을 통해 사회를 더 낫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미리암은 “죽을 때까지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단, 하루 2시간만요. 당신은요?” 미리암과 나는 맥주잔을 부딪치며 웃었다. 일에 대한 자긍심과, 일에 지배받지 않겠다는 자존심이 이렇게 빛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행복이란 이런 거죠. 내가 자유로운 인간이라 느끼는 것.”

[행복기행] (3) 스웨덴에 ‘월급도둑’은 없다

스웨덴 직장인들이 경제위기를 어떻게 겪었는지에 대해 들을 기회가 또 있었다. 스웨덴국립은행에서 2003년부터 경영기획직으로 근무하는 황지현씨(43)는 “지난 10년간 확실히 스웨덴 사회도 많이 변했다. 그러나 사고방식이 다르면 달리 대처하는 모습도 보게 된다”고 말했다.

2008년 경제위기의 여파로 구조조정이 진행됐다. 스웨덴국립은행에서도 수익이 나지 않는 사업부문을 동유럽의 라트비아처럼 인건비가 싼 국가로 이전시키고 2000명 가까이 해고했다. 하지만 그 절차는 까다로웠다. 구조조정 전에 비용이 낭비되는 부분을 점검하고 중복사업부터 없앤다. 일자리를 줄이는 것은 최후의 선택이다. 회사를 나간 사람에게는 퇴직금을 주고, 국가에서도 실업급여와 직업교육을 보장한다. 그럼에도 일터에서 버려졌다는 아픔을 느낀 사람은 적지 않았다.

스웨덴의 직장인들도 일에 대한 압박에 시달리는 것은 마찬가지다. 스톡홀름의 회사원들은 점심시간 30분, 오후 30분가량 피카(티타임)를 제외하고는 잡담이나 채팅도 하지 않고 일한다. 누군가 임신하면 출산 6개월 전부터 빈틈없는 인수인계 작업에 들어간다. 스웨덴의 부러운 육아휴직 뒤에는 동료들 모두가 총력을 다해야 하는 예비 절차가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사무직 직원들의 정신적 스트레스도 적지 않다. 막중한 임무 속에 정신적 한계에 몰려 아무 일도 못하게 되는 이들도 나온다. 스웨덴에서는 흔히 “벽에 부딪혔다”고 표현한다.

[행복기행] (3) 스웨덴에 ‘월급도둑’은 없다

벽에 부딪힌 직원들은 어떻게 될까. 황씨의 직장에서 한 13년차 차장급 직원이 일하다 갑자기 우는 등 급작스럽게 감정조절에 어려움을 보였다. 10년 넘게 열심히 일해 왔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던 사람이었다. 회사는 병가를 권유했지만 경력상의 실책이 될까 걱정한 직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저성과자 혹은 ‘월급도둑’이라는 손가락질 대신에, 본부장이 “아픈 것은 당신 잘못이 아니며 회사가 그렇게 만들었으니 우리가 미안한 일”이라면서 직접 설득했다. 직원은 2주 동안 쉬었고 의사의 진단을 받아 점차 근무시간을 늘려가며 8개월 만에 회사로 돌아왔다. 황씨는 “이런 일터에서라면 인간적으로 모멸을 당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젊은 직장인들은 현재의 스웨덴 사회에 대해 마냥 긍정적이지는 않았다. 1월10일, 시내 중심가의 찻집에서 에밀리(27)와 로레나(30), 사라(30), 다니엘라(31)를 만났다. 네 여성의 수다는 끝이 없었다. 비싼 월세에 대한 푸념, 새로 시작한 공부의 즐거움, 직장에 다니면서 힘들었던 이야기 등으로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지난해 8월 동부의 노르셰핑에서 올라온 대학생 에밀리는 생활비의 60%가 집세로 나간다. 집주인과 직접 계약한 것이 아니라 월세권을 중간에서 팔아넘기는 브로커와 계약한 통에 남들보다 더 많이 내고 있다. 에밀리는 호텔 프런트데스크에서도 일했고, 전화 상담사로 일한 적도 있다. 지금은 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한다. 그는 “부모 세대는 ‘일자리가 많은데 왜 굳이 대학에 가느냐’고 했지만 우리는 대학교육을 받아도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쉽지 않다. 세계는 점점 더 경쟁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미용사로 일하다 어린이집 교사로 전직한 로레나는 “미용사 시절 임금을 떼인 적이 있다. 적성에도 맞지 않았고 일도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그래도 지금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어쨌거나 좋아하는 일이나 관심 분야를 찾았고, 여유가 있고, 건강하기 때문이다. 직장에 다니는 것이 행복하지 않다면 ‘그만두면 된다’는 생각이 뿌리박혀 있는 듯했다.

지난 1월12일 스웨덴 주요 기업들의 본사와 은행들이 몰려 있는 스톡홀름 중앙역 광장. 오후 6시까지 역 주변 빌딩들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다.

지난 1월12일 스웨덴 주요 기업들의 본사와 은행들이 몰려 있는 스톡홀름 중앙역 광장. 오후 6시까지 역 주변 빌딩들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다.

사라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장애인 도우미, 어린이집 보조교사 등의 일을 했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잘하려면 야근도, 회식도 일의 일부라 생각해야 한다”는 얘기를 해줬더니 사라는 깜짝 놀라며 이렇게 물었다. “그럼 장애인은 어떡하나요?” 사라는 일을 그만두고 지난 학기부터 대학에서 에밀리처럼 사회학을 공부하고 있다. 교사가 되기 위해서다. 스웨덴에서는 언제든 대학에 들어가 공부할 수 있다. 사라는 “아시아식으로 20대 초반에 압박을 하는 게 좋은 면도 있는 것 같다. 20대 내내 적성을 찾아 헤매다 시간을 보내는 것 같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사람은 자기가 잘한다고 생각할 때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잘하기 위해서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질책을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이번에는 내가 놀랐다. 서울의 대형 문구점에서는 요즘 ‘자기학대형’ 문구가 쓰인 공책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지금 니 성적에 잠이 오냐” “코끼리도 풀만 먹는데 너 따위가” “니 남자친구가 왜 오징어인지 몰라?”라며 성적과 몸매, 이성의 외모 등을 콕 집어 경쟁심리를 유발한다. 비단 상술만이 아니다. 나 스스로도 누군가에게 문제가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그러게 좀 더 열심히 했어야지”라는 말을 쉽게 내뱉곤 했다.

스웨덴에는 라곰(lagom)이라는 말이 있다. ‘덜 해서도 안되고 더 해서도 안된다’는 뜻이다. 성취에 목매지 않고, 앞선 사람을 부러워하지도 말고, 뒤처진 사람을 멸시하지도 말자는 뜻이다. 최근에는 라곰 정신 때문에 젊은이들이 성취욕을 잃어버리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있지만 여전히 이런 생각이 스웨덴 사람들 직업관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스톡홀름에서 5년째 어린이집 교사로 일하는 다니엘라는 호텔업무에 대해 배우는 직업학교를 졸업했다. 호텔 레스토랑에 취직했지만 도무지 적성에 맞지 않아 괴로워했다. 가족들은 “조금만 더 버텨봐라” “학교에 다닌 시간이 아깝지 않으냐”고 하는 대신 “하기 싫으면 그만두고 네가 정말 원하는 일을 찾아보라”고 했단다. 다니엘라는 대학에 다시 들어가 지금의 일을 찾았고 만족한다. 더 빨리, 더 좋은 직업을 찾아 정착한 사람에 대한 부러움이나 조급함은 없었다. 이런 것들도 라곰 정신과 이어져 있다.

신미성씨(38)는 대구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도서관 사서로 일하다 2003년 스웨덴인 남편과 결혼해 스톡홀름으로 이주했다. 신씨는 이곳의 대학에 다시 들어가 유아교육을 공부하고 현재는 어린이집 교사로 일한다. 신씨는 “이곳에서는 문제가 생기면 담당자에게 먼저 책임을 묻고 비난하는 대신에 문제가 왜 일어났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먼저 논의한다. 유치원 교사들의 회의에 주방 조리사가 불쑥 끼어들어 아이디어를 내기도 하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에서도 학생이 하고자 하는 열의만 있으면 최대한 도와주려는 분위기이며,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을 가르고 평가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라곰 정신이 좀 더 행복한 직장을 만드는 사례다.

[행복기행] (3) 스웨덴에 ‘월급도둑’은 없다

스톡홀름에서 만난 모든 이들에게 “행복이란 무엇이라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정작 질문을 던지는 내게, 이런 질문이 몹시 어색했다. 스스로에게 해본 적이 없는 질문이었던 탓이다. 가수 신해철은 ‘나에게 쓰는 편지’라는 노래에서 “돈, 큰 집, 빠른 차, 여자, 명성, 사회적 지위 그런 것들에 과연 우리의 행복이 있을까”라고 물었다. 노래가 나온 것은 1991년이었으나 25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그런 물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스웨덴에서 만난 사람들은 ‘행복이 뭘까’라고 물으면 하나같이 즉답하지 않았다. 대부분 몇 십초라도 생각에 잠겨 자유, 건강, 여유, 가족, 만족 이런 단어를 떠올린 뒤 “저는 행복한 거 같아요”라며 미소를 지었다. 미리암의 말대로 스웨덴이 결점 없는 사회는 아니었다. 그러나 바로 이 ‘몇 십초’ 동안에 떠오르는 것들이 모여 우리와는 좀 다른 사회를 만든 것처럼 느껴졌다.

■특별취재팀

구정은 김세훈 장은교 김보미 박은하 정희완 김정근 기자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