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는‘총기’괴짜 여고생 손리나

2001.04.01 16:46

3대 거짓말. 장사꾼의 “남는 거 없어”, 노인들의 “이제 죽어야지”, 노처녀의 “시집 안가”. 하나 더 있다. 수능 고득점 수험생의 “과외 한번 안받았어요. 교과서 중심으로 학교수업을 충실히…”

주위를 둘러보면 학원 안다니는 학생이 없다. 다섯살 때부터 파란 눈의 선생님에게서 영어를 배운다. 과외 한번 안받고, 학원 한번 안다니고도 좋은 성적을 받는다면 그야말로 기막힌 일이다.

그렇다면 의정부여고 1학년생 손리나양(16)은 천하의 거짓말쟁이일까. 키 170㎝의 이 ‘꺽다리소녀’는 태어나 지금껏 한번도 과외란 걸 받아본 적이 없다. 학원 문앞에도 가보지 않았단다. 그럼에도 초등·중학교 9년내내 ‘올 수’를 받았다.

그렇다고 리나가 공부만 파고드는 공부벌레는 아니다. 호기심 많은 소녀는 안끼여드는 데가 없다. 초등학교 때는 전교 어린이회장을 했고, 중학교 때는 방송국에서 활약했다. 언어 배우기를 좋아해 인근 외국인교회에서 통역을 맡을 정도로 영어회화 실력도 대단하다. 이러저러한 활동으로 지금까지 받은 상장이 벽장에 가득하다.

그런 리나를 친구들은 외계인 보듯 한다. 하지만 리나는 오히려 학원을 전전하는 친구들을 이해할 수 없다.

“저더러 깬대요. 괴짜라고도 하고. 하지만 제가 진짜 평범하고 정상인 거 아닌가요?”

학원을 다니면 가기 전 준비하는 시간, 다녀와 정리하는 시간이 너무 많이 든다며 “그 시간에 차라리 TV를 보는 게 낫다”고 당돌하게 말하는 리나. 대체 이 자신만만한 소녀에겐 어떤 특별한 비법이 있는 걸까. 해답은 부모의 교육법에 있었다.

어머니 배성임씨(45)는 “하고 싶은 것 다하고, 맘껏 놀라”고 가르쳤단다. 일종의 ‘방목(放牧)’. 또 꾸지람보다는 칭찬을 많이 하고, 메모지에는 늘 “사랑하는 내 딸아”라고 시작하는 짧은 글을 남긴다.

시험이 끝나는 날은 리나가 가장 좋아하는 떡볶이를 먹으러 함께 집을 나선다. 리나가 지켜야 하는 유일한 규칙이 있다면 ‘아침 일찍 일어나기’. 그것은 성실과 부지런함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이 집의 가훈이기도 하다.

리나는 부모의 가르침을 배반하지 않았다. 과외 대신 교과서와 학교수업에 충실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전학을 했지만 붙임성이 좋아 그 해에 바로 어린이 부회장을 맡았고, 이듬해에는 수많은 남자후보들을 제치고 회장으로 선출됐다.

서글서글한 성격에 친구와 후배들의 사랑도 독차지한다. 간혹 ‘짠순이’라는 불평을 듣는다. 용돈을 헤프게 쓰지 않기 때문이다. 교복도 직접 돌아다니며 제일 싼 곳에서 구입한다. 오전 6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교육방송 영어회화 강좌를 듣는다. 유창한 영어실력의 비결은 이것뿐이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싶어하는 리나의 꿈은 아나운서. 직업정신이 벌써부터 대단해서 요즘 아이들처럼 엉뚱한 말을 내뱉거나 공연히 말끝을 흐리는 법이 없다. 발음 또한 또박또박 명쾌하다. 그런 리나의 모습이 기특하고도 ‘깬다’.

/권오경기자 realboo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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