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광장]바른말과 쓴소리의 빈곤

2003.09.01 18:40

모두가 그런 것은 물론 아니지만 국내 스포츠 매체들의 보도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릴 때가 많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1. 육상이나 수영 등 상대적으로 낙후돼 있는 기록경기의 경우다. 아시아권 혹은 세계 규모 주요 경기가 다가오면 언론들은 당연히 예상기사를 내보낸다. 그 내용은 대개 이런 식이다.

‘우리나라 선수의 기록이 많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 출전하는 외국 유명선수들의 최근 기록도 신통치 않다. 우리나라 선수가 자신의 베스트를 다하기만 한다면 충분히 입상 가능성이 있다’ 즉, 세계정상급 외국선수의 경우 부진한 최근 기록을, 우리나라 선수의 경우 자신의 최고 기록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자기집 논에만 물을 대자는 식의 논리가 아닐 수 없다.

결과는? 외국선수가 늘 부진하란 법도 없고 우리 선수가 때맞춰 자신의 베스트 기록을 낸다는 보장도 없으니 언론의 추임새에 휩쓸려 기대에 부풀었던 순진한 팬들만 허망해질 뿐이다.

2. 얼마전 핀란드에서 끝난 U-17 세계청소년축구대회의 예를 들어 보자. 지난해 아시아대회를 손쉽게 제패하고 유럽에서 열린 각종 친선대회에서 연전연승을 거둔 대표팀을 두고 매스컴은 물론 전문가들마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찬사를 보내지 않았던가. 유럽, 남미 등 정상급팀들과 아시아권의 실력차는 어느 정도인지, 그동안 친선경기를 치른 상대들의 수준은 또 어느 정도인지 냉정하게 짚어주는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다.

대회를 앞두고 우리 홈에서 벌어진 4개국 친선대회에서 고전하는 모습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낙관적인 전망은 흐려질 줄 몰랐다. 말로는 8강을 목표로 한다지만 내심으로는 4강, 혹은 그 이상을 기대한다는 분위기였다. 결과는 아시는 대로지만, 하루 아침에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여론의 향배에 어린 선수들이 누구보다도 상처를 입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3. 지난달 31일 끝난 대구여름유니버시아드의 메달 집계를 보면 이상한(?) 점이 눈에 띈다. 세계를 지배하는 스포츠제국인 미국이 겨우 금메달 5개로 8위에 올라있는 것이다. 3개를 딴 북한보다 불과 한 등급 위일 뿐이다. 중국이 41, 러시아 26, 대한민국 26… 이 수치만 놓고 보면 미국 스포츠는 적어도 대학스포츠는 세계정상권에서 탈락한 셈이다.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지 않은가. 이는 미국의 무관심을 나타낼 뿐이다. 그렇다면 왜 미국이 그렇게 무관심한 것인지, 이번 대회에 한한 것인지, 관례적인 것인지 짚어주는 기사가 하나쯤은 눈에 띄어야 옳다. 그 점을 해명하자면 성공적으로 끝난 U대회의 수준 자체에 대해서도 언급해야 하기 때문일까. 아무도 말이 없다.

스포츠의 속성상 야유와 질타보다는 격려와 박수가 더 필요하다는 점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최소한의 바른 말과 쓴소리는 이 분야에서도 필요악이 아닐까.

〈고원정/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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