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간 ‘베트남 아내’들

‘아빠의 나라’ 가고 싶지만…“절차도 방법도 모르겠어요”

2024.04.30 06:00 입력 2024.04.30 06:02 수정

(하) 아이들의 눈물

어머니와 함께 한국을 떠나 베트남으로 돌아온 박진희양(가명)이 지난달 17일 껀터의 한베함께돌봄센터(코쿤센터) 내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다. 그는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있다. 이미지 크게 보기

어머니와 함께 한국을 떠나 베트남으로 돌아온 박진희양(가명)이 지난달 17일 껀터의 한베함께돌봄센터(코쿤센터) 내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다. 그는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있다.

비자 문제·가정 형편 등 이유로
학교 못 다니는 아이들 적잖아

베트남·한국 사이 ‘정체성 혼란’
“아빠에 대해 궁금한 것 많지만
제대로 묻지도 듣지도 못했다”

교육·일자리 등 기회 더 많기에
귀환여성·자녀 모두 한국행 희망
‘역귀환’ 정책·정보 턱없이 부족

“원래대로라면 한국에서 중학교 1학년을 다니고 있어야 하죠. 그런데 베트남에 와서는 학교를 한 일주일 정도 가다가 더는 다니지 못했어요. 마지막으로 간 건 여덟 살 때쯤이었던 것 같아요.”

지난달 베트남 남부 껀터의 한베함께돌봄센터(코쿤센터·KOCUN)에서 만난 박진희(13·가명)는 8년째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있다. 진희는 한국에서 초등학교 1학년을 다니던 중 베트남 출신 어머니가 한국인 아버지와 갈라서면서 베트남으로 오게 됐다. 이후 내리 학교에 가지 못하며 초등학교 과정은 전부 건너뛰었고 중학교에 다닐 기회도 놓쳤다.

진희에게는 도서관과 놀이 공간이면서 문화 프로그램 등을 제공하는 코쿤센터가 학교의 역할을 작게나마 대신하고 있다. 진희는 “평일 빈 시간에는 1시간 정도 떨어진 외할머니 댁에 가서 논다. 거기서 지내다가 다시 주말에는 껀터에 와서 코쿤센터에 나온다. 집에 박혀 누워 있을 수만은 없고, 친구들도 만나러 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베트남이 아닌 한국에 있는 학교에 다시 가고 싶다”는 진희는 한국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검정고시로 초등학교 학력을 인정받고, 한국에서 중학교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다. 홀로 동영상을 보며 공부를 하다 보니 진도가 빠르지는 않다. 진희는 “일단은 떨어져도 다시 보겠다는 생각으로 도전해보려고 한다”고 씩씩하게 말했다.

두 나라 사이의 아이들

진희는 자신이 왜 학교에서 거절당했는지를 명확히 전해 듣진 못했다. 코쿤센터 활동가들도 현지 학교가 한국 국적의 외국인 학생을 받아본 경험이 별로 없었고, 어머니가 진희의 비자 문제를 제때 처리하지 않아 입학 시기를 놓친 채 공백이 길어지지 않았을까 추측할 뿐이다.

베트남 법의 ‘초등학생 연령’ 규정에 따르면 1학년 입학 연령은 기본적으로 6세다. 장애아동, 소수민족 아동, 해외에서 귀국한 아동 등의 경우엔 6세를 넘길 수 있지만 세 살 이상 많아선 안 된다. 입학 기준 연령과 세 살 이상 차이 난다면 입학을 위해 별도 결정 과정을 거쳐야 한다.

사단법인 유엔인권정책센터가 지난해 귀환결혼이민자의 학령기 자녀 106명을 상대로 한 조사를 보면, 과거에는 학교를 다녔지만 현재는 다니지 않는 아동은 12명이었으며 전혀 학교에 다닌 적이 없는 아동은 2명이었다. 한국 국적이기 때문에 체류 신분이 문제가 됐다는 답변이 많았다.

하이퐁 코쿤센터에도 초등·중학교는 학교장의 배려를 받아 마칠 수 있었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하지는 못한 사례, 고등학교부터는 정규 학생이 아닌 청강생 신분으로 학교에 다니고 있는 사례가 있다. 모두 보호자가 자녀의 여권을 연장하지 못해 체류에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황귀자 하이퐁 코쿤센터 소장은 “베트남 국적 어머니가 법을 몰라서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지 못했거나, 연장 시기를 놓쳐 범칙금이나 추방을 우려하거나, 여권·비자 연장 비용도 부담스러워하는 등의 이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안정적 체류를 보장하고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선 다문화가정 미성년 자녀의 여권 발급 기한(1년)을 확대하고, 재외등록 신고에 관한 홍보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상급학교로 진학하는 단계에서 어려운 집안 형편이 학업 포기로 이어지기도 한다. 송혜원 껀터 코쿤센터 소장은 “고등학교에 가면서 학교가 집에서 멀어진 탓에 오토바이나 전기자전거를 지원받지 않고는 통학이 어려워 학교를 그만둔 아이가 있다. 학비뿐만 아니라 통학비, 체험학습비 등 여러 부대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아이로선 ‘학교를 그만두고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런 아이들은 베트남 학적이 없다 보니 한국으로 돌아가더라도 검정고시를 봐야 한다. 학교 적응 문제도 있다”고 우려했다.

나는 베트남에 사는 한국인?

이처럼 한·베 가족의 해체 후 베트남에서 사는 아동들은 때로는 어른들의 무지로 인해, 또는 한국과 베트남 정부가 찾아내지 못한 탓에 사각지대에 놓인다.

무엇보다도 베트남 내에 귀환여성의 자녀들이 얼마나 많은지 정확히 파악된 바가 없다. 재외동포재단이 2021년 실시한 ‘베트남 북부지역 거주(체류) 귀환여성 한·베 자녀 실태조사’에서, 2000년 이후 한국에서 출생한 한·베 자녀 중 초등학교에 진학하지 않은 아동의 수가 1만7700명인 것에 기반해 이들 대다수가 어머니와 함께 베트남으로 귀환했으리라고 간접 추정했을 뿐이다.

귀환여성 수가 한·베 결혼의 역사만큼 누적되며, 이들과 함께 귀환한 자녀들도 어느덧 청소년기에 접어들었다. 정체성 고민을 맞닥뜨릴 시점에 도달했다는 뜻이다. 이들의 고민은 한국 국적, 베트남 국적, 한·베 이중국적 등 단순히 어느 국적인지를 넘어 자신이 누구인지, 한국인 아버지를 만나고 싶은지,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가 살고 싶은지로 뻗어나갔다.

귀환여성의 자녀 중 드물게 대학까지 진학해 2학년에 재학 중인 최유리(20·가명)는 한국식 이름을 쓰고 한국 국적이지만 한국어를 잘 못한다. 친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고, 한국에 가본 적도 없다.

최유리는 “내가 다문화가정 출신이고 아빠가 한국인인 혼혈아라는 사실을 스스로 찾아서 알게 됐다. 엄마가 슬퍼할 것 같아 지금까지도 엄마에게 아빠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물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아빠와 같이 살지 못하는 것이 슬프기도 했다. ‘왜 우리 아빠는 날 기르지 못했을까’ 화가 난 적도 있다”면서도 커가면서 점점 받아들이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초등·중학교는 베트남인 신분으로 다녔으나 이후 한국 국적을 살렸다. 한국 국적이 더 많은 기회를 열어준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자신을 베트남인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최유리는 “어릴 때부터 베트남에서 살았고 모국어는 베트남어다. 한국인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물론 있지만 많지는 않고 (국적이) 한국이라는 걸 잊고 살 때가 많다”고 했다. 그는 “집안 형편이 어려우니 엄마는 내가 한국에 가서 일을 해 경제적으로 보탬이 되기를 원하지만 나는 전공(연기)을 살리고 싶어 그러지 않겠다고 싸웠다”고 했다.

반면 리엔(15·가명)은 베트남 국적이지만 자신을 한국인이라고 생각하며 한국에 가 공부를 하고 싶어 한다. 리엔은 “한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은 2~3년 전쯤부터 했다. 아빠가 한국인이고 나도 한국 국적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난 한국인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리엔은 “아빠에 대해서도 궁금한 것이 있다. 건강은 어떻고, 삶은 어떤지 같은 것들을 물어보고 싶다”고 했다.

리엔이 한국인이 될 수 있는 길은 법적으로는 열려 있다. 한국의 국적법 제3조에 따라, 리엔과 같은 미성년 한·베 자녀는 한국의 아버지를 찾아 인지신고하면 즉시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 그러나 생부와 연락이 되지 않아 몇년 전부터 현실적으로 포기한 상황이라고 리엔의 어머니 한(46·가명)은 말했다. 리엔이 18세가 되면 절차가 훨씬 까다로워진다.

[돌아간 ‘베트남 아내’들] ‘아빠의 나라’ 가고 싶지만…“절차도 방법도 모르겠어요”

한국 국적이지만 한국을 모르는 아이들

귀환여성을 비롯한 한·베 자녀의 보호자들은 대체로 자녀를 나중에라도 한국에 보내고 싶어 했다. 아이의 뿌리인 ‘아버지의 나라’에 가지 못할 이유가 없는 데다, 교육·일자리 여건도 좋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귀환여성의 자녀들 역시 유사한 이유로 한국행을 그렸다. 아버지를 직접 만난 적이 없는 민지(16·가명)는 “중학교에 올라오면서부터는 한국에 가 공부하는 편이 더 좋다고 생각했다. 주변 환경도 나아질 것이고, 친가 가족들과 항상 옆에서 같이 사는 게 좋을 것 같다. 고등학교까지 다 마치고 대학부터 한국에서 다니고 싶다”고 했다.

동시에 한국을 잘 모르는 상태로 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도 컸다. 민지를 양육 중인 삼촌 민(45·가명)은 민지가 한국행이 늦어질수록 한국과의 접점이 더 줄어들지 않을까 우려했다. 민지의 어머니가 자신이 겪었던 한국 생활에 대해 말한 적이 거의 없는 데다, 민지가 국적만 한국일 뿐 가본 적이 없어 미디어로 접한 한국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민은 “일단은 베트남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한국에 가는 쪽으로 민지의 조부모와 이야기 중인데, 그때 민지가 한국어 구사와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을까 걱정”이라고 했다.

그래도 민지는 한국에 가면 조부모의 지원을 어느 정도 기대할 수 있다. 조부모는 지금도 양육비를 보조해주고 있으며 간간이 연락을 주고받는다. 이처럼 친부나 그 가족에게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운이 좋은 편이다. 진희는 한국에 가면 부모가 이혼 전 살았던 지역이 아닌 아예 다른 곳에서 어머니와 살려고 하고 있다.

진희는 “아빠를 마지막으로 본 건 2021년인데, 찾고 싶다는 생각은 딱히 하지 않는다. 양육비도 주지 않고, 엄마도 아빠와 연락이 끊긴 지 1년 반 정도 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진희는 “다시 한국에 가더라도 그쪽 집안과는 연락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귀환여성들은 한국에 돌아가고자 하는 의욕에 비하면 정보는 부족한 편이다. 자녀와 한국에 가고자 하는 마음은 급한데 체계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얻을 길이 많지 않은 탓이다. 한국인 남편과 사별한 이후 베트남으로 두 아들을 데리고 온 이수진(42·가명)은 본인과 자녀 모두 한국 국적이며 한국어가 유창하다. 그는 “아이들의 교육·생활 환경을 위해서 하루빨리 한국으로 가고 싶다. 한국에서 군대도 보내고 대학도 보내고 싶다”고 했다.

그는 첫째아들이 고등학교로 진학할 때를 한국에 가는 목표 시점으로 잡고 있다. 그러나 베트남에서 살다 온 아이의 한국 고등학교 진학, 치열한 입시 문화와 같은 것들은 미처 고려하지 못했다. 한국 대학에 진학하고 무난히 적응하기 위해선 베트남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재외국민 12년 특례 입학을 노리는 것이 전략적으로 나을 수 있다는 점 역시 몰랐다.

이들의 ‘역귀환’을 보조하는 정책은 현재로선 찾기 힘들다. 유엔인권정책센터의 지난해 조사에서 귀환여성들은 자녀가 한국에서 취업할 경우 희망하는 지원(복수응답)으로 한국어 교육(37.3%)을 가장 많이 꼽았으며 기숙사(34.2%), 특별 취업비자(32.9%), 사전정보 교육 프로그램(27.3%) 등이 뒤따랐다.

위성은 껀터 코쿤센터 상담팀장은 “귀환여성의 자녀들이 한국에 가 성공적으로 정착한 사례가 아직 드물다 보니 이들이 실질적으로 조언을 구할 공동체가 없다. 대부분 한국어와 한국 사회 시스템을 모르는데도 국적은 한국이기 때문에 외국인 지원 센터에도 가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완전한 독립 전 중간 단계에서 도와줄 센터나 쉼터, 지원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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