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가사도우미들의 '아파트 습격사건'

2017.07.17 09:27 입력 2017.07.17 17:19 수정
김진호 선임기자

지난 12일 뉴델리 외곽 마하군 모던 컴플렉스 단지에서 벌어졌던 가정부들의 폭동 소식을 전한 현지 신문.  | 타임스오브 인디아 홈페이지

지난 12일 뉴델리 외곽 마하군 모던 컴플렉스 단지에서 벌어졌던 가정부들의 폭동 소식을 전한 현지 신문. | 타임스오브 인디아 홈페이지

인도의 한 고급 아파트 단지에서 발생한 ‘마담’들과 가사도우미 간의 싸움이 집단 간의 ‘계급전쟁’으로 확대됐다. 15일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주요 외신에 따르면 사건이 발생한 것은 지난 12일 아침, 뉴델리 외곽의 노이다에 위치한 마하군 모던 컴플렉스 아파트단지에서다. 도우미와 주부의 다툼 끝에 도우미의 억울함이 전해지자 수백명의 동료 도우미들이 돌과 쇠몽둥이를 들고 문제의 아파트 단지로 쳐들어갔다. 그러자 단지 내 2700가구의 주민들은 도우미들을 모두 집단 해고했다.

사건은 지난 11일 세티(34·교사)라는 여성이 도우미 비비(30)가 1만7000루피(약 30만원)을 훔쳤다고 주장하면서 비롯됐다. 하지만 비비는 돈을 가져간 적 없다고 주장한다. 경찰에 따르면 비비는 같은 단지의 다른 집에서 그날 밤을 보낸 것으로 밝혀졌다.

사달은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다. 비비가 전날 밤 집에 돌아오지 않자 집주인의 학대를 의심한 빈민가 도우미들을 필두로 주민 수백명이 아파트 단지로 몰려온 것이다. 3시간 동안 계속되던 이들의 ‘아파트 습격사건’은 비비가 같은 단지의 다른 아파트에서 발견된 뒤에야 잦아들었다.

비비는 “다음날 아침 난리가 났다. 여러 명이 들어오더니 경비가 나를 밖으로 끌어냈다”고 말했다. 세티는 다음날 아침 8살배기 아들을 학교에 보내려고 깨우던 찰나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집을 향해 달려오면서 “오늘 우리는 그 마담을 죽일 것이다”라고 외쳤다고 기억했다.

아파트 경비원들이 빈민가 주민들을 때리며 막았지만 역부족이었다. 일부 여성들은 1층에 위치한 세티의 집 발코니로 뛰어 올라와 화분으로 유리 문을 깨부쉈다. 세티는 침입자들이 집안을 샅샅이 뒤지는 1시간 반 동안 남편과 아이와 함께 목욕탕 문을 잠그고 숨어 있었다. 세티는 “우리는 목숨을 건질 생각만 하고 있었다”면서 울먹였다.

세티는 자신이 평소 도우미가 일을 시작하기 전에 차를 한잔 권하는 등 관대한 주인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러한 관계에 신뢰를 잃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집을 침범한) 도우미들은 우리를 증오했다. 분명한 계급 갈등이다. 그들은 ‘왜 저들이 돈과 모든 것을 갖고 있는가’라고 물으면서 우리를 질투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비비의 진술은 달랐다. 세티가 두 달치 월급 1만2000루피(약 21만원)의 임금을 주지 않고, 자신을 도둑으로 몰았다고 주장했다.

소식이 전해지자 단지 주민들은 모든 도우미들을 해고하겠다고 발표했다. 힌두스탄타임스에 따르면 “도우미들을 해고한 당일과 다음날 엄청나게 많은 가정들이 바깥에서 음식을 주문했다”고 전했다. 입주자의 한사람인 맘타 판데이(50)는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 그들이 단합하는 데 우리가 못할 게 뭐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주부 역시 “집주인들이 도우미들에게 허술하게 보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도우미들은 목에 걸린 뼈와 같아서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다”면서 “서로를 필요로 하는 만큼 서로 존중하면서 공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아파트의 경비책임자 아스호크 야다브도 뉴욕타임스에 안방마님들이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마담들과 도우미들은 일종의 공생관계”라면서 “당장은 자신들의 공동체를 폭력적인 방식으로 공격한 도우미들에 분노하고 있지만, 얼마 안가서 새 도우미를 찾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극심한 빈부격차 속에 인도의 신흥 부자들은 어떤 정식 계약이나 법적인 의무가 없이 헐값에 도우미를 구할 수 있다. <인도의 가정부, 우리 집안의 불평등과 기회(Maid in India:Stories of Inequality and Opportunity Inside Our Homes)>라는 책의 저자인 트립티 라히리는 “도우미들은 처우에 분노한다 해도 일자리를 잃을 것을 두려워 한다”고 말했다.

인도의 가사 노동자와 주인 간의 갈등은 종종 범죄로 이어지지만, 이번처럼 집단 싸움으로 번진 것은 지극히 이례적이다. 인도의 도시에서는 도우미들이 대부분 주인집에 거주하기 때문에 다른 도우미들과 처우를 비교하기도 힘들며 집단행동을 조직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뉴델리 교외의 신흥주택가에는 고급 아파트단지와 빈민가가 붙어 있어 “‘우리’와 ‘그들’ 간의 갈등이 일어날 완벽한 조합이 만들어졌다”는 게 라히리의 분석이다.

빈민가 주민들은 집단행동의 대가를 혹독하게 치러야 했다. 비비의 마을에는 12일 밤 경찰이 들이닥쳐 60명을 구금하고 13명을 체포했다. 노이다 경찰서장 아룬 쿠마르 싱은 “집주인들이 곧바로 ‘도우미들은 방글라데시에서 온 불법이민자들’이라고 (소셜미디어에서) 거짓주장을 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싱 서장은 “그러면 어떻게 도우미들이 몇년째 당신들 집에서 숨어 지냈느냐”고 묻자 “형제 간에 잘 지내다가도 사이가 벌어지면 그날이 형제가 범죄자가 되는 날”이라는 답이 돌아왔다고 전했다.

인도에는 현재 400만명의 가사 노동자가 있으며 대부분 어떠한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한 채 헐값에 품을 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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