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원리포트]술-러시아인이 사는 법

2001.06.01 19:10

모스크바 국제관계대학교(MGIMO) 기숙사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는 세르게이 니콜라예비치(42). 그는 한달에 100달러(13만3천원)도 안되는 월급으로 모스크바의 살인적인 물가를 견뎌낸다. 그러나 적지 않은 생활의 부담속에서도 결코 웃음을 잃지 않는다.

3일에 한번씩 밤을 꼬박 새야 하는 힘겨운 근무조건이지만 그에게는 두가지 기쁨이 있다. 우선 안정적인 직장에서 일할 수 있다는 사실과, 가끔 공짜로 보드카나 맥주를 마실 수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는 “수고한다면서 학생들이 건네곤 하는 술선물이 야근의 피로를 말끔히 가시게 한다”며 환한 웃음을 지어보인다.

‘다 드너 니에 아스타블랴이체 즐로’(한방울도 남기지 말아, 재앙을 남기면 안돼). 이 말은 러시아인들이 술을 마실 때 종종 쓰는 말이다. 절대로 받은 술은 남겨서는 안되며, 받은 즉시 빨리 원샷한 후에 술잔을 돌려야 한다는 말이다. 만일 한방울이라도 남기면 예기치 못한 재앙이 올 수 있으니까, 확실하게 뒤처리를 잘 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술에 대한 진한 사랑을 유머스럽게 표현한 것이다.

러시아의 길거리 키오스크(가판점) 상품 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이 술이고, 대규모 상점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매장 또한 주류 코너일 정도로 술은 러시아인들과 떼어놓고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가장 중요한 생필품의 하나이다. 러시아인과 진정한 친구가 되는 가장 좋은 방법 또한 함께 밤을 지새며 술을 진하게 마시는 것이다. 단 하룻밤 만에 무람없는 사이가 될 수 있다.

술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지독한 사랑은 풍토적인 동시에 사회학적인 이유를 내포하고 있다. 술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매섭고 긴 러시아의 한파도, 암울하고 절망적인 세속의 고통도 모두 잊어버릴 수 있게 해준다. 러시아적 생명력이자 마취제이며, 실질적인 삶의 동반자다.

〈박정호/한국외대 외국학종합연구센터 러시아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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