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탑]카레이스키 외면말라

2000.10.01 18:57

한·러수교 10주년 기념일인 지난달 30일 러시아 연해주 미하일노프카에서는 비록 규모는 작았지만 민족의 의미와 대러 정책방향을 곱씹게한 행사가 열렸다. ‘연해주 코리아타운(우정마을)’ 1차 준공식이 바로 그것이다.

우정마을은 러시아 대륙을 유랑하는 구 소련 거주 한인, 즉 ‘카레이스키’들을 위해 최초로 세워지고 있는 집단거주지다.

구한말 가난 때문에 연해주 지역으로 이주했던 카레이스키들은 지난 1937년 스탈린의 민족주의 정책의 희생양이 돼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했다 구소련 해체와 함께 불어닥치기 시작한 신민족주의 정책에 휘말려 다시 고달픈 유랑의 길에 나서야 했다.

카레이스키들의 안식처가 될 이 우정마을 건설은 박길훈 대한주택건설사업협회장의 동포애에서 비롯됐다.

지난 97년 연해주를 찾았다 난방과 전기는커녕 수돗물조차 끊긴, 버려진 군용막사에서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유랑 카레이스키들을 목도한 것이 계기였다.

고심끝에 10년간 3백억원을 투자, 64만평의 대지에 1,000세대 규모의 카레이스키 정착촌을 짓기로 결심한 그는 성금모금 등을 통해 지난 5월 1차로 38세대의 주택건설에 착수, 이날 준공식을 갖게 됐다. 박회장은 지난해 연해주정부로부터 3백28만평의 농경지를 빌린데 이어 앞으로 6억평의 농경지를 추가로 확보, 매년 1백만t의 곡물을 생산할 계획이다.

한 기업인과 독지가들의 뜨거운 동포애와는 달리 우리 정부의 태도는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냉랭하다. 박회장은 그동안 국무총리와 농림부 장관을 네댓차례씩 찾아가 지원을 요청했지만 정부는 지금껏 이 사업에 한푼의 예산도 지원하지 않고 있다. 정부의 무관심과 단견은 한마디로 안타깝다.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독립국가연합(CIS) 12개 국가에는 현재 48만명의 한인이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채 살고 있다.

남북이 통일될 경우 이들 중 상당수가 한반도로 유입돼 올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들의 무더기 유입에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또다른 통일비용인 셈이다. 따라서 이들이 연해주에 그대로 정착해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은 통일비용을 줄이는 방법이기도 하다.

지난 80년대 독일이 경협을 통해 26억마르크(한화 약 1조3천억원) 이상을 무상지원한 끝에 구소련 정부로부터 게르만 민족이 집단거주하는 볼가강 유역에 게르만 자치구를 허용받았던 전례를 정부는 정책교훈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우정마을과 같은 정착촌 건설은 동포지원이나 농토확장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정부는 지원을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더욱이 러시아에는 회수가능성조차 불분명한 경협차관 14억7천만달러가 남아 있지 않은가. 그 중 극히 일부라도 유랑하는 카레이스키들을 위해 전용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수교 10주년을 맞아 줄줄이 모스크바만 찾고 있는 정·관계 고위인사들부터라도 한번쯤 연해주쪽으로 눈길을 돌려봤으면 한다.

〈임은순·사회부차장 y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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