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시민운동 토대 ‘경실련’

2006.07.16 17:49

1990년대 이후 우리 사회의 가장 뚜렷한 변화는 ‘시민운동’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등이 대표적인 시민단체다. 지금은 전국에 수백개에 이를 정도로 시민단체가 많아졌고 사회로부터 주목받고 있다. 사회적 영향력이 커졌음은 물론이다.

박병옥 사무총장

박병옥 사무총장

이렇게 성장한 시민단체의 중심에는 경제정의실천연합(이하 경실련)이 있다. 경실련은 지난 1989년 11월4일 창립했다. 올해로 17년이 돼, 시민단체 중에서는 ‘맏형’ 격이다.

박병옥 사무총장(46)은 경실련 17년의 성과로 ‘시민운동·경제정의’ 개념 도입을 꼽는다. 경실련 창립 초기만 해도 시민운동이란 개념이 생소했다. “관변단체, 재야단체로만 나뉘어 이념적 사회운동을 외칠 때 경실련은 ‘소득의 공정한 분배에 기초한 경제정의를 실현한다’는 기치로 시작됐습니다. 지금은 시민단체가 난립한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주류를 이룬 것은 경실련의 성과를 반영한 것입니다.”

출범 초기 경실련은 토지 공개념 입법운동 등을 벌이며 부동산 문제를 이슈화했다. 부동산 투기 근절과 공평과세 확립 등을 주장했다. 근거와 자료를 내세우면서 경실련의 주장은 하나씩 정책화됐다. 그 대표적 예가 금융 실명제, 부동산 실명제, 정치자금 실명제다. 경제문제 이외에도 정치권의 부정부패 추방, 선거 감시, 제도 개혁 등으로 외연을 넓혀갔다. 최근에는 5·31 지방선거 유권자 운동본부를 만들어 3명의 서울시장 후보와 토론회를 개최했다.

-부동산 문제 집중·정책화 이끌어-

경실련은 단순한 주장이 아니라 정책까지 제시한다는 점을 높이 평가받아 2003년 ‘대안적 노벨상’이라고 알려진 스웨덴의 ‘바른 삶 상(Right Livelihood Awards)’의 수상자로 선정됐다. 한국의 경제발전을 정의롭게 민주적으로 이룩하는 데 성공적인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 선정이유였다.

그러나 경실련 17년 역사에도 아픔은 있었다. 지난 97년 김영삼 전 대통령 차남 현철씨의 언론사 인사개입 의혹 비디오테이프를 훔쳐 공개한 사건으로 양대식 사무국장이 기소됐다. 99년에는 경실련 고위 간부가 언론에 표절 칼럼을 기고해 물의를 빚었다. 이 두 사건으로 경실련의 도덕성이 도마에 올랐고, 시민운동에도 큰 오점을 남겼다. 그 이후 경실련에 대해 ‘백화점식 운동, 언론플레이’ 등의 비난이 터져나왔다.

그 때부터 경실련은 홍역을 앓았다. 지난 2~3년 전부터 조직 자체에는 뼈저린 반성이 이어졌다. 박총장은 “경실련의 사회적 존재 의미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며 “10년 가까이 지내오면서 거시적 정책만을 추구하고 서민의 삶과 유리된 시민운동을 했다는 자체 평가가 지배적이었다”고 털어놓았다. 밑으로부터 출발한 운동이 서민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않을 때 힘을 잃는 것은 당연지사. 다시 서민 밀착형 운동으로 회귀하기로 결정했다.

그 고민의 표출이 현재 경실련의 중점 과제인 ‘부동산 집값 안정’이다. 부동산·집값은 경실련이 초창기에 가장 이슈화했던 문제다. 국민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가 집값 상승에서 나온다는 판단에서 초심으로 되돌아갔다. 사실 2006년의 화두인 ‘양극화’ 문제도 부동산 문제가 근본원인이다. 경실련 사람들은 부동산 문제 해결을 경실련의 경제정의 이념을 실현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여기고 있다.

-도덕성 논란에 “다시 초심으로”-

인력배치 상황을 보면 경실련이 부동산 문제에 어느 정도 의지를 갖고 있느냐를 잘 알 수 있다. 현재 ‘아파트값 거품빼기 운동본부’ 등 7명의 직원이 부동산 문제를 전담하고 있다. 전체 조직의 절반 이상은 부동산에 ‘올인’하고 있다.

경실련이 바라보는 부동산 문제의 대안은 ‘후분양 제도 및 원가공개, 공영개발’ 등이다. 경실련은 판교 역시 공영개발을 했다면 지금과 같은 집값 상승은 이뤄지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 경실련은 중장기 정책과제로 유럽과 같은 토지 공개념을 정착시켜 나갈 계획이다. 박총장은 “밑으로부터 열망이 높은 정책과제이기 때문에 금방 성공하지 않을지라도 추진동력을 잃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실련은 17년의 역사만큼 거쳐간 사회인사도 적지 않다. 중앙인사위원회 조창현 위원장, 국가인권위원회 조영황 위원장, 서경석 목사, 이석연 변호사 등 모두 경실련 출신이다.

반면 지금은 경실련 하면 떠올릴 만한 스타 플레이어가 없다. 박총장에 따르면 이는 오히려 경실련의 전략적 선택이다. 사실 스타 플레이어를 만들어내기는 쉽다. 말 그대로 한 명만 언론에 내세우면 된다. 하지만 경실련은 그러한 방식이 조직 건강에 해롭다고 판단했다. 2~3년 전 심도있는 내부 고민이 있을 때, 자료 발표 등 언론에 대한 창구를 각 국별로 분담하기로 했다. 각 국별로 경실련에 대한 주인의식을 높이자는 취지였다. 스타 플레이어 대신 팀워크를 선택했다고 해석될 수 있다.

시민단체에 대한 지지가 떨어지는 현 사회 분위기에도 경실련은 자신감이 있다는 표정이다. 다른 단체에 비해 정치적으로 편향되지 않았으며 재정문제 등이 지속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초창기부터 그랬지만 어느 한 정당에 치우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목표이다. 재정이야 여전히 부족하지만 6월 한 달간 회원 확대에 주력한 결과 회원이 꽤 많이 증가했다. 또한 300여명의 전문가를 확보해 끊임없이 근거 자료를 내며 움직이는 조직임을 과시하고 있다.

-정치적 중립·전문가 확보 ‘강점’-

박총장은 “시민운동이 살려면 사회 분위기가 시민단체에 우호적이기만 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시민단체에도 사회적 책임성과 기대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작년부터 경실련은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국내 경제문제뿐만 아니라 해외 경제문제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지구촌 빈곤퇴치 시민 네트워크’를 열어 우리나라의 대외지원정책과 원조액 감시에 나서고 있다. 이제 경실련이 해외 원조문제에 어떤 비판의 칼날을 들이댈지 주목된다.

〈글 임지선·사진 김정근기자 vision@kyunghyang.com〉

-경실련 약력-

▲1989년 11월 4일 창립(초대 사무총장 서경석 목사)

▲2003년 10월 2일 스웨덴의 ‘Right Livelihood Awards’ 수상

▲2003년 12월 19일 대학로 동숭동에 경실련 회관 개소

▲2004년 2월 12일 ‘아파트값 거품빼기운동본부’ 출범(본부장 김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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