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기부양책이 이끄는 세계 경제 활력의 딜레마…"한 손엔 호황, 다른 손엔 인플레이션"

2021.06.29 17:02 입력 2021.06.29 18:34 수정 이윤정 기자

미국 캘리포니아주 밸리센터에서 신규 주택 단지가 건설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정부의 초호화 경기부양책이 미국을 넘어 세계 경제 성장을 부채질하고 있다. 미국에서 흘러나온 자금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경기 침체를 겪고 있는 세계에 윤활유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넘쳐나는 돈이 인플레이션과 화폐가치 하락을 불러오면서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끊이지 않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8일(현지시간) “미국인들의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세계 상품에 대한 수요도 늘어나 해외 시장 성장을 주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정부는 팬데믹 이후 약 6조달러(약 6774조원)에 달하는 경기부양책을 펼쳤다. 그 결과 미국인들의 구매력이 늘어나면서 수입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고, 다른 나라들까지 경제적 이익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미 연방 정부의 경기부양책만으로도 향후 12개월 동안 일본, 중국, 유로존의 생산량이 최대 0.5% 포인트, 캐나다와 멕시코 생산량은 최대 1% 포인트까지 올라갈 것으로 예측했다. 지난달 OECD는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1973년 이후 가장 높은 5.8%로 상향 조정했다.

WSJ는 지난 2008~2009년 금융위기 당시에는 중국이 구매력을 바탕으로 세계 경제에 윤활유 역할을 했다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는 미국이 세계 경제 성장을 주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도체 산업부터 여행업까지 세계의 산업이 미국 수요에 기대를 걸고 있다.

일본 산업용 로봇 제조사인 야스카와일렉트릭의 홍보 담당자인 하야시다 아유미는 WSJ에 “북미에서의 주문은 전 분기 대비 3개월 동안 26% 증가했다”면서 회사가 미뤄왔던 투자를 다시 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미 주택시장 호황 덕에 핀란드 배관 제조업체 어포놀오이지는 미네소타에 공장을 매입했다. 미국 수요에 맞춰 가능한 빨리 제품 생산을 하기 위해서다. 어포놀오이지의 지리 루오마코스키 대표는 “지난 1분기 유럽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약 8% 성장했지만 북미 시장은 22%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관광 산업도 미국 여행객에 기대를 걸고 있다. 메리어트 인터내셔널은 코로나19 백신 예방 접종을 완료한 미국인 관광객들의 방문을 허용하겠다는 유럽연합(EU)의 계획이 발표된 이후 미국인의 EU 지역 여행 예약 건수가 40%나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경기부양책의 일부는 미국 내 이민자들이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의 가족에게 보내는 돈으로 흘러가고 있다. 멕시코 중앙은행에 따르면 멕시코는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의 약 3.8%가 해외에서 송금된 돈이었다.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2019년(2.9%)에 비해 늘어난 것이다.

미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의 통화 완화정책도 브라질, 멕시코 등 부채가 많은 신흥 시장과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저렴한 대출과 관대한 국가 지출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 조나단 히스 멕시코 중앙은행 부총재는 “평상시라면 분명히 금리를 인상했을 것이지만 미 연준이 금리를 유지한 덕에 멕시코도 숨통이 트이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미국 경제 반등이 세계에 인플레이션 부담을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과거엔 중국발 호황으로 원자재 가격이 오른 반면, 이번 팬데믹 이후에는 미국이 광범위한 소비재 가격을 올리고 있다. 팬데믹 기간에 노트북, 휴대폰, 텔레비전과 같은 전자제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고, 이 때문에 원자재인 금속 가격은 기록적인 수준으로 치솟았다. 일부 조선사들은 철강 가격 상승을 이유로 구매자들에게 새 선박 인도 비용을 추가로 내라고 요구하기도 했다고 WSJ는 전했다.

인플레이션이 장기화되면 결국 금리가 예상보다 더 빨리 인상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현재 미 국채 수익률이 뛰고 미국 달러도 강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발 인플레이션은 브라질, 러시아 등 신흥시장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몇 년 만에 물가 상승 최고치를 기록한 브라질, 러시아는 올해에만 기준금리를 세 차례 인상했다. 투자자들이 투자를 꺼려하면서 통화 가치가 떨어져, 달러나 유로화로 갚아야하는 부채를 갚을 수 있는 기업의 능력이 한계치에 다다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럽도 인플레이션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유럽중앙은행은 지난 3월 국채 수익률을 낮추기 위해 채권 매입을 늘렸다. WSJ는 “미국 경제가 세계에 한 손으로는 호황을 주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이를 앗아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신흥국들이 미국 소비 덕에 급증하는 수출로 이득을 보고 있지만 치솟는 인플레이션, 달러화 강세 그리고 높은 채권 수익률의 위험 때문에 경제 회복이 더딜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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