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신인수 계열사 동원이 화근

2000.07.27 19:14

2억2천만달러의 지급보증 대납을 둘러싼 현대중공업과 현대전자·증권간 분쟁의 실체가 사태파악의 열쇠인 각서 내용이 확인되면서 점차 드러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사태는 1997년 현대그룹의 국민투자신탁(현 현대투자신탁) 인수 과정에서 비롯됐고 3년 후인 현재 현대투신의 주가가 당초 예상가보다 낮을 것으로 추정되면서 문제가 꼬인 것으로 보인다.

◇각서 내용=현대중공업이 27일 공개한 각서는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과 김영환 전 현대전자 사장 직인이 찍혀 있다.

각서에는 “현대전자는 주식매각과 관련, 매입자인 CIBC(캐나다계 은행)가 주식매입 자금을 3년후 만기가 도래하는 채무연계 각서(Credit-Linked Notes)를 발행해 조달하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음을 확인한다”고 쓰여 있다.

각서는 또 “현대중공업은 CIBC와의 사이에서 본건 주식을 3년후 미리 정한 가격으로 되사주기로 약정하는 쉐어옵션 협약(Share Option Agreement)를 체결했으며 현대전자·증권은 쉐어옵션 협약상 현대중공업의 의무가 중공업에 부담을 주지 않도록 책임질 것을 서약한다”고 돼 있다.

◇발단=현대 주변의 말을 종합할 때 이번 사태는 97년 3월 정부의 투신사 정상화 방안에 따라 국민투신의 주식을 현대전자와 현대증권이 인수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현대증권 사장이던 이회장이 투신업계 진출을 위해 국민투신 인수를 주도하면서 계열사를 무리하게 동원한 것이 화근이었다는 설명이다.

4개월 후인 7월 타법인 출자한도를 초과(현대전자의 국민투신 지분율 52.56)한 현대전자는 보유중인 국민투신 주식 중 일부인 1천3백만주를 현대증권을 통해 CIBC에 매각했다.

이회장은 이 과정에서 현대전자에 재정적 피해를 입히지 않겠다는 개인 명의의 각서를 써준 것으로 알려졌다.

또 향후 국민투신의 주가 하락을 우려한 CIBC가 현대전자측에 주식을 되팔 수 있는 권리(풋옵션)를 요구했으나 정부가 “사실상 차관도입과 다를 바 없다”며 이를 반대하자 현대중공업에 풋옵션 계약을 대신 들어달라며 현대증권 및 현대전자 명의로 재정적 손실을 지우지 않겠다는 각서도 써 줬다.

◇갈등 비화=현대 관계자는 문제의 현대투신 주식이 예상했던 것보다 낮은 주가를 형성하면서 일이 꼬인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현대투신 주식은 비상장으로 현재 장외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다. 현대전자는 당시 주당 1만1천4백20원에 매입한 현대투신 주식을 CIBC에 1만2천원에 매각, 총 5백80억원의 차익을 남기면서 계약을 체결했으나 지금은 장외시장에서 2,000~3,000원에 거래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CIBC는 계약내용대로 현대중공업에 현대투신 주식을 되사가라고 요구했다.

현대중공업은 재매입일이 다가오자 지난 5월부터 현대전자와 현대증권이 주식을 매입해 자신의 보증을 해소해달라고 요청했고 전자측이 이에 응하지 않자 주식인수 대금을 대납하고 구상권을 행사하겠다고 나섰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각서까지 쓰며 도와달라고 할 때는 언제고 책임질 일이 벌어지자 오리발을 내밀고 있다”고 말한다.

중공업측의 이같은 주장에 대해 현대전자는 “당시 국민투신을 전혀 인수할 뜻이 없었는데도 이회장이 무리하게 계열사를 동원,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고 밝혔다.

〈이준호기자 juno@kyunghyang.com〉


추천기사

기사 읽으면 전시회 초대권을 드려요!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