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이영화]‘펀치 드렁크 러브’

2003.05.01 19:08

감독 폴 토머스 앤더슨·출연 애덤 샌들러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신작 ‘펀치 드렁크 러브’(Punch-drunk love)는 우리 등 뒤로 슬금슬금 다가와 뒤통수를 후려치는, 짓궂은 친구 같은 영화다. 그리곤 키득키득 웃는다. 관객에게 날리는 펀치로 보면 헤비급 권투선수감이고, 찌르고 빠지는 솜씨로 치면 펜싱선수 뺨친다. 시시때때로 던져주는 충격과 자유분방한 상상력은 감독의 전작 ‘매그놀리아’와 동급에 올려놓을 만하지만, 전작들에 비해 한결 부담없고 유쾌해졌다.

누나를 일곱이나 둔 ‘베리’는 조그만 화장실용품 판매사 사장. 뭘 시켜도 잘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직원 ‘랜스’를 두고 어설프게 회사를 운영하는 그가 사업보다 열정을 쏟는 일은 푸딩 사 모으기다. 그것도 먹으려고 사는 게 아니라 경품으로 주는 항공사 마일리지를 쌓기 위해서다. 한심한 듯 보이는 베리의 일상 속에는 그러나 문득문득 솟구치는 파괴본능이 도사리고 있다. 그는 어린 시절 창피했던 기억이 되살아날 때면 창문이고 방문이고 모두 부숴버리고 만다.

할리우드의 그림자(부기나이트)에서 미국사회 및 인물간 관계의 그림자(매그놀리아)로 탐구대상을 확장했던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인물 내부의 빛과 그림자를 파고든다. “친구는 선택할 수 있지만 가족은 선택할 수 없다”는 가족에 대한 감독의 고민에서 알 수 있듯, 주인공은 과거의 사소한 기억까지 시시콜콜히 공유하고 있는 누나들에게는 고민을 털어놓고 싶지 않다.

그래서 전화를 건다는 곳이 폰섹스 서비스. 전화 저편 여자의 말만 믿고 신용카드 번호 등 모든 개인정보를 유출시킨 베리는 악덕업자의 협박에 시달린다. 불행인지 행복인지, 때마침 사랑스런 여인 ‘레나’가 전부터 만나고 싶었다며 다가온다. 주인공은 레나 모르게 악덕 폰섹스업자를 물리치고 사랑을 얻을 수 있을까.

제목에서 ‘펀치 드렁크’는 ‘주먹에 취한’, 즉 연타를 맞고 휘청댄다는 뜻이다. ‘매그놀리아’에서 쏟아져내린 ‘개구리 비’가 지난한 12라운드 끝에 날아든 스트레이트 카운터펀치였다면, ‘펀치…’는 라운드 곳곳에서 위력적인 잽을 퍼붓는다. 격앙된 사운드와 극단적 구도 등 ‘앤더슨표 스타일’로 굳어진 형식미는 뉴욕타임즈가 “강한 추진력이 느껴지는 쾌감”이라 평하는 등 현지언론이 상찬을 올렸다. 이처럼 감독은 왕성한 혈기를 자랑하면서도 인물을 향해 보여주는 원숙한 애정은 33세라는 젊은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다. 관객은 어느 순간부터 주인공을 따라 화내고 당황하고 웃게 된다. 여기에는 미국인들 사이에서 ‘편하고 정이 가는’ 스타로 자리잡은 애덤 샌들러에게 베리역을 맡긴 캐스팅이 주효했다. 극중 어색한 푸른 양복이 서서히 몸에 익어가는 샌들러를 보고 있자면 ‘성질 죽이기’라는 그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이밖에 루이스 구즈만 등 ‘앤더슨 감독 사단’의 반가운 배우들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에서 ‘취화선’과 함께 공동 감독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9일 개봉된다.

/송형국기자 oddeve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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