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인권운동가 류샤오보(劉曉波)가 13일 저녁 중국에서 ‘고립’된 채 세상을 떠났지만 사후에도 ‘자유’를 찾기 위한 싸움은 끝날 것 같지 않다. 고인의 장례를 어디서 어떻게 치를지, 가택연금 중인 부인 류샤와 남은 가족은 출국할 수 있을지를 두고 서방 국가와 중국 사이에 벌써부터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서방 “류샤의 출국을 허하라”
서방 국가들은 류샤오보의 죽음을 애도하며 류샤와 가족에게라도 자유를 주라고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13일 오후 5시35분 류샤오보가 운명할 때 류샤는 옆을 지켰다. 선양 중국의과대학 제1부속병원 측은 13일 밤 외국 언론을 상대로 한 기자회견에서 “류샤와 류샤오보의 형 류샤오광, 동생 류샤오쉬안이 임종했다”고 밝혔다. 류샤오보는 부인에게 “잘 살아달라”는 한마디를 남겼다고 한다.
미국 정부는 애도와 함께 부인 류샤의 출국을 촉구했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13일(현지시간) 성명을 내 “부인 류샤와 류샤오보가 사랑한 모든 이에게 진심 어린 애도의 뜻을 전한다”며 “류샤오보는 중국 내 자유, 평등, 법치를 위한 투쟁으로 노벨평화상의 정신을 구현했다”고 밝혔다. 이어 “중국 정부는 류샤의 희망에 따라 가택연금에서 풀어주고 중국을 떠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유럽연합(EU)은 “류샤와 가족들이 선택한 방식과 장소에 고인을 묻을 수 있도록 허가해 마음 편히 고인을 추모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요구했다. 류샤오보를 대리해 온 미국의 인권변호사 재러드 겐서는 미국 CNN에 “지난 48시간 동안 류샤와 모든 연락이 단절됐다”며 “류샤에게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매우 걱정된다”고 말했다. 겐서는 “류샤가 원하는 곳 어디든 갈 수 있도록, 류샤가 남편을 원하는 곳에 묻을 수 있도록 전세계가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사하로프 인권상을 수상한 후자(胡佳) 등 류샤오보의 동료들은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로 ‘류샤 살리기’ 여론전에 나섰다.
그러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관계를 의식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은 온도차가 있었다. 션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이 깊은 슬픔에 잠겼다”며 유족에게 애도를 표했지만 류샤오보 및 가족의 처우에 관한 비판이나 요구는 하지 않았다. 프랑스를 방문 중인 트럼프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시 주석을 두고 “내 친구”라며 “위대한 지도자고 유능한 사람으로 그를 매우 존경한다”고 말했다.
■중국, “류샤오보 사건은 내정, 외국은 말할 위치 아니다”
중국 외교부 겅솽 대변인은 14일 오전 성명을 내 “중국은 법치 국가로 류샤오보 사건을 어떻게 다룰지는 내정이다. 다른 나라들은 (류샤오보의 대우에 관한) 부적절한 언급을 할 위치에 있지 않다”고 반박했다. 그는 오후 정례브리핑에서도 “그런 사람에게 상을 주는 건 노벨평화상에 대한 모독”이라고 폄하했다. 류샤오보 주치의들도 13일 밤 외국 언론을 상대로 기자회견을 열어 “류샤오보의 병이 매우 특이한 경우로 (암이) 1주일 안에 급속히 퍼졌다”며 “치료에 최선을 다했다”고 주장했다.
외국 언론은 류샤오보의 사망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지만 중국 바이두 등 중국의 주요 포털 사이트에서는 류샤오보의 사망 소식을 찾아볼 수 없다. 중국 당국은 국내 언론매체에 류샤오보 사망 관련 소식을 보도하지 말라는 통지를 내려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선양 사법국이 13일 오후 9시에 류샤오보의 사망 소식을 알린 후 관영 신화통신은 오후 10시 28분에 두 문장짜리 영문 기사를 올렸다. 14일에도 병원 기자회견 내용을 전하는 영문 기사만 다뤘다. 환구시보의 영문판인 글로벌타임스는 14일 ‘류샤오보는 서방에 의해 잘못된 길로 간 희생자’라는 제목의 사설을 게재하고 “류샤오보는 서방의 지원을 업고 중국의 주류 사회에 대적했다. 이것이 그의 비극적 삶을 결정했다”고 적었다. 반면, 대만과 홍콩 언론들은 류샤오보의 소식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