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취재]‘이산가족 법정비’시급하다

2000.08.01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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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이산가족인 김재환씨(70)는 8·15 이산가족 북측상봉자 명단에서 북에 있는 동생 김재호씨(56)의 생존을 확인한 뒤 “동생을 호적에 올려달라”며 서울 가정법원에 ‘호적정정신청’을 냈다. 6·15 남북공동선언과 보름 앞으로 다가온 8·15 이산가족 상봉이 남북간의 화해 분위기를 달구면서 남과 북으로 갈라져 있는 이산가족들에 관한 이런 법적 문제가 관심을 끌고 있다. 하지만 북한 주민의 대한민국 법률 적용이나 반대의 경우 모두 복잡한 ‘법률적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많아 분단에 의해 빚어진 법적 문제 해결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특히 통일 논의가 빨라질 경우에 대비해 통일법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호적=헌법 제3조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조항에 비춰볼 때 북한지역은 대한민국의 영토에 포함된다. 따라서 북한 주민에게도 남쪽의 호적법을 적용할 수 있다. 최근 사례처럼 적십자사가 발행해준 생존확인서를 가지고 관할 법원을 찾는다면 남쪽 호적상에 실종이나 사망선고가 된 북한 주민을 호적에서 살릴 수 있다. 사망신고를 했다면 호적정정신청을 통해, 실종신고를 했다면 실종선고취소신청을 통해 특별한 보정명령이 없다면 한달 안에 결론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남한 호적에 아예 올라 있지 않을 경우엔 문제의 소지가 있다. 예를 들어 월남한 사람이 재혼해 낳은 자식을 호적에 올렸다면 북에 두고온 자식들은 ‘혼인외 자녀’에 해당, 호적에 올릴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또 1967년 미수복지구에서 행방불명된 사람 등에 대한 실종선고를 위해 마련됐던 ‘부재(不在)선고 등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따라 부재선고를 받은 경우에도 문제가 된다. ‘부재선고의 취소(제4조)’를 위해서는 통일 이전에는 ▲사망이 확인됐거나 ▲북한 이외의 경우에서 생존할 경우에만 부재선고를 취소할 수 있고 ‘생존확인’은 취소사유에 해당되지 않아 호적에 올릴 수가 없다.

◇중혼(重婚)=북에 두고온 배우자를 호적에서 되살릴 경우 처음 부딪치는 문제는 중혼이다. 이는 월남 후 새로 결혼해 다시 한 가족을 이뤘는데 북한에 두고온 배우자의 생존이 확인될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다. 이 문제는 상속이나 부동산 문제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현행 민법 810조는 ‘배우자가 있는 자는 다시 혼인하지 못한다’며 중혼을 금지하고 있다. 특히 중혼은 취소기간의 제한이 없어 북한의 배우자의 요청에 따라 후혼(後婚)이 취소될 수도 있다. 50년간 이어져온 남북분단이라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극단적으로는 형사상 간통, 후혼을 이유로 한 이혼소송까지도 모두 가능하다. 물론 후혼에 의한 자식은 혼외자식이 된다.

◇상속 및 부동산=호적정정신청과 중혼취소로 인한 호적 되살리기가 끝날 경우 북한 거주민들은 ‘법적’으로는 상속에 전혀 제약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상속이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점이다. 현행 민법 999조는 ‘상속권 침해를 안 날로부터 3년, 상속이 시작된 날로부터 10년 이내에만 상속회복청구를 할 수 있다’고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에 사는 상속 대상자가 ‘상속권이 침해됐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별다른 실현 가능성이 없다.

또 남한의 아버지가 북한의 자식에게 상속을 한다고 해도 실제 방법이 아직 마련되지 않고 있다. 만약 땅을 팔아 북쪽으로 그 돈을 넘긴다면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논의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 역시 특별법 마련을 통해 이뤄져야 할 문제다.

◇기타=이밖에도 경협이나 관광 등을 통해 남북이 법률상의 갈등을 빚을 개연성도 있다. 남북교류의 증가에 따라 남쪽의 개인이나 회사가 북한 법정에서 재판받을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급진전될 것으로 보이는 남북한 경제협력과 관련된 법률적 인프라가 문제다. 법무부는 경협과 관련, ▲투자보장협정 ▲2중 과세 방지제도 ▲결제제도 ▲지적재산권제도 ▲상사 등 민사분쟁 해결제도 ▲기업가들의 안전보장 제도 등에 대한 법적 인프라 마련이 시급하다고 보고 대책마련에 나서고 있다.

◇외국사례 및 대책=중국과 대만은 이미 70년대부터 통일에 대비, 법적인 문제를 정비해왔다. 이들 국가는 우선 중혼문제에 대해 87년 ‘중혼에 있어서는 후혼이 유효하고 부부가 각기 재혼한 경우에도 중혼한 날로부터 구 혼인관계가 소멸한다’고 규정했다. 이에 대해 서울 가정법원 관계자는 “이를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전혼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는 상태에서 상속 등 몇개 분야에서 전혼의 효력을 부분적으로 인정하는 방법도 고려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상속문제에 관해 대만과 중국은 ‘대륙지구와 대만지구 인민관계법’에 따라 양국민이 동등한 권한을 갖는다.

#### 분단 이전의 토지소유대장을 들어 남북한 양국에 “내 땅이니 돌려달라”는 소송에 대한 우려가 있다. 역시 분단국이었던 독일은 ‘동독지역의 토지에 대해 원칙적으로 지주에게 반환하고 예외적으로 금전보상을 한다’는 원칙을 세웠지만 막대한 보상비용으로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결국 중국·대만이나 독일의 경우 모두 특별법에 의해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고 있는 만큼 우리도 통일법 같은 특수법령이 서둘러 마련돼야 한다는 쪽으로 법조계의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손승욱기자 utopi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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