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20년 외길 삶 남부럽지 않아요”

2000.10.01 17:03

교과서는 말한다. 열심히,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고. 교과서는 또 말한다. 묵묵히 술수 안 부리고 맡은 일을 열심히 하다보면 행복은 그 안에 있는 거라고.

정말? 한 번 들어봤으면 좋겠다. 정말로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 느끼는 세상은 어떤 것인지.

박광중씨(46). 올해로 20여년째 경찰에 몸 담고 있는 강력반 형사다. 아내와 두 딸을 둔 가장이자 평균 월급이 1백80만원 정도인 전형적인 서민. 20년을 뼈빠지게 일해서 남긴 것은 13평 전세 아파트 하나. 물 좋다는 서울 강남서에 있으면서도 가진 옷이래야 점퍼 몇 벌이 고작인, 월급 이외의 수입은 생각지도 못하는 고지식한 사람.

한국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는 ‘처신’을 잘하지 못한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선·후배들에게 밥이나 술도 사야 할 때가 있고 마음에 없는 ‘웃음’도 지을 줄 알아야 하건만 도통 그는 그런 것을 할 줄 모른다. 그저 밑바닥에서 맡은 일만 묵묵히 할 뿐이다.

그의 아내는 몇 년 전까지 동네 아이들을 모아 돌보는 부업을 했다. 한 아이당 4만~5만원 정도 받는 수입으로 살림을 도왔지만 이제는 그나마도 못한다. 다리가 불편해 일을 하기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한 번은 1년 열두달을 점퍼 두 벌로 버티는 것을 본 한 상사가 웃으며 “너 옷 없냐?”고 했다가 되레 마음만 아팠던 적이 있다. 정말 없었기 때문이다. 검소한 아내 덕에 분당에 25평형 아파트를 장만했지만 아직은 내집이 아니다. 잔금을 치를 수가 없어 전세를 줬기 때문. 이곳에서 받은 전세금으로 이자갚고 지금 사는 전세값을 내고 나니 남는 것이 없었다. 서류상으로는 내집이되 사실상 남의 집.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계획없이 태만하게 살기 때문이 아니냐고. 더 못 벌어도 그보다 더 여유있게 사는 사람도 많다고 말하기도 한다.

“잘 모르겠어요. 큰 낭비 없이 받는 것 갖고만 사는데. 외식이래야 삽겹살 사서 집에서 구워먹는 정도이고…. 가족중에 도와야 할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직장이 강남에 있는 탓에 그는 ‘화려한’ 사람들을 많이 본다. 외제차에, 룸살롱에, 나라는 어렵다는데 전혀 어렵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 하지만 그는 그들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저 ‘돈을 잘 벌기 때문이겠지’하고 생각한다. 가끔 ‘잘사는 사람이 저렇게 많은데 왜 나라는 자꾸 어렵다고 하는 거지’라는 의문만 들 뿐.

그의 삶에 대해 속상해 하는 사람은 그가 아니라 오히려 동료들이다. 성실, 착함, 정직 같은 단어가 결국 무능력, 가난, 밑바닥이란 단어와 마찬가지 뜻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열심히 살다 보면 집 하나는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애들에게는 정말 ‘공부 열심히 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10여년 후에 어떤 모습일 것 같으냐는 물음에 덤덤하게 대답한 그의 말. ‘교과서’대로 살아서 행복한 사람이 한국에 몇이나 될까.

/이진구기자 sys1201@kyunghyang.com/


추천기사

기사 읽으면 전시회 초대권을 드려요!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