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前대통령 대담

2004.10.06 18:17

경향신문은 창간 58주년을 맞아 김대중 전 대통령과 특별대담을 나눴다. 남북정상회담과 햇볕정책으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던 김전대통령으로부터 시계 제로인 ‘한반도’ 해법을 듣고자 함이었다. 김전대통령은 한반도문제 해결의 물꼬인 6자회담의 핵심은 북·미관계 개선이라고 진단했다. 따라서 북·미 양국의 상호 신뢰회복 노력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정치현안 등에 대해 언급을 자제해온 김전대통령은 여권이 추진하고 있는 과거사 규명 등 개혁작업과 관련해 “국민보다 반 발 앞서서 가고 국민이 따라오지 않으면 서서 기다리고 설득해야 한다”며 국민적 합의를 강조했다. 다음은 김전대통령과 김지영 편집국장의 특별대담 요약.

-수확의 계절인 올 가을에 특히 상념을 많이 하시는 부분이 있습니까.

“남북관계에 있어 대화가 일시적으로 중단됐고, 미국에서 북한인권법이 제정된 것이 여러가지 영향을 주고, 6자회담도 안열리고 해 비록 잠정적인 상황일 것이라고는 믿지만 그런 분야에 대해 신경 많이 쓰고 있고요. 또 하나는 경제·민생문제가 상당히 어려운 것 같아 걱정이 많습니다.”

-내년이 광복 60주년입니다. 일본은 국익외교를 본격적으로 한다고 하고, 중국도 부국강병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외교적, 내부적 노력을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외교가 필요한 나라이고 외교가 운명을 좌우하는 나라입니다. 중국, 러시아, 일본이 딱 붙어 있습니다. 또 미국이 여기 와 있고. 조선왕조 말엽 때 이미 이 나라들이 우리나라 운명을 결정하는 데에 전부 참가했습니다. 역사가 꼭 되풀이되는 건 아니지만 되풀이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봐야 합니다. 우리는 4대국 외교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나라마다 관계를 잘 발전시켜야 하고, 또 4대국을 하나로 묶어서 발전시켜야 합니다.”

[창간58주년 특집] 김대중 前대통령 대담

-미 대선이 11월에 있고 북한인권법안이 통과되면서 6자회담이 장기 표류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정부는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6자회담은 당장에 어떤 성과를 올리기는커녕 미 대선 전에 개최되기조차 어렵지 않나 생각합니다. 우리가 물론 당사자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데 북한과의 관계가 긴장돼 가지고… 탈북자들이 집단으로 입국하고 김일성 10주기 조문 참가문제 등으로 쉽게 대화하긴 어려운 입장이지 않은가 싶습니다. 결국 6자회담에 참가하는 나라들이 비공식적으로라도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모멘텀을 끊지 말고, 그러면서 미국 대선이 끝나고 나면 누가 당선되든 한반도문제는 급속히 발전돼 나아갈 걸로 봅니다. 그런 준비를 하는 게 좋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6자회담 관련국들에 당부하시고 싶은 게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6자회담이라고 하지만 핵심은 북·미관계입니다. 왜냐하면 6자회담에서 논의된 것이 북한은 핵을 포기하고, 미국은 북한의 안전을 보장하고 경제적 제재를 해제하는 게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6자회담에서 미국과 북한은 이런 점에 있어 태도를 아주 분명히 해야 한다고 봐요. 미국은 북한이 핵을 완전 포기할 경우 북한을 위해 어떻게 하겠다는 걸 손에 쥐어주듯 해줘야 하고, 상호 불신이 있기에 그렇게 해야 됩니다. 또 북한은 미국이 많이 속았다고 생각하니까 이번만은 틀림없다는 걸 보여줘야 합니다.”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우리 정부가 기존처럼 조용한 외교로 처리하는 게 맞다고 보십니까.

“북한인권법은 북한 인권을 개선하고 탈북자를 도와준다는 면에 있어서, 그런 효과를 위해 북한에 압력도 가하고 탈북자 안전관리도 하는 성과는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플러스 요인이 있는 동시에 상당히 마이너스 요인도 있습니다. 첫째, 북한이 이 법에 많은 충격을 받고, 북한은 단순히 탈북자가 아니라 북한 체제를 전복할 의도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구실을 주지 않기 위해 탈북자들을 철저히 막을 겁니다. 그전에는 식량 가지러 간다고 하면 눈감아줬지만 이제는 탈북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고… 둘째, 만주나 몽골을 떠도는 약 10만명이나 되는 기(旣)탈북자들이 주대상이 되는데, 거기에 NGO 등이 관련해 요즘 말하는 기획입국을, 우리나라로 대량 입국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에 있는 사람들을 이동시키고, 일시적으로 수용하는 과정에 미국과 중국 사이에 마찰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그런 사람들을 대량으로 받아들이면 북한은 우리가 미국과 짜고 납치해 데려간다며 남북관계를 경색시킬 수도 있습니다. 한국, 미국, 일본에서의 인권이라면 주로 정치적, 사회적 자유를 말하는데 북한에는 그에 앞선 원초적인 인권이 있어요. 굶어 죽게 된 사람들한테는 밥먹는 게 인권이에요. 또 하나의 원초적 인권은 질병으로부터 생명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말라리아나 폐병이 참 많습니다. 죽어가는 사람한테는 정부 비판할 자유보다 병 고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한반도 정세가 예민하다보니 남북정상회담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현 정부는 북핵문제의 가닥을 잡은 뒤에 정상회담을 추진한다는 입장인 것 같습니다. 선후(先後)관계가 어떻게 되어야 된다고 보십니까.

“지도자가 판단할 문제인데 북한 핵문제 해결과 남북간 대화, 정상회담이 병행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그 전에 장관회담에서 북한이 논의도 안하려고 하는 핵문제를 끈질기게 따져 평화적 해결에 합의본 바가 있지 않습니까. 언제 하느냐는 건 정부가 정할 문제지만 6자회담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도 정상회담을 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또 내 경험을 봐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맞대고 앉아서 얘기하는 게 얼마나 유용한가를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노대통령도 그런 기회를 가진다면 좋은 결실을 가져오리라 봅니다.”

-개인 자격으로 김위원장을 만나실 의향은 없는지요.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처지와 분수를 알고 처신해야 하는데, 같은 대통령이라도 현 대통령과 전 대통령의 차이는 굉장한 것입니다. 나는 일단 은퇴한 사람이고 모든 것은 나라 일을 맡은 분들이 중심이 돼서 해야 하는데, 그렇더라도 측면에서 지원할 수 있는 일은 해야죠. 그러나 지금 내가 북한에 가는 건 아직 때가 성숙되지 않았다고 생각을 하고. 그래서 가더라도 어디까지나 나는 지원하는, 눈에 안띄게 조용히 하는 입장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통적인 한·미 동맹관계를 유지하면서 남북관계도 발전시키기 위한 우리의 자세나 노력은 어떤 게 있습니까.

“한·미동맹은 한반도 평화와 전쟁 억지를 위해 있는 겁니다. 미군은 동북아 전체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이같은 동북아 평화도 우리가 바라는 것입니다. 북한도 남북정상회담에서 모든 것의 평화적 해결을 원한다고 했고요. 실제 북한은 지금 전쟁할 능력도, 전쟁할 의사도 없다고 봅니다. 북한은 지금 (미국이) 자신들의 정권을 전복시킬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일구월심 북한이 바라는 것은 미국으로부터 그렇지 않다는 보장을 받는 것이고, 그런 일을 우리가 해주길 바라고 있어요.”

-주한미군 감축문제가 논의되고 있는데요. 주한미군 감축 시대는 어떤 식으로 전개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보십니까.

[창간58주년 특집] 김대중 前대통령 대담

“기본적으로 전략이 바뀐 시대 아닙니까. 육군을 감군하고 해·공군을 증강한다는 미국 입장이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닙니다. 문제는 그런 정책을 세울 때부터 우리와 합의해야 돼요. 그래야 우리도 뭐가 돌아가는지를 알고 대비책을 세울 거 아닙니까. 그런데 일방적으로 해놓고 ‘이러니까 그렇게 하라’는 식으로 하고, 또 협의라는 것도 사실상 통과의례로 한다면 그건 수평적 동맹관계가 아니고 효과적인 방법도 아니죠. 또 하나는 6·25 때 미군이 많이 희생한 건 우리가 다 아는 일이고, 그 때문에 미국 사람들은 한국에 은혜를 베풀었다고 생각하고 한국에서 반미가 조금만 생겨도 배은망덕이라고 화를 내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다른 사실도 있어요.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난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한반도 분단이에요. 그건 누가 했습니까. 미국과 소련이 했어요. 그보다 더 직접적인 문제가 있어요. 1949년 미군이 철수할 때 북한과 소련에 대해 ‘만일 그쪽이 군사적 침략을 할 경우 다시 오겠다’고 얘기했다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예요. 지금도 그렇습니다. 미군이 ‘우리가 이렇게 군사를 축소하면 북한도 거기에 상응하는 태도를 취하라’는 요구를 한다든지, ‘군사 감축을 보고 오판한다면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든가 그런 오금을 박는 얘기를 해야 하는데. 사전에 충분한 협의도 안한 것 같고, 북한에 대한 경고도 없이 그냥 옮겨간다는 것은 국민이 볼 때는 불안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북한은 한 손에는 핵개발을, 한 손에는 경제를 쥐고 벼랑끝 전술을 펴고 있는데, 북한의 의도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핵은 수단이고, 목적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입니다. 미국 핵 앞에서 북한의 핵은 장난감도 아닙니다. 북한이 미국과 싸워 이길 수 있겠습니까? 북한주민의 굶주림을 해결하는 데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결국 북한의 목적은 사는 거예요. 살기 위해서, 나 죽이면 너 죽고 나 죽는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것이지요. 내가 김정일을 만났을 때도 얘기했습니다. ‘당신들이 핵이라든가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한다는 말이 있는데 절대 안된다. 미국 감정을 조장하고 남한도 절대 지지할 수 없다’고 했어요. 그래서 미국과 대화를 한 거예요.”

-지정학적으로 보면 동북아 중심국가가 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데 정부나 민간에서 어떤 자세로 대비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유라시아 대륙을 관통하는 물류의 거점이 돼야 합니다. 우리에게 일본, 중국은 큰 시장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무서운 경쟁자이기도 한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엔 다른 나라가 침범하기 어려운 두가지 발전 조건이 있습니다. 문화분야에서 한류가 막 일어나고 있는데, 한국인이 가진 탁월한 창의력이에요. 영화를 봐도 알 수 있고, 중국에선 하루 저녁에 한국 드라마를 1억명이 봅니다. 또 문화 소비에 있어 재창조력이 있습니다. 또 하나는 유라시아를 연결하는 철도와 도로입니다. 한국발 제2의 실크로드를 만들어야 합니다. 일본과는 해저터널을 뚫어야 합니다. 고이즈미 일본 총리와 얘기하니까 해저터널 하겠다고 했고.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내 재임중 왔을 때 주의제가 철도 연결이었어요. 그러려면 북한과 관계가 좋아야 합니다. 우리의 돈과 사람을 내보낼 장소가 필요한데 그 제1차가 북한입니다.”

-국내 현안에 대해서는 되도록 말씀을 하시지 않는데요, 보편적 문제이기도 하고 인권의 문제이기도 한 국가보안법, 사형제, 호주제 폐지 등 사회변혁의 중요한 현안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계십니까.

“모든 정책은 당위성과 함께, 그것이 시간적으로 가능하냐, 또 어떻게 방법을 취해야 하느냐를 구별해야 합니다. 지금 모든 일에 당위성은 있는데, 정치의 중요한 요체는 국민과 같이 가야 합니다. 국민의 손을 잡고 반 발 앞으로 가야 합니다. 국민과 같이 나란히 서도 발전이 안되고, 손 놓고 한발 두발 나아가도 국민과 유리돼서 안됩니다. 국민이 옳은 일인데 안따라오면 서서 기다리고 설득해야 해요. 그렇게 해서 국민을 따라오게 해야 돼요. 국민은 옳은 거라고 알면 따라오니까. 그러한 때와 방법이 아주 중요하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사진 권호욱·정리 이주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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