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수리’에 깃든 삶의 연속성

내게 ‘쓰레기 흑역사’를 물으신다면 단연코 우산이다. 기차역이나 대형마트 주차장에서 커다란 쓰레기통을 발견하면 고장 난 우산을 버린다. 여행 갈 때는 일부러 고장이 날 듯 말 듯한 우산을 들고 가서 쓰다 버린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는지, 한국환경공단이 2021년 1월부터 11월까지 전국 대형마트, 대형할인점 등에서 측정한 우산 폐기물은 무려 1만3000개나 되었다.

쓰레기 덕후인 나는 설명서를 써도 될 만큼 분리배출 방법은 잘 알고 있다. 우산 분리배출은 다음 5단계에 따른다. ① 우산 살과 연결된 실 제거 ② 손잡이, 우산 꼭지 분리 ③ 우산 천 끝에 달린 작은 팁 분리 ④ 우산 살대 묶기 ⑤ 우산 천은 버리고 비닐이나 고철, 플라스틱은 분리배출

이쯤 되면 냉장고에 코끼리 넣는 방법 같은 거 아닌가. ① 냉장고 문을 열고 ② 코끼리를 잘 넣고 ③ 냉장고 문을 닫는다. 머리는 이해해도 실제로는 웬만해선 할 수 없는 매뉴얼 말이다. 제대로 우산 분리배출을 하는 사람은 우산계의 ‘마더 테레사’거나, 부자 중에서도 가장 으뜸인 시간 부자일 것이다. 재활용이라는 대의명분 외에는 그 어떤 실익도 없는 일에 30분 이상 들여 우산 살대를 찢다 생살이 찢어지기도 한다. 말하자면 위인 혹은 부자가 아닌 한 우산 재활용은 불가능에 가깝다.

어느 날 쓰레기 덕후인 내 친구가 우산을 수리하는 황금손 봉사단에 다녀오더니 우산을 수리하기 시작했다. 두어달 매달려 우산 천을 꿰매는 ‘시다’ 과정을 거쳐 살대 봉합과 봉 교체까지 마치고 마침내 ‘황금손’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몇번 쓰고 버리면 그만인 저렴한 우산 판매가 50%씩 급증하는 동안 우산 수리 가게는 머나먼 뒤안길로 사라졌다. 50대 이상 어르신들이 자원봉사로 우산 수리의 명맥을 이어간다. 우산 수리 부품도 따로 생산되지 않는다. 그런데 내 친구는 레트로 유행처럼 20~30대 여성들을 모아 우산 수리 기술자로 키워내고 수리한 우산에 ‘리페어’를 새겨 새 우산을 대신할 사업을 연다.

국내에서만 해마다 약 4000만대의 우산이 버려진다. 이때 이산화탄소와 유해가스가 약 280만t 발생한다. 우산을 수리해 우산으로 사용하면 자원과 에너지를 줄이고 쓰레기와 기후위기를 막는다. 설사 못 고치더라도 괜찮다. 우산 수리 부품은 고장 난 우산으로부터 장기 기증을 받아야만 한다. 수리 부품마저도 재활용한 자원이다. 우산을 고치기 위해서는 먼저 우산을 해체해야 하므로 위인이나 부자가 아니어도 분리배출이 가능해진다.

톨스토이는 “식사를 준비하고 집을 청소하고 빨래를 하는 일상적인 노동을 무시하고서는 훌륭한 삶을 살 수 없다”고 하였다. 나는 우산 수리가 일상적인 노동을 통한 훌륭한 삶을 가꾸는 수행이라고 생각한다. 일상의 물건을 어루만져 치료하는 돌봄 노동이기도 하다. 여성들의 ‘독박’ 돌봄노동에 기생하다가 국가적 위기를 맞은 세계 최저 저출생 꼴이 나서는 안 된다.

부디 프랑스의 자원순환법처럼 수리해서 다시 쓰는 사람들에게 수선 보조금이 지급되는 등 수리수선 활동을 보장하는 사회가 되기를.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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