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살기’로 행복추구 인기

2001.04.01 17:04

‘느림은 그 자체로서 가치를 갖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로 하여금 불필요한 계획에 이리저리 정신을 빼앗기지 않고 명예롭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줄 것이다.’ -피에르 상소의 ‘느림의 철학’ 중에서.

개발주의 열풍이 무분별할 정도로 몰아쳤던 지난 수십년간, 최고의 미덕은 더 빨리 더 많은 생산량을 올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치열한 경쟁 속에 숨가쁘게 살아온 오늘날 현대인들은 21세기인 요즘 ‘느리게 살자’고 외치기 시작했다. 그 변화의 조짐은 생활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슬로 푸드’의 인기. ‘맥도널드’로 대표되는 대량생산·기계적인 패스트푸드의 반대개념으로, 자연친화적이고 전통적인 맛과 문화를 추구한다. 속도와 효율을 추구하다가 결국 각종 성장호르몬과 농약에 찌든 먹거리와 광우병같은 인재(人災)를 만들어낸 기존 식생활에 대한 반성이다. 그 예로 최근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선식, 천연재료를 이용한 사찰음식과 채식, 전통방식으로 2~3년간 오랫동안 숙성시킨 각종 장류의 인기를 들 수 있다. 이에 대해 서울농업기술센터의 박유순 생활지도사는 “시중에 유통되는 식료품들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소비자들이 점차 증가하는 추세”라며 “직접 집에서 장을 담가먹거나 깨끗한 채소를 길러먹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말한다.

인터넷 접속이 몇초만 느려도 분통을 터뜨리는 현대인들이지만 취미도 느린 것이 인기. ‘드르륵~’ 빠르게 많이 만들 수 있는 재봉틀을 마다하고 오랜시간 정성을 들여 바느질하며 십자수와 퀼트, 테디베어, 니트류 등을 만드는 인구가 증가추세다. 최근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한 퀼트의 경우 현재 국내에서 공식적으로 약 3만명 이상이 활동중으로 바느질이 취미인 이들은 1백만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한국국제퀼트협회의 고재숙 회장은 “차분하게 몰두하는 동안만은 잡념을 없앨 수 있다는 점에서 명상하듯 한 땀 한 땀 하는 이들이 많다. 바늘로 하는 수공예가 인기인 것은 바로 그 때문”이라고 말한다.

더불어 국선도, 단학선원, 요가 등으로 대표되는 ‘명상’과 같은 정적인 활동도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초기에는 질병치료 등을 목적으로 찾는 이가 많았지만 IMF 이후로는 정신적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경쟁사회 속에서 피해의식과 강박관념에 시달리다보니 ‘나 자신’을 잃어버렸다는 느낌 때문이다. 단학선원 측은 “느리게 산다는 것은 달리는데 있어서 목적, 방향, 자기의 위치를 돌아보는 데 중요하다. 자신을 추스르는 과정을 통해 평상심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느리게 살기’는 곧 환경에 치여 잃어버렸던 소중한 나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찾는 새로운 생활철학인 것이다.

/최민영기자 myc@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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