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발칼럼]이혼과 주홍글씨

2003.12.01 08:15

면허가 없는 나는 ‘털 없는 원숭이’들과의 의례적인 연말 담합을 위해 대형마트에서 장을 좀 보려고 늠름한 차를 소유한 그녀를 불러냈다. 차에 오르자 처음 보는 녹색 눈빛의 고양이가 한 손을 치켜들며 ‘야옹~’ 아는 체를 했다. “전 남편 고양이야. 출장 간다고 며칠 맡기더라고.” 나는 이상하게도 갑자기 기분이 환해졌다. 휘파람이라도 불고 싶어졌다.

난 어렸을 때부터 ‘자식새끼 편모, 편부 슬하에서 반쪽이 인생으로 키우지 않겠다’며 인생을 찬 밥 구겨 넣듯이 꾸역꾸역 삼키는 사람들을 즐비하게 봐 왔다. 한 인간의 인생이 자식을 걸고 넘어지며, 희생되는 게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니 마음이 아팠다. 난 하기 싫은 걸 억지로 참고 버텨낼 만큼 인생을 바쳐야 할 것은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삶의 드라마에 인간이 두 번, 세 번 출연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속을 푹푹 썩이며 한 평생을 버티는 건 정말 기가 막힌 일, 미련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이혼을 두 번, 세 번 하게 되더라도 누군가가 누군가를 ‘잘못 재단된 인생’이라고 손가락질할 수 없다는 얘기다. 누가 이혼을 쉽게 결정하겠는가. 그래서 저잣거리의 사람들과 매체들이 치솟는 이혼율에 대해, 파뿌리로 함께 늙을 수 없는 인간들이 검은머리인 채로 헤어지는 것에 대해 걱정과 우려를 표명할 때, 나는 속으로 휘파람을 ‘휙휙~’ 불어댔다. 사람들은 이혼하는 걸 ‘식은 죽 먹기’처럼 사람들이 생각한다고 이죽거리곤 한다. 이혼하고 나서 어떻게 인식의 모드를 변화시켜야 더 즐겁고 행복한 인생의 페이지로 넘어갈 수 있는지에 대해 얘기하길 꺼린다. 전 부인의 새 남편과 함께 모여 딸아이의 생일파티를 치러줄 수 있는 모드가 이 땅에 자연스럽게 귀착되기에는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내 주변의 이혼한 사람들이 좀더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는 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며칠전 고현정의 이혼 소식이 9시 뉴스에 방영되었다. 고현정의 이혼은 경제계 소식으로 분류돼야 할까? 고현정이 이혼을 하자, ‘거대 재벌의 이혼 프로젝트의 희생양’ ‘고현정 습관적으로 바람을 피우다’ 등 상반된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상대적인 현실 속에서 진실은 늘 외롭지만 어디엔가 진실은 존재한다. 아무튼 나는 고현정이 왜 이혼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다만 이왕 이혼한 바에 주홍글자 낙인을 찍으려는 사람들과 대적하며 시간 낭비하지 말고, 행복하고 따뜻한 새 삶으로, 4분의 4박자 보통 빠르기로 전진하길 바란다. 내가 걱정 안 해도 알아서 잘 하겠지만 말이다.

〈정유희/월간 PAPER기자, 콘텐츠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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