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정부·의료계 갈등,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2024.03.10 20:03 입력 2024.03.10 20:07 수정
정백근 경상국립대 의과대학 교수

의대 정원 확대와 관련해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지역의료·필수의료의 공백 해소를 의대 정원 확대가 필요한 이유로 제시하고 있으나 비수도권 필수의료는 이미 붕괴되고 있다. 이제 비수도권은 지역이라는 이름으로 취약성과 소멸을 대표한다. 지역의 전반적인 시스템이 취약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지역의 의료가 위축되는 것은 당연하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격차는 지역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건이자 지역의료·필수의료의 조건을 규정하는 중요한 모순이다. 이는 비수도권의 쇠퇴에 기반한 수도권 중심 자본축적 전략의 결과이자 국가권력·경제권력 연합의 산물이다. 전체 인구의 자연 감소가 진행되고 있는 지금도 수도권 인구는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는데, 의사들이 상대적으로 이윤 추구 가능성이 높은 수도권과 대도시, 비필수의료로 집중되는 것은 현재의 지역 간 불평등 구조와 자유방임적인 보건의료체계하에서는 어쩌면 자연스럽다. 하지만 현재 수도권에 대한 비수도권의 종속적 관계 및 민간 주도의 이윤 추구적 보건의료체계에서 비롯된 지역의료·필수의료 위축의 원흉은 의사집단이 되어버렸다.

그간 의료계가 지역·필수의료 공백으로 인한 시민사회의 고통에 직면하지 않고 의대 정원 확대 계획 등 이 문제 해결을 위한 진지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점은 아쉽다. 그러나 사회구성원들의 보편적 이익과 공공복리를 위한 권력·자원의 형평적 배분, 보건의료체계의 공공성 강화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주체는 국가권력이다. 그럼에도 현 정부는 수도권 집중을 심화하는 정책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으며 공공의료 확대에 부정적 입장을 취하면서 건강보험 보장성을 도리어 약화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의대 입학 정원 확대와 이에 저항하는 의료계에 대한 강경한 태도로 문제의 근원들을 소거하면서 지역 소멸 위기 극복과 의료개혁의 화신으로 거듭나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가 현재와 같은 태도로 일관한다면 이번 사태가 오히려 지역·필수의료를 더욱 취약하게 만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리고 향후 지역·필수의료를 책임질 의과대학생과 전공의들이 어떤 파국적 결과를 맞이할지 예측하기도 힘들다. 이 과정에서 시민사회가 감내 중인 고통은 뒷전으로 밀린다. 그러므로 지역·필수의료 위기는 민주주의의 위기이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시민사회가 문제 해결의 주체로 나서야 하는 시점이 지금일 수 있다. 시간이 많지 않지만 시민사회가 정부와 의료계를 중재하는 테이블을 마련하고 정부와 의료계, 시민사회가 공론장을 통해 지역·필수의료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과 이에 필요한 의대 정원 확대 과정을 논의해야 한다.

의대 정원 확대가 현 정권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통치 전략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면, 의료계의 저항이 특권을 지키기 위한 집단적 행동이 아니라면, 양측이 고통의 담지자인 시민사회가 마련한 민주적 소통의 자리에 나오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이를 통해 시민사회가 건강·보건의료와 관련된 정책 과정에서 중요한 주체로 재정립되어야 한다. 건강·의료 이용에 대한 요구, 지역의료·필수의료의 위기로 인한 고통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당사자가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정백근 경상국립대 의과대학 교수

정백근 경상국립대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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