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 추가 제재를 단행한 미국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두 딸을 제재 명단에 올리면서 그동안 감춰졌던 두 딸의 정체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정보기관은 푸틴 대통령의 자산 중 일부를 가족들이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제재 대상을 확대했다.

백악관은 6일(현지시간) 푸틴 대통령의 전처를 비롯해 성인인 두 딸 마리아 블라디미로브나 보론초바(37)와 카테리나 블라디미로브나 티호노바(36)를 제재 대상에 포함시켰다. 백악관은 “이들이 러시아 국민의 비용으로 부를 누려왔다”며 “이들 중 일부는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획하는데 필요한 지원을 제공한 데 책임이 있다”고 설명했다.

로이터통신과 가디언 등에 따르면 푸틴의 장녀 마리아는 내분비학자로 의료서비스 분야 전문 러시아 투자회사인 노멘코를 공동 경영하고 있다. 마리아는 크렘린궁으로부터 수십억달러를 지원받은 정부 유전학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는데 이 프로그램을 푸틴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미 재무부는 밝혔다. 마리아의 남편 요리스 요스트 파센은 네덜란드 사업가로 푸틴 대통령 주변 엘리트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가스프롬방크에서 일한 바 있다.

차녀인 카테리나는 현재 정부와 방위산업을 지원하는 기술경영인으로 종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0년대 중반 로큰롤 댄스 러시아 대표 선수로 활동하며 여러 국제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이들은 푸틴 대통령과 그의 전 부인인 알렉산드로브나 루드밀라(64) 슬하의 자식들이다. 루드밀라는 1983년 아에로플로트 승무원 재직 당시 옛소련의 정보지관인 KGB의 장교였던 푸틴 대통령과 결혼했다. 두 사람은 지난 2013년 이혼했다.

푸틴은 그동안 보안 등의 이유로 가족들의 정보를 비밀에 부쳐왔다. 푸틴은 지난 2015년 연례 기자회견에서 “나는 딸들이 정말 자랑스럽다. 유럽 언어 3개에 능통하다”면서도 “가족 문제에 대해서는 결코 얘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딸들이 사업이나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딸들이 어디에서 일하고 뭘 하면서 사는지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말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로이터통신은 미국이 푸틴 대통령의 딸들이 그의 재산 은닉을 돕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고 전했다. 크렘린궁은 지난 2월 “푸틴 대통령은 자신이 선언한 자산 외에 다른 어떤 자산도 가지고 있지 않다”며 개인 자산에 대한 서방의 제재가 무의미하다고 밝혔지만 신뢰할 수 없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백악관은 푸틴 대통령의 두 딸이 제재 대상에 포함된 이유에 대해 “푸틴의 자산 가운데 상당 부분이 가족들에게 은닉돼 있다”며 “이를 목표로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 딸들의 사생활과 관련해서는 알려진 것이 드물지만 일가의 재산 형성에 의혹을 제기하는 보도에서 이들의 이름이 거론된 바 있다. 카테리나는 지난 2013년 푸틴 대통령의 측근이자 ‘푸틴의 지갑’으로 불리는 로시야 은행의 공동 소유자인 니콜라이 샤말로브의 아들 키릴 샤말로프와 결혼했다. 로이터통신의 2015년 조사에 따르면 이들 부부는 프랑스 휴양지 비아리츠에 370만달러의 해변 별장과 20억달러 이상의 기업 주식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추정됐다. 당시 조사에서 로이터는 “주식 인수와 국영 사업 거래, 프랑스 부동산, 과두 정치인들과의 연결은 푸틴의 자녀들의 삶을 보기 드물게 보여준다”며 “이를 통해 또한 러시아 최고 권력자와 그를 둘러싼 엘리트 측근들의 가족 재정을 알수 있다”고 보도했다.

범죄·부패 탐사 전문 매체 OCCRP는 지난 2020년 카테리나의 남편 키릴이 결혼 4개월 만에 러시아 최대 석유화학 기업 사부르의 주식 3억8000만달러(약 4100억 원)어치를 단돈 100달러(약 11만원)에 사들였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키릴은 이후 자산을 20억달러 넘게 불려 2016년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브스 억만장자 리스트에 러시아 최연소로 이름을 올렸으나 2018년 이혼 후 억만장자 리스트에서 빠졌다.

푸틴 대통령은 31살 연하 애인인 리듬체조 선수 출신 알리나 카바예바(38) 사이에서 4명의 자녀를 둔 것으로 알려졌다. 자녀들은 모두 미성년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뉴욕포스트 등 외신은 푸틴이 카바예바와 4명의 자녀를 스위스의 한 별장으로 피신시켰다고 보도했다. 이후 알리나와 자식들을 스위스에서 추방해야 한다는 국제청원도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