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음력설과 양력설의 충돌

2005.01.26 17:22

설은 새해의 첫날이다. 설을 한자로는 원조(元朝) 또는 원단(元旦)이라 한다. 우리 조상들은 적어도 삼국시대부터 설날을 맞아 여러 행사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설날은 태양력에 기초한 절기(節氣)에 따른 것이 아니라 달을 중심으로 한 태음력에 따라 지정되었다. 설날은 달이 모습을 나타내려 이지러진 상태에서 움직이기 시작한 날이다. 달의 움직임이 계속되어 완전한 형태로 나타나는 날이 보름, 곧 상원(上元)이다. 그래서 초하루부터 보름까지 설날의 행사와 의례를 진행하는 기간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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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개화파와 기독교도들은 서양의 문물제도를 수용하여 개혁을 추진하면서 양력의 사용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또 일부 개화인사들은 일본 근대문물의 영향을 받아 양력설을 쇠는 모습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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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대한제국초 양력설 지정-

다음 해인 1895년 을미개혁이 단행되고 대한제국이 선포되었다. 이에 따라 다음해인 1896년부터 정식으로 건양(建陽)이란 연호를 사용하고 양력 1월1일을 공식적인 양력설로 지정했다. 건양은 “새로운 양력을 세운다”는 뜻이다. 건양 원년의 1월1일은 음력으로 환산하면 을미 11월17일에 해당한다. 양력 설날, 고종은 대신들과 서울에 주재하는 외국 공사들로부터 신년 하례를 받았다. 그리고 모든 공문서에 양력을 표기하게 했다. ‘고종실록’을 편찬할 때 이해부터 건양을 표기하고 양력 1월1일을 기준으로 하여 관련 사실을 기재하고 있다. 이것이 공식적으로 양력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궁중의 내명부들은 물론 벼슬아치나 여염에서도 양력설을 지낼 리가 없었다. 더욱이 단발령으로 의병이 봉기할 정도로 한번 소동을 치르고 난 뒤 내각에서는 “망건을 폐지하고 의복제도는 외국제를 채용해도 무방함”이란 결정을 내려 또 한번 소동을 벌이게 되었다. 머리와 의관제도 그리고 음력설의 고수는 하나의 운동 이슈로 등장한 것이다. 1904년 개화사상에 심취한 고종은 여러 세력의 반대를 물리치고 정식으로 궁중에서 설을 지냈다 한다.

반대 정서에 따라 양력설은 처음부터 주춤거렸다. 궁중에서도 여전히 음력설에 따라 여러 의례를 치렀고 여염에서는 말할 나위도 없이 음력설을 쇠었다. 벼슬아치들은 이 눈치 저 눈치를 보았다. 벼슬아치들은 겉으로는 양력설을 쇤다고 떠들어 놓고 적당하게 치르고 음력설에는 골방에서 진짜로 차례를 지내는 풍습으로 바뀌었다. 더욱이 지방에서는 양력설을 지내는 집들이 거의 없었다.

그리하여 두 가지 절충작업이 벌어졌다. 궁중에서는 정초가 되면 국가의 여러 행사를 적은 달력을 나누어주는 것이 관례였다. 벼슬아치들이 이 달력을 보고 국가행사 또는 궁중의례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 무렵 궁중에서 배포하는 달력에 음력을 병기하고 간지와 절후를 적었다. 또 민간인이 만들어 시장에서 판매하는 달력에도 음력과 양력을 병기하고 간지와 절후 명절 등을 적었다. 이런 현상은 곧 벼슬아치나 민간인들이 음력을 여전히 사용하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그래서 양력설은 ‘서양 설’ 또는 ‘개화 설’이라 부르면서 이중과세의 현상이 일어났다.

-총독부 강권에도 민중 음력설 고수-

일제시기 들어 조선총독부에서는 양력설 쇠기를 적극적으로 권장했다. 그들은 조선의 명절을 모조리 부정하고 일본의 명절만을 지내라고 강요했다. 이와함께 민족문화 또는 겨레의 얼을 말살하는 정책을 폈다. 그들은 언론을 통해 이 운동을 펼쳤다. 매일신보에서는 양력설 때 일본 천황과 총독의 연두 메시지를 실으며 양력설의 의미를 강조했다. 또 조선일보 등 언론과 이광수 등 친일파들은 이중과세의 폐해를 말하고 양력설 쇠기를 권장하는 논설을 게재했다. 하지만 더욱 세찬 반대현상이 일어났다. 조선 사람들은 양력설을 ‘왜놈 설’이라 부르면서 음력설을 마치 독립운동 하는 심정으로 고수했다.

해방이 된 뒤 음력설 과세를 강제로 막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승만은 근대화의 모델을 기독교 또는 미국으로 보는 의식이 강렬했다. 그리하여 관료와 자유당 정권은 1949년 신정을 휴무일로 지정하고 이중과세의 폐단을 지적하면서 음력설 과세를 억제하려 들었다. 박정희는 근대화의 모델을 일본의 ‘메이지 유신’으로 보았다. 그리하여 박정희 정권에서는 가정의례준칙을 만들어 허례허식을 배격하면서 이중과세는 경제발전에 방해가 된다는 논리를 전개했다. 더욱이 음력설을 맞이해 연휴를 주는 업체에 대해 행정처분을 하는 따위로 음력설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음력설 과세는 결코 기세가 죽지 않았다. 산업화에 따라 농촌에서는 이농현상이 일어나고 도시에서는 인구가 늘어났다. 1970년부터 설만 되면 도시 사람들은 농촌으로 가는 통에 고속도로와 국도는 차로 메워져 민족대이동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였다. 이렇게 되자 1985년 정부에서는 어쩔 수 없이 음력설을 ‘민속의 날’로 지정하게 되었다. 그 명칭도 반쪽짜리 설이라고 할 정도로 어중간한 데다가 하루의 휴무를 주는 정도였다. 그러나 회사와 공장에서는 음력설에 귀성차를 배치하여 귀성을 돕고 며칠간의 휴가를 주었다.

-‘민속의 날’ 거쳐 89년 제자리 찾아-

마침내 1989년 정부에서는 음력설을 설이라 명명하고 3일간의 휴무를 주는 대신 양력설에는 하루의 휴무를 정했다. 이제서야 설은 제자리를 잡았고 바른 방향으로 가게 되었다. 다시 말해 세계적 보편성을 살려 양력설은 신정으로서 정부의 공식 행사를 치르고 음력설은 구정으로서 민족정서를 살려 부모에 대한 효도, 조상 숭배의 정신, 가족 친목의 장소로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난 제국주의 침략과 독재정권의 압제를 받으면서 음력설은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어 가위 갈등을 넘어 충돌을 빚었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이제는 음력설과 양력설은 충돌이 아니라 타협과 합리를 만들어낼 계기가 되었다. 이번 음력설에도 이런 의미를 되새김질해 보기로 하자.

-중국의 설날 ‘춘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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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춘절은 옛 명성을 되찾았다. 공식적으로는 4일을 휴무일로 정했으나 민간에서는 보통 5일까지 각종 행사와 놀이판을 벌이면서 설을 지내고 있다. 중국 사람들은 춘절에, 민족의 단결을 과시하고 인민들끼리 정감을 나누며 중국 고유문화를 선양하는 계기로 삼는다.

중국 사람들은 춘절을 맞이하기에 앞서 여러가지 준비를 서두른다. 외지에 나가 있는 식구들은 고향으로 돌아온다. 춘절의 대이동은 우리나라 사정과 별로 다르지 않다. 온 집안 식구들이 모여 집안과 골목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목욕을 한다. 또 며칠 먹을 음식을 미리 장만한다. 춘절 기간 동안, 작은 일도 하지 않고 밥을 짓는 것도 삼간다. 더욱이 아이를 때리거나 다른 사람에게 욕을 하는 것도 조심한다. 불을 함부로 지피지 않고 가족이나 이웃과 서먹한 관계가 생겨나는 행동을 조심하는 것이다. 이는 전통적으로 정초에는 늘 몸가짐을 조심하는 신일(愼日)의 뜻을 살리는 모습이다.

춘절의 첫날을 개정(開正)이라 부른다. 첫날을 연다는 뜻이다. 이날에는 친척의 어른을 찾아 뵙고 인사를 올리고 안부를 전한다. 곧 우리나라의 세배와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나이 많은 어른의 집일수록 북적거렸다. 춘절에는 미리 장만한 음식을 먹는데 주로 북쪽지대에서는 물만두, 남쪽지대에서는 떡을 먹는다. 특히 닭고기를 취안자푸(全家福)란 이름을 붙이고 즐겨 먹는다. 곧 닭고기를 먹으면 온 집안 식구가 복을 받는다는 뜻을 담고 있다.

중국 소수민족들의 설 쇠는 모습도 다를 바가 없다. 다만 그들은 각기 자기 민족의 전통적 역법에 따라 설을 쇠고 있다. 한편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대개 음력설을 지내고 있다. 여러 행사와 놀이의 모습도 중국과 비슷하나 다만 음식은 약간씩 다르게 만들 먹는다. 그러니 우리나라와 중국 그리고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같은 전통적 음력설 문화권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일본만은 다르다. 일본에서는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인 뒤인 1872년 처음 태양력을 수용하고 공식적으로 음력을 폐지했다. 일본에서는 정초 3일을 ‘국민 축일’로 지정하고 설을 쇤다. 그러나 일본의 설은 그리 요란하지 않다.

〈이이화/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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