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말 신문기자의 눈으로 본, 혁명 직전 ‘파리의 풍경’

2014.11.02 21:03 입력 2014.11.02 21:27 수정

독일어본 이은 두번째 완역본 최갑수·이영림 교수 등 7명 참여 6권으로 구성

‘사회계약론’에 접근하기 어려운 당시 일반인에게 징검다리 역할… 서구학계 뒤늦게 ‘사료’로 주목

“파리에서 퐁뇌프는 인체의 심장과 같으며 이동과 교통의 중심이다. 파리 주민과 외국인들이 이곳을 하도 많이 왕래하므로, 누굴 찾고 싶으면 매일 퐁뇌프를 한 시간씩 거닐면 만나고도 남는다.” 18세기 말 프랑스 파리의 모습은 어땠을까. 신문기자였던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는 1781년부터 1788년 사이에 출판한 12권의 <파리의 풍경>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이 책은 1781년에만 다섯 종류의 위조본이 유통됐고 1782년에 첫판본의 2쇄 3500부가 재간행됐다. 1789년 12권이 한꺼번에 출판될 때까지 간행된 다양한 판본과 재간행본, 위조본을 합치면 수백만 부가 유통된 것으로 추산된다.

18세기 말 파리에 대해 알 수 있는 역사서 <파리의 풍경>(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이 국내에서 번역·출간됐다. ‘과도하게 큰 파리’, ‘봉건 정부는 어디에?’, ‘굴뚝’, ‘은제품’ 등 1050개의 각 장의 제목을 보면 이 책이 인물, 거리부터 유행, 종교, 철학 등 파리의 모든 것에 대해 다루는 안내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파리 중심부에서 태어난 저자는 파리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자랐고 센 강가에 있던 학교에 다니며 6년을 보냈다. 또 신문기자로 활약하면서 예리한 관찰자로 성장한다. 그는 이 자산을 토대로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관찰한 파리를 간결하게 묘사했다.

18세기 말 신문기자의 눈으로 본, 혁명 직전 ‘파리의 풍경’

이 책을 3년 동안 최갑수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이영림 수원대 사학과 교수 등 7명이 완역했다. 12권을 번역하면서 6권으로 다시 구성했다. 독일어본 외에는 두번째 완역이다.

최 교수는 “서구 학계는 1970년대가 되어서야 과거에 살아 숨쉬던 인간의 구체적 삶의 모습을 복원하려고 했고 이 책은 역사적 사료로 인정받게 됐다. 국내에서 저자에 대한 연구가 발표된 것도 최근”이라고 말했다.

이 책은 파리의 풍경을 단순하게 묘사하는 데 그친 것이 아니다. 저자는 책과 독서를 통해 사람들이 달라질 수 있다고 믿었다. 구태의연한 권위와 신분 질서에 억눌려온 민중들은 파리라는 공간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담긴 이 책을 읽으면서 자유와 해방감을 느꼈다.

1777년 파리 퐁뇌프 다리를 그린 나콜라 장바티스트 라그네의 작품 <파리, 퐁뇌프와 사마리텐>. | 서울대출판문화원 제공

1777년 파리 퐁뇌프 다리를 그린 나콜라 장바티스트 라그네의 작품 <파리, 퐁뇌프와 사마리텐>. | 서울대출판문화원 제공

저자는 계몽사상가였다.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던 프랑스인들에게 저자는 세금 감면, 특권 폐지, 능력 위주의 사회, 교회 재산의 일부 몰수 등 구체적인 정부 개혁안을 제시했다. 1789년 혁명이 일어나자 저자는 일간지 ‘프랑스의 애국 문학 연보’를 창간하고 국민공회 의원에 선출되었다. 최 교수는 “구체제의 모순을 은연중에 드러내면서 구체제의 실상을 알리고 있는 작품”이라며 “일반 독자는 루소의 <사회계약론>에는 접근하기 어려웠고 이 책이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자연스럽게 이 책은 19세기 발자크, 스탕달 등의 사회 소설에 영향을 미쳤다. 최 교수는 “우리에게는 박태원의 <천변풍경>에 견줄 수 있는 작품인데 이후 우리에게는 도시적 감수성을 기록한 책을 찾기가 어렵다. 새로운 세대가 서울을 어떻게 돌아볼 것인지 참고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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