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는 영화·소설

(74)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

2005.11.01 15:48

시나리오 이하|소설각색 김혜연

[미리보는 영화·소설](74)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

석호는 잠시 못 알아듣고 눈을 희번덕거렸다.

“뭘 먹어?”

“야 이 새꺄, 똑바로 말해. 너 은숙이랑 했지? 했지!”

종두가 다시 덤벼들려는 걸 석호가 막았다.

“안 했어 씨발!”

“좆까 씨발놈아!”

석호가 종두 따귀를 퍽 하고 때리자 종두가 비슬 물러섰다. 그러면서 석호는 석규에게 시선을 박았다.

“안 했어?”

“안 했다니까!”

“근데 종두가 왜 그래?”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씨발놈….”

석호는 억울해서 미치겠다는 표정을 한 두 놈을 번갈아보다가 한참 만에 말했다.

“둘 다 기다려. 은숙이년 데리고 올 테니까.”

석규는 숨이 막혔지만 석호를 잡을 수는 없었다. 종두가 씨익 웃었다. 석규는 아연해서 종두를 쳐다보았다. 은숙이랑 한 걸 어떻게 냄새 맡은 걸까.

석호는 금방 왔다. 석호가 돌아왔다는 얘길 듣고 은숙도 수영장으로 오는 길이었던 터다. 두 사람을 보고 석규와 종두는 수영장 바깥으로 올라갔다. 오면서 스토리를 들었는지 은숙의 얼굴이 바짝 졸아들어 있었다.

“거짓말하면 죽여버린다. 너부터 죽여버린다.”

석호가 은숙의 어깨를 흔들었다. 석규와 종두는 은숙의 입만 쳐다보았다. 몇십 초의 침묵이 흘렀다. 석규는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이윽고 은숙이 입을 열었다.

“안 했어.”

종두가 움찔했다. 석규는 한숨을 내쉬었다. 반면 석호는 열이 받은 모양이었다.

“안 했다는데…?”

석호가 종두를 째려봤다. 종두는 아무 말 못하고 뒤로 물러섰다.

“안 했다잖아 씨발놈아….”

석규는 피에 젖은 얼굴을 슥 문질렀다. 석호는 사냥감 주변을 도는 호랑이처럼 어슬렁대더니 굴러다니던 각목 하나를 집어들었다. 종두를 제대로 팰 심사인 모양이다. 석호는 손에 맞는 방망이라도 고르듯 각목을 이리저리 쥐어보더니, 석규에게로 던졌다.

“네가 패!”

종두의 얼굴이 팍 일그러졌다. 좆됐다. 석규는 망설였다. 그러나 석호가 고갯짓으로 어서, 하는 시늉을 하자 석규는 천천히 각목을 집어들었다. 종두가 천천히 뒷걸음질쳤다.

“야 이 씨발놈아…. 미안해, 미안해! 오지 마, 씨발놈아!”

석규는 별안간 각목을 들고 종두에게로 덤벼들었다. 종두는 질겁을 하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엉겁결에 석호와 은숙까지 종두 뒤를 쫓기 시작했다.

“미안하다니까! 오지마!”

“야 이 씨발놈아 안 서!”

“모르고 그랬잖아! 하지 마!”

종두가 죽어라고 달음질치자 뒤를 쫓던 석규는 웃음이 다 났다. 빠르다. 네 사람은 그렇게 수영장을 몇 번이나 돌았다. 맨 뒤에서 따라오던 은숙이 깔깔대자, 석호와 석규도 웃음을 터뜨렸다. 장난치는 것 같다. 종두 바로 뒤에서 따라가던 석규는 크게 웃다가 각목을 집어던졌다. 종두가 팔짝 뛰며 각목을 피했지만 발목에 각목이 걸려들었다. 순간 종두는 찍 미끄러졌다.

“야 씨발…?”

종두는 그대로 수영장에 각목과 함께 머리부터 곤두박질쳤다. 두개골과 타일이 부딪치면서 뼈가 어그러지는 이상한 소리가 수영장 벽을 타고 울렸다. 나머지 세 사람은 굳은 듯 멈춰섰다. 시커먼 피가 수영장 바닥에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석규는 가까이 있지는 않았지만 종두의 오른쪽 눈알이 비어져나와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머리에서 피가 계속 흘러나오면서 종두의 얼굴이 잠겼다.

은숙이 주저앉으면서 비명을 질렀다. 석호는 은숙이 소리를 지르건 말건 멍청해져서 수영장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끔찍했지만 석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종두의 손이 조금씩 경련했지만 아래로 내려가서 살아 있나 확인할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물론 확인했더라도 손 움직임이 아직 살아있다는 표시가 아니라 근육 반사에 불과했다는 사실도 몰랐겠지만.

“형….”

“….”

“형?”

석규는 석호에게 다가갔다. 석호는 멍하니 서서 거꾸로 박힌 종두를 바라보고 있었다. 등 뒤에서 은숙의 울음소리인지 발악하는 소리인지 구별 못할 소리가 들렸다.

“…형? 어떡해?”

“…씨발새끼….”

석호가 야수처럼 중얼거렸다. 석규는 석호에게서 조금 물러섰다. 석호는 그대로 한참 서 있다가 울고 있는 은숙과 석규를 번갈아 보았다. 석규는 석호의 눈빛에 몸서리쳤다. 이윽고 석호는 가방을 찾아 들더니 숲 바깥으로 저벅저벅 걸어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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