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춘이라는 시인

2024.04.25 20:56 입력 2024.04.25 21:00 수정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서정춘이라는 시인

외출했다 돌아오니 책상에 흰 편지가 놓여 있다. 인정머리 하나 없는 인쇄체의 청구서 따위와는 확 비교되는, 정겨움이 폴폴 나는 시인의 손글씨였다. 봉투를 뜯으니 어느 신문의 서평 스크랩이 나왔다. 내가 식물에 관심이 많은 걸 알고 가끔 이렇게 챙겨주신다.

시인을 처음 소개해준 이가 전해준 남도 여행의 일화. 시끌벅적한 식당에서 조금 일찍 수저를 놓고 시인은 일어나 마당으로 나간다. 이 지역과 연결된 자잘한 화단의 근황부터 종내에는 큰 나뭇잎의 뒷꼭지까지를 요모조모 살핀다. 송아지의 귀를 살피듯 잎사귀의 털을 매만지면서 방금 놓은 숟가락과 잎은 왜 이리 닮았을까. 뭐, 그런 궁리도 하는 것 같은 시인의 뒷모습.

봄이 되면 꽃소식이 먼저 들려오는 곳을 찾아 나도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구례-순천을 연결하는 송치재의 보람찬 골짜기에서 바람에 나부끼는 얼레지 앞에 엎드리는데 시 한 편이 떠올랐다. “아버지 삽 들어갑니다/ 무구장이 다 된 아버지의 무덤을 열었다/ (…)/ 어느 날도 구례장을 보러 말 구루마를 끌며/ 하늘만큼 높다는 송치재를 오를 때/ 마부 아버지와 조랑말이/ 필사적인 비명을 들은 적이 있었다”(‘파묘’, 서정춘)

순천에서 마부의 아들로 태어나 지독히 궁핍했던 시절. 소월과 영랑의 시를 피갈이하듯 필사하여 첫 시집을 만든 이래, 거의 반백 년이 지나서야 서정춘이란 이름이 박힌 시집을 세상에 펴냈다. 시인은 선후배 문인들로부터 자신 이름이 들어간 제목의 시집을 헌정받기도 했다. <서정춘이라는 시인>. 한 사람의 생은 그가 살아낸 몇 줄의 이력으로 곧 고유한 시다. 시인이 되는 것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지만 고인이 되는 것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언젠가 모두 그리될 수밖에 없지만 당장 함부로 되는 것 또한 아니다. 일생을 태우고 돌아다닌 뗏목 같은 저 이름 석 자가 참으로 아름다운 문장이 되었다.

시는 말의 낭비를 최대한 줄이려는 장르다. 시란 짧을수록 옳다는 게 나의 짧은 견해. 독보적으로 엄격한 시인의 대표작을 읽으면 나의 나태한 정신도 대나무 끝에 이르런 듯 낭창낭창해지는 것이었으니, “여기서부터, -멀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 년이 걸린다”(‘죽편1’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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