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탄강댐 民·官갈등 폭발위기

2003.09.01 18:32

=[찢겨진 산하를 찾아서]홍수댐 건설싸고 상반된 주장=

경기 파주시에서 21년째 살고 있는 이진석씨(61·회사원)는 보슬비가 내리던 지난 8월29일 오후 임진강으로 나와 봤다. 8월 들어 하루 걸러 한차례꼴로 비가 자주 내리자, 1990년대말과 같은 큰 물난리를 당할까봐 걱정이 돼 강을 둘러보기 위해서였다.

“지난달 장마 때보다 물이 훨씬 더 불었어요. 한탄강댐이 생기면 걱정이 덜할 텐데”

파주시를 비롯한 경기 북부 쪽의 사람들이라면 모두 1996, 1998년과 그 이듬해에 겪었던 홍수 탓에 비가 조금만 내려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하지만 상류인 한탄강에 정부의 계획대로 한탄강댐이 세워지면 홍수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믿고 있었다.

임진강 줄기를 거슬러올라 닿은 한탄강 상류의 주민들도 경기 북부지역 사람들처럼 홍수 걱정을 하고 있었다. 파주·문산 등 경기 북부 사람들과는 거꾸로 한탄강댐이 들어서면 오히려 더 큰 홍수를 겪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댐이 생기면 웃머리(상류)의 우리 지역엔 큰 비가 올 때 물이 쉽게 빠지지 않아 수해가 날 겁니다”

임진강 상류인 한탄강에 댐을 짓겠다는 정부의 계획을 둘러싸고 정부와 지역주민들 사이에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한강의 상류 줄기인 동강에 영월댐을 짓겠다는 정부의 계획을 놓고 벌어졌던 갈등이 아직 기억에 선한데, 한탄강댐 갈등도 그리 낯설지 않은 양상을 띠고 있다.

건설교통부는 임진강 하류의 홍수 예방을 위해 댐 건설이 필요하다고, 지역주민과 환경·시민단체 등은 여러 이유를 들어 필요없다고 서로 상반되게 주장하고 있다.

건교부는 임진강 하류인 경기 북부에 상습적으로 물난리가 닥쳐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가 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국지성 집중호우가 자주 내려 하천의 범람이 잦은 상황에서 홍수조절을 위한 댐을 지어야 가뭄과 함께 물난리 피해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역 주민, 특히 수몰 예정지의 최상류 쪽에 사는 강원 철원 주민들과 경기 연천·포천의 대다수 주민들은 댐 건설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상류쪽 주민들은 댐이 들어서 물이 고이면 큰 집중호우가 내릴 경우 자신들이 살고 있는 상류쪽에는 병목현상 때문에 하류쪽 계곡으로의 물빠짐이 원활하지 않아 댐을 짓지 않았을 때보다 더 큰 물난리를 겪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경기 연천군 관계자는 “1990년대말 한탄강의 연천댐이 철거된 이후에는 상류쪽의 경우 한꺼번에 많은 비가 내려도 빗물이 하류로 비교적 잘 빠지고 있다”며 “이같은 결과는 한탄강댐이 들어서면 상류 지역에는 배수가 원활하지 않을 것이란 점을 간접적으로 입증하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게다가 이곳 주민들은 “정부가 진정으로 임진강 하류의 홍수 피해를 막을 생각이라면 댐을 상류쪽 지류인 한탄강이 아니라 임진강 본류에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철원 출신의 강원도의회 구인호 의원은 “임진강의 홍수 조절을 위해서는 적어도 10억㎥의 물을 저장할 수 있는 댐이 필요한데도 고작 3억여㎥밖에 가둘 수 없는 댐을 임진강 지류인 한탄강에 지으려 한다”며 “임진강 하류의 홍수를 제대로 막으려면 댐을 임진강 본류에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더욱이 연천읍 고문리 부근에 댐 수문이 놓여질 예정인데, 이 계획대로라면 한탄강 하류로 흘러드는 지천인 신천·영평천·차탄천의 물은 홍수조절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점을 들어 주민들은 “댐의 홍수조절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같은 주장에 대해 하류의 파주시 관계자는 “한탄강댐이 생기면 임진강 하류지역의 주민들은 홍수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며 댐 건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부부처 사이에도 마찰이 생겼다. 국방부는 지난 1월말 “수몰 예정지에 여러 군사시설이 있어 작전 수행에 차질이 예상되므로 댐 건설을 재검토해 달라”는 요청서를 건교부 장관에게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국방부 관계자는 “최근 군사시설과 관련한 민원이 증가하는 추세”라며 “이곳의 군사시설이 물에 잠기면 대체 시설과 부지를 확보하기 어렵다”고 요청서를 보낸 경위를 설명했다.

또 최근 “생태계 훼손을 막기 위해 연중 350일 이상의 기간 동안 댐 수문을 개방해야 한다”는 환경부의 환경영향평가 협의내용이 공개되자 환경피해 우려와 함께 “1년에 15일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간 동안 수문을 열어둬야 한다면 굳이 1조원이 넘는 예산을 들여 댐을 지을 필요가 있느냐”란 반론이 주민들 사이에 팽배해 있다.

철원군 관인면 자신의 논에서 피를 뽑고 있던 60대 농부는 먹고 사는 문제를 얘기했다.

“논 900여평 중 절반 가량을 잃게 될 것 같습니다. 보상을 받아도 금액이 적어 대처로 나갈 수 없고, 남아서 농사를 지어도 양식을 댈 수 없어 살 길이 막막해요”

환경·시민단체도 댐 건설 반대에 합세하고 있다. 이들은 한탄강 유역의 지질은 여러 차례의 화산 폭발로 생겨난 현무암 지대여서 암반층이 서로 분리돼 있는데다 강도가 약해 수압을 견딜 수 있을지 의문이란 의견을 제시했다. 게다가 화산활동으로 생겨난 자연 동굴이 산재해 있어 안전에 큰 위험이 있을 것이란 주장도 나오고 있다.

또 천연기념물인 어름치를 비롯한 다양한 희귀 동식물이 줄어들고, 무엇보다도 국내 최대규모의 종합사격장인 연천읍 인근의 ‘다락터 야포 사격장’ 일부가 잠기게 돼 중금속으로 인한 수질오염을 일으킬 것이란 지적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경기 북부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환경단체인 한탄강네트워크의 이철우 사무처장은 “지금까지 사격연습 과정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포탄이 다락터 사격장에 무수히 떨어졌다”며 “환경오염과 함께 국방부가 사격장 일부가 물에 잠기더라도 사격장을 계속 운영할 태세여서 댐의 안전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환경단체들은 한탄강댐 예정지가 재인폭포 등 화산암이 빚어 놓은 수려한 비경과 함께 신석기 및 구석기 시대의 유적이 많은 곳이란 점 등을 들어, 댐이 들어서면 수많은 관광자원이 사라져 지역경제에 타격을 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철원/김판수기자 pansoo@kyunghyang.com〉

=◇한탄강댐은?=

시행기관인 한국수자원공사에 따르면 한탄강댐은 1조원 가량의 예산을 들여 댐 길이 705m, 댐 높이 85m, 수몰면적 4백80만여평, 물을 가둘 수 있는 양 3억5백만㎥의 대규모로 건설될 계획이다.

당초 홍수조절 목적 이외에 생활용수나 농·공업용수 등의 용도도 포함돼 건설이 추진되었으나 최근 수자원공사가 홍수조절용으로만 활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2007년 완공 예정으로 수자원공사는 댐 주변에 생태공원을 조성하는 등 환경친화적으로 건설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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