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너 믿었다가 불똥 튄 아프리카···더 커진 불확실성

2023.06.28 16:39 입력 2023.06.28 16:49 수정

2022년 10월2일 부르키나파소에서 한 시민이 러시아 국기를 들고 오토바이를 타고 있다. AP연합뉴스

2022년 10월2일 부르키나파소에서 한 시민이 러시아 국기를 들고 오토바이를 타고 있다. AP연합뉴스

바그너 그룹이 반란 중단 후 와해되면서 아프리카가 덩달아 불확실성에 빠졌다. 바그너 그룹이 단순 용병 조직 이상으로 정치·경제·안보에 깊숙이 개입한만큼, 이들에 의존한 아프리카 국가들 또한 더욱 취약해지리란 전망이 나온다.

27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가 미 국방부 유출 문서 등을 토대로 정리한 내용을 보면, 바그너 그룹은 아프리카 13개국에서 현지 정권과 결탁한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이들이 전투, 훈련, 정권 수호 등을 군사적 기능을 직접 제공한 국가만도 리비아, 수단, 모잠비크, 리비아, 말리, 중앙아프리카공화국(중아공) 등 8개국이며, 이밖에도 정치적 조언, 정보 작전, 물류와 경제 등에도 개입했다. 중아공과 말리, 리비아에선 군사, 정치, 경제 등 모든 영역에서 폭넓게 활동했다.

바그너 그룹은 정치·경제·안보를 혼합한 비즈니스 모델을 활용해왔다. 정권을 수호하는 대가로 상업적 대가를 받는 식으로, 중아공에서의 활동이 대표적이다. 2012년쯤부터 무력 분쟁에 시달린 중아공은 구 식민세력이던 프랑스가 군사 개입을 축소하면서부터는 바그너 그룹에 반군 진압과 치안 유지를 맡기다시피 했다. 바그너 그룹은 중아공에서 반군 순찰, 검문소 관리, 고위급 인사 경호를 제공하는 대신 경제적 이권을 챙겨 러시아를 보조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이들은 중아공에서 양조장·금광·목재 생산 사업을 벌였으며 면세 혜택을 누렸다. 수도의 공항에는 프리고진과 관련된 러시아 비행기를 위한 전용 활주로도 있었다.

이 같은 밀착은 바그너 그룹이 아프리카에서 벌인 활동의 극히 일부다. 바그너 그룹은 지난 26일 텔레그램에서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러시아의 이익을 위한 엄청난 수의 작업”을 수행했다고 주장했다. 서방 분석가들은 아프리카에 바그너 대원이 약 5000명 있다고 추정한다.

바그너 그룹 대원들이 말리 북부에서 헬리콥터에 탑승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바그너 그룹 대원들이 말리 북부에서 헬리콥터에 탑승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그러나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지난 25일 하루만에 반란을 멈추며 아프리카에도 불똥이 튀었다. 바그너 그룹이 와해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그가 아프리카에 광범위하고 뿌리깊게 뻗어놓은 사업들의 운명 또한 불확실해진 것이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러시아에서 온 군대”가 중아공과 말리에서 계속 협력할 것이라고 했지만, 그 군대가 바그너 그룹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프리고진과 협상하면서 해외에 있는 바그너 그룹에 대한 통제를 허용했는지 또한 불분명하다.

이들에 의존했던 아프리카의 취약 국가들은 더 큰 불확실성을 마주하게 됐다. 무장세력 진압, 내정 다툼 등에서 당장의 필요를 위해 바그너 그룹과 결탁한 것이 더 큰 악재로 돌아온 모양새다. 반인도 범죄와 자금·무기 세탁으로 악명높은 이들이 사라지는 것이 장기적으론 도움이 되겠지만 단기적으로는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아프리카 국가들은 반란 사태를 별도 언급하지 않으며 러시아와 바그너 그룹 중 한 쪽의 편을 모양새를 지양하고 있다.

말리의 한 정치평론가는 “모두가 두려워하고 있다. 러시아에서 일어나는 일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리란 점을 모두가 안다”고 WP에 말했다. 중아공 당국은 “중아공에는 평화가 필요하다. 발전을 진심으로 지원할 국민과 국가가 함께하는 평화만이 필요하다”고만 밝혔다.

바그너를 불러들인 권위주의 정권과 독재자들은 ‘바그너 이후’를 두고 딜레마에 빠졌다. 우선 러시아가 바그너 그룹을 대체할 다른 용병이나 지원을 보낸다 하더라도 신뢰는 예전같지 않으리란 전망이 나온다. 정권 안위를 위해 고용한 바그너 그룹이 반란을 일으키는 걸 보면서 이들의 충성심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마이클 멀로이 전 미 국방부 부차관보는 “조국에서 쿠데타를 일으키려 한 이상 바그너 그룹은 지나치게 불안정하고, 정권에 위협이 되는 존재로 보일 것”이라고 로이터통신에 밝혔다.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 AP연합뉴스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 AP연합뉴스

바그너 그룹이 러시아 정규군에 흡수된다 해도 문제다. 아프리카 국가들로선 바그너 그룹이 ‘공식적으론’ 러시아와 별도의, 비국가적 조직이기 때문에 관계를 맺기 수월했던 측면이 있다. 한 미 정부 관계자는 “아프리카 국가들은 러시아군의 주둔에 서명한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이미 지도자들 몇몇은 자국의 정적을 깊이 우려하고 있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향후 아프리카에서 바그너 그룹이 러시아와 더 밀접한 방향으로 운영될지, 아니면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미니 바그너’로 분열될지는 명확하지 않다. 한 유엔 관계자는 “바그너 그룹이 완전히 해체된다면, 아프리카에 있는 조직은 더이상 러시아의 재보급을 받지 못할 것”이라며 “임금이 지급되지 않고 정치적·군사적 지원까지 사라진다면 이들은 조직을 나와 내전이나 폭동이 벌어지는 국가에서 일자리를 찾을 것”이라고 BBC에 밝혔다.

다만 바그너 그룹의 영향력이 일거에 사그라들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그동안 아프리카에서 바그너 그룹의 덕을 톡톡히 본 러시아가 가만히 두고 보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엔리카 피코 국제위기그룹 연구원은 “러시아는 바그너와 함께 아프리카에서 매우 강력한 비즈니스와 영향력을 만들었다. 러시아의 내부 투쟁이 있더라도 이 시스템은 실패하지 않고, 러시아가 실패하도록 놔두지도 않을 것”이라고 블룸버그에 말했다.

정책분석기관 센트리의 나탈리아 두칸 연구원은 “상황이 극도로 불안정하다”면서도 “바그너 그룹은 탄력있고 두려움이 없고 창의적이어서 이들이 카드로 쌓은 집처럼 즉시 무너질 가능성은 적다”고 AP통신에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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