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야에 묻혀 성리학을 꽃피우다

2003.08.01 17:21

◇대숲에 앉아 천명도를 그리네

백승종/돌베개

이 책은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1510~1560)에 대한 전기이다. 하서는 조선 중종·명종때의 선비로 퇴계 이황, 남명 조식 등과 같은 시대를 살았다.

하서의 삶은 남명과 비슷하다. 둘은 벼슬을 바라지 않았다. 임금이 내리는 관직은 사양하기 일쑤였다. 경제적으로는 곤궁하지만 시골에 묻혀 책보고 글쓰는 것으로 일생을 보냈다. 그러나 불의에 대해서는 피하거나 타협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섰다.

남명은 명종에게 “자전(임금의 모후·문정왕후를 지칭)은 깊숙한 궁중의 한 과부에 지나지 않고, 전하는 선왕의 한낱 외로운 후사(後嗣)에 불과하다. 전하의 국사는 이미 잘못되었고, 인심은 떠나갔다”며 죽음을 무릅쓴 상소를 올렸고, 하서도 외척인 윤원형의 전횡을 비판하다 목숨이 위태롭기까지 했다.

오늘날 남명을 아는 사람은 많아도, 하서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남명은 학파를 이룰 만큼 제자를 길러냈으나 하서는 후진양성에는 별다른 족적을 남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를 짓고, 주자학에 대한 이론을 정립하는 데는 하서가 더 뛰어나다고 할 만큼 그는 당대의 대표적인 유학자였다.

조선왕조실록은 그의 시에 대해 “맑고도 화려하며, 고상하고도 신기하여 견줄 만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극찬을 한다. 그가 조선 성리학의 중심적 주제인 천인(天人)의 관계를 그림으로 그린 천명도는 유명한 이황과 기대승의 사단칠정논쟁을 불러온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 자신이 대학자였던 정조 임금은 그를 ‘동방의 거유(巨儒)’로 높게 쳤다.

‘대숲에 앉아 천명도를 그리네’는 저자(서강대 교수)와 하서가 가상 대담을 하는 대화체 형식을 빌려 쓰였다. 전기를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라는 느낌을 들게 한 독특한 서술방식으로 조선의 큰 선비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한다. 하서를 통해 조선 사대부들이 살던 모습도 엿볼 수 있다. 1만8천원.

〈김용석기자 kimy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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