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순부부 ‘황혼 사랑가’

2000.10.01 18:55

80대 노(老) 신랑·신부가 제4회 노인의 날인 2일 결혼한 지 46년 만에 결혼식을 올린다.

부천시 춘의동 춘의주공아파트에 사는 최석춘 할아버지(89)와 문길순 할머니(80). 노부부는 2일 오후 인근 춘의복지관에서 가족과 이웃들의 축복속에 결혼 46년 만에 전통혼례식을 치른다.

이들은 1954년에 만나 혼인신고를 한 뒤 함께 살면서 두 딸을 두었다. 그러나 남들처럼 식은 올리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북에 처자식을 두고 한국전쟁때 월남했고, 할머니는 남편과 사별한 뒤 주위의 소개로 할아버지를 만났다. 할아버지는 “처자식을 버리고 새장가 가는 데 쓸데없는 짓은 하고 싶지 않다”며 결혼식을 꺼렸고 할머니도 섭섭하지만 남편의 심정을 이해했다.

월남중 사고로 혀가 절반 가량 잘려나가 말을 제대로 못하는 할아버지는 막노동으로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다.

그러나 석달 후면 아흔이 되는 할아버지는 뒤늦게 결혼식을 갖기로 마음먹었다. 한평생 고생만 시킨 할머니에게 ‘마지막 선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12평짜리 영구 임대아파트에 살면서 월 30만원의 생계보조비로 근근이 생활하는 노부부에겐 간소한 결혼식조차 무리였다. 할아버지는 한달전 이런 고민을 춘의사회복지관에 털어놓았고, 복지관측은 결혼정보회사 듀오를 후원업체로 삼을 수 있었다. 모두가 형편이 어려운 영구 임대아파트의 이웃들도 꽃다발, 화분, 어항 등 작지만 정성이 담뿍 담긴 선물을 내놓았다.

춘의복지관 사회복지사 정란씨는 “지역주민만 300여명이 참여하는 떠들썩한 동네잔치가 될 것”이라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결혼 전날인 1일 할아버지는 사모관대를 쓰고 함박웃음을 지었으며 할머니는 연지곤지 찍고 족두리를 쓴 채 예행연습을 했다.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손을 맞잡으며 “여보, 고마워요”라고 말한 뒤 눈물을 떨구자 할아버지는 “할멈, 이제 소원 풀었구려”라며 들썩거리는 할머니의 등을 정답게 두드렸다.

〈김형기기자 hg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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