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김정일과 박정희

2002.06.03 18:04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적지 않은 호감을 갖고 있는 듯하다. 김위원장은 1999년 10월 당시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방북했을 때 “남쪽이 이만큼 발전한 것은 박정희 전대통령의 새마을 운동 덕분”이라는 말을 했다. 그런가 하면 박 전대통령이 즐기던 고양 막걸리를 주문, 이듬해 정 명예회장이 소떼와 함께 분단선을 넘어 방북할 때 고양 막걸리는 따로 배편으로 북송됐다.

그해 8월 남한 언론사 사장단을 접견했을 때의 언급. “박정희 평가는 후세들이 해야지 동참자들이 말해서는 안됩니다. 그때 그 환경에서는 유신이고 뭐고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소위 민주화도 무정부적 민주화가 돼서는 곤란합니다”. 박 전대통령과 관련한 김위원장의 호의적 발언들은 남한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박 전대통령 생존당시부터 북한 관영 매체들은 ‘박정희 군사 파쇼’ 등의 혹독한 비난으로 일관해왔는데 북한의 통수권자가 남한의 극보수주의자들과 비슷한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북한 역시 박 전대통령에 대해 이중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얘기다. 김위원장의 말은 남북의 오랜 체제경쟁끝에 남한이 성과를 거두어 앞질렀는데 그 기초를 박 전대통령이 닦았다는 평가다. 이 때문에 한동안 “북한의 개혁·개방이 박정희식 개발독재를 모델로 삼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많았다. 북한이 중국과는 사회적 환경이 다른데다, 엄격한 국가 통제 아래 자본주의 방식을 도입해 소수 전략산업의 집중관리로 경제전반의 발전을 유도하는 방식이 북한에도 유효하기 때문이었다.

최근 김위원장은 평양에서 박근혜 미래연합 대표를 만났을 때 “박 전대통령 묘소를 참배하고 싶다”는 말을 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이러한 김위원장의 참배라면 그 역사적·정치적 의미는 엄청난 것이다. 아마도 박대표를 만나 예의차원에서 한 상징적 표현일 것이다. 지금은 그의 서울답방 자체가 실현될지 불투명한 상태다.

〈김지영 논설위원 ignit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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