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을 배우는 교실’ 곤평늪

2003.09.01 08:37

논 엎어 생태학습장 만든 충주 야동초등 권영정 교장

“저기 있는 거 봐. 고추잠자리지? 근데 둘이 짝짓기를 해서 하트 모양이 됐네”

“이건 송사리야. 알을 배에 붙이고 다니다 가장 좋은 바위에다 붙이지”

“요건 꽃창포인데 냄새를 맡아봐. 향기가 나지? 옛날엔 단오날에 이걸로 머리를 감았단다”

‘공존을 배우는 교실’ 곤평늪

충북 충주 한가운데에 넓게 펼쳐진 모시래 들판. 초록빛 벼들이 물결치는 그 한가운데에 ‘낯선 곳’ 하나가 자리잡고 있다. ‘늪 생태체험 학습장’ 곤평늪. 지난해 5월5일 어린이날 생겨난 인공 늪이다. 노랑어리연꽃·긴혹삼릉 등 평소 보기 힘든 수생식물부터 방아깨비·물방개 등 곤충, 우렁이·참붕어 등 민물어류에 물뱀까지 130여종의 동식물들이 먹이사슬을 이루며 살고 있는 곳이다.

원래 이곳은 권교장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땅으로 매년 12가마니의 쌀을 수확하던 600평짜리 논이었다. 전근하는 학교마다 생태학습장을 만드는 등 20여년간 생태교육에 열성을 바쳐온 권교장은 사람들이 찾기 쉬운 곳에다 생태늪을 만들겠다며 1천2백만원의 사비를 털었다.

“집안식구들은 모두 반대했어요. 쌀농사 잘 짓던 곳에 뭣하러 돈도 안나오는 것을 자기 돈 써가며 만드느냐고요. 동네사람들도 처음엔 미쳤다고들 했죠. 들판 한가운데가 뻥 뚫려 있으니 누가 좋아하겠어요”

‘공존을 배우는 교실’ 곤평늪

곤평늪을 열어 생태체험학습 프로그램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할 무렵 예상치 못한 시련이 닥쳤다. 그해 8월말 전국을 강타한 태풍 루사가 곤평늪도 가만히 놓아두지 않은 것이다. 새벽부터 쏟아지는 비를 뚫고 곤평늪으로 뛰쳐나온 권교장은 늪의 물이 넘쳐나는 걸 지켜보며 발만 구를 수밖에 없었다. 곤평늪의 물이 넘치면서 애써 모아뒀던 참붕어 800마리와 미꾸라지 등 어류 대부분이 도망갔고, 식물들 상당수가 뿌리째 쓰러졌다.

권교장의 허탈감은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컸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솔직히 ‘돈 생기는 것도 아닌데 뭣하러 이런 일을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동네 어른들도 ‘그것 봐라. 쌀농사나 하지’라고들 하셨죠. 그렇다고 이제 와서 그만둘 수도 없었어요”

‘공존을 배우는 교실’ 곤평늪

다시 제방을 높이 쌓고 동식물들을 채워넣었다. 원주 환경청에서 동이풀을 심어주고, 충북 내수면연구소에서 참붕어를 주는 등 주변에서 도와주겠다는 사람들도 생겼다. 늪이 제 모습을 찾아가자 곤평마을 사람들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일 나가거나 들어오는 길에 한번씩 들르고, 논에 뿌린 농약 때문에 늪에 피해가 가는 것 아니냐고도 했다. 곤평늪에 무슨 일이 생기면 즉각 알려주기도 했다.

“곤평늪에는 특별히 관리인이나 경비원이 없어요. 대신 곤평마을 주민들 모두가 파수꾼입니다. 얼마전에는 누가 늪에서 우렁이를 마구 잡아가는 것을 마을사람들이 알려줘서 막았지요”

권교장의 하루 일과는 곤평늪에서 시작해 곤평늪에서 끝난다. 아침식사 전인 새벽 6시와 퇴근길인 오후 5시에 각각 1시간씩 곤평늪을 들르는 게 이제는 버릇이 됐다. 주말에 쉬지 못한 지도 오래됐다. 지난 7월에는 인터넷 홈페이지(www.gon2002.com)를 개설하면서 게시판에 올라오는 질문에 답글을 달아주느라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른다.

‘공존을 배우는 교실’ 곤평늪

“이 일은 재미가 없으면 못합니다. 늪에 매료돼야 하는 거지요. 여기 송사리를 보세요. 경기 퇴계원에서 30마리를 분양받았는데 벌써 1,000여마리로 늘었어요. 아침에 조그마한 송사리가 눈을 반짝이는 걸 보면 정말 놀랄 겁니다”

-자연에 푹빠진 아이들 호기심 만발-

곤평늪 생태체험

“이 핫도그는 뭐예요”

“그건 부들인데 강가나 늪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거예요”

지난달 22일 곤평늪은 어린 손님들로 복작거렸다. 이날은 곤평늪 생태체험 활동이 있는 날. ‘놀이공원 놀러가듯이 와서 구경만 해서는 제대로 된 교육이 안된다’는 권영정 교장의 신념에 따라 아이들이 직접 늪을 둘러보고 체험학습을 하는 것이다.

아이들과 어머니들은 늪에 서식하는 각종 생물들의 명칭과 특징, 생태계 먹이사슬 등에 대한 권교장의 설명을 듣느라 여념이 없었다. 늪의 생물들을 디지털카메라로 사진 찍거나 이름이나 특성을 노트에 적기도 했다.

이어지는 시간은 수생 어항 만들기. 미나리·마름·부레옥잠 등 수생식물과 우렁이 등을 늪에서 채취, 어항에 옮겨 ‘소형 늪’을 만드는 것이다. 참가자들은 이 어항을 각자 집으로 가져가 권교장이 나눠준 관찰보고서를 작성하는 등 생태학습 교재로 활용하게 된다. 실제로 권교장의 홈페이지나 휴대폰을 통해 어항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묻는 학부모들이 많다. 우렁이가 새끼를 낳았다는 글도 있다. 딸 소영이(9)와 함께 늪을 처음 찾았다는 강춘희씨(34)는 “아이가 자연을 접할 기회가 너무 적었는데 여기 와서 너무 좋아한다”며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선 이런 데가 있다는 게 다행”이라고 말했다.

현재까지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은 1,000여명. 지난해에는 ‘자연생태환경체험탐구대회’를 열기도 했다. 권교장은 “어항을 만들면서 직접 체험해봐야 생태환경을 제대로 알고 지속적으로 공부할 의욕도 생긴다”며 “인간과 자연, 교육이 합해지지 않으면 미래를 이어갈 수 없다”고 말했다.

〈충주/글 김진우·사진 정지윤기자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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