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옥 “큰 무대만 섭니다, 자존심이죠”

2007.12.13 09:29

국립무용단의 스타 무용수 한순옥(75). 그는 서울 구의동 언덕의 조용한 빌라에서 아들 정재승(48), 애견 샌디(7)와 살고 있다. 겨울 오후, 산사(山寺)처럼 고즈넉한 빌라로 들어서니 부엌 창문으로 동네 뒷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부산바닷가에서 춤추는 29세 한순옥.

부산바닷가에서 춤추는 29세 한순옥.

한순옥은 옛모습 그대로 날씬했다. 요즘도 더러 무대에 서기 때문일까. 손톱에는 연한 은색 매니큐어를 발랐다. 기자, 잠깐 잊었다. 그가 국립무용단의 ‘효리’였음을. ‘올드 효리’를 만나기 위해 한 달을 기다렸다. 지난달 초 효리가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서울시무용단 공연을 보러 시내 나들이를 한다기에 기자는 만나기를 청했다. 그런데 공연 때문에 곤란하다고 했다. 공연을 ‘하는’ 게 아니고 ‘보는’ 데도! 무엇을 하든, 누구를 만나든 하루에 한가지 일만 집중하겠다는 고집이 진하고 귀하다.

올드 효리의 빌라 거실은 스타 무용가의 미니기념관 같다. ‘1973년 정열의 나라 스페인’이라고 적어놓은 액자 안에 스페인 풍물을 담은 엽서와 사진이 가득하다. 이탈리아 기념엽서도 보기 좋다. 해외 순회공연 틈틈이 모은 추억의 편린들이다. ‘보살춤’의 요염한 모습도 뭉클하다. 백악관 관리들과 국립무용단원들이 찍은 사진에서도 효리는 서양 남성들을 ‘좌청룡 우백호로 두고’ 가운데에서 웃고 있다.

“(사진을) 보세요. 백악관 남자들이 모두 내 곁에 둘러섰죠! 나, (주역 무용수로 잘나갔다) 허튼 소리 안 해요.”

1974년 미국공연후 백악관에서 기념촬영중인 국립무용단. 남자들 가운데가 한순옥 단원이다.

1974년 미국공연후 백악관에서 기념촬영중인 국립무용단. 남자들 가운데가 한순옥 단원이다.

국립무용단 입단 전으로 돌아가자. 한순옥은 최승희의 수제자였다. 6·25 전쟁 후 남한의 한순옥은 북한에서 활동하는 최승희의 제자라는 이유로 견디기 힘든 시기를 넘겨야 했다. 스승의 이름을 입 밖에 내면 체포되던 시절이었다. 한순옥은 기자에게 옛이야기를 들려주며 눈물부터 흘렸다. 스승 최승희 때문에 웃었고 최승희 때문에 울었던 지난날. 억울하고 한 많은 춤살이였다.

#춤을 너무 잘추다

32년 평양에서 한석권과 배정수의 1남4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가족은 언니 한 사람만 빼고 6·25 전쟁 후 남하했다. 부친은 한순옥이 33세에, 모친은 37세에 작고했다. 오빠(81)를 비롯, 두 여동생도 서울에서 잘 살고 있다.

“17세에 부모 몰래 최승희 무용학원 오디션을 봤습니다. 정희여고 학생일 때죠. 이모 도움으로 의상을 마련해 오디션 봤죠. 필기시험도 있었어요.” 합격이었다. 해방 직후 최승희 공연을 두 번씩 보고 춤에 빠진 그는 의사에서 무용가로 꿈을 바꾸었다. 춤추는 최승희의 눈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늘 그 모습만 생각났다.

1년 후. 3학년 이상만 검무를 배우는데 한순옥은 집에 가지 않고 몰래 검무를 보고 그 순서를 다 외웠다. 기회는 왔다. 1기생들의 검무 공연을 앞두고 한 명이 빠지게 된 것. 순옥의 검무 추는 모습을 봤던 선배 현정숙이 최승희에게 한순옥을 추천했다. 3기생인 그는 연습한 대로 척척 추었다. 그때부터 점처녀(오른팔에 점이 있어 붙은 별명)는 월사금을 내지 않고 오히려 국비생으로 돈을 받았다.

“제가 ‘해방의 노래’에 픽업돼 선배들의 질투가 심할 때죠. 등(燈)춤을 추려고 무대 양쪽에서 무용수들이 등을 들고 등장하는데 제 두번째 앞의 선배 등이 처지기에 ‘등이 내려갔다’고 알려줬어요. 그런데 스승이 그 모습을 보고 ‘무대 나가면서 말한다’고 화를 내며 연습을 중단시켰어요. 연구생들 앞에서 야단맞는데, 저는 너무 부끄럽고 속상해서 등을 던지고 뛰쳐나가 옷보따리를 쌌습니다. 작별 인사차 최승희 방을 노크했죠. 맞을 각오하고 들어가니 ‘다른 애 같으면 당장 퇴학인데, 너는 내 뒤를 이을 재능을 가졌다. 용서할 테니 열심히 해’라며 제 등을 두들겨 주시더라고요. 그 한마디가… 제 가슴을 후벼파는….” 한순옥은 다시 흐르는 눈물을 어찌하지 못한다.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낌과 침묵만 오가는 한겨울의 거실.

스승의 사랑은 무용극 ‘춘향전’에서도 피어났다. 이도령 최승희, 춘향 안성희, 사또 김백봉. 한순옥은 기생역이었다. 파격대우였다.

“스승이 ‘너는 애기기생 해라. 사또 잔칫날 어사가 잔칫상에 앉으면 눈을 흘기며 이도령에게 술 따르는 기생 역할이다’ 그러세요. 그 장면에 이도령과 기생에게 스포트라이트가 가기 때문에 어린 제자 중에선 기생역이 최고였죠.”

그후 최승희 무용단은 러시아로 공연을 떠났다. 연구소 3기생인 한순옥까지는 차지가 오지 않았다. 그게 최승희와의 마지막이었다. 그때는 정말 몰랐다. 2년 동안의 연구소 생활이 한순옥의 60년 삶을 짓누를 줄이야.

#최승희 제자로 숨어지내다

한순옥의 부친은 일제강점기에 중국과의 무역 등 사업을 크게 펼쳐 해방 후 인민군이 활보하는 북쪽을 떠나 서울로 이주했다. 1·4 후퇴 때는 밀양을 거쳐 부산으로 갔다.

한순옥도 부친을 따라 밀양에 정착해 1년간 머물렀다. 그때 무봉사라는 절에서 열린 사월초파일 행사에서 19살 한순옥은 대구의 현대무용가 김상규에게 자신이 최승희 제자임을 밝힌다. 당시 좌익으로 오해받을까 두려워 그의 제자임을 숨길 때였다. 김상규는 현대무용 ‘악마와 소녀’의 춤 파트너가 아파서 오지 못했다며 함께 추자고 했다. 최승희로부터 춤닦달을 받았기에 식은 죽 먹기였다.

“최승희 연구소에서 한국무용, 발레, 인도무용, 현대무용, 모던발레, 소셜댄싱, 리듬 등 7개 과목을 배웠으니 어떤 무용이든 소화했죠.”

‘악마와 소녀’에 출연하며 한순옥은 남한에서의 춤 인생을 시작한다. 최승희 제자로 가슴 아프게 살았기 때문일까. 스승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는 울었다.

“김상규 공연에서 송범을 만났죠. 저는 검무를 추었는데, 분장실로 찾아와 ‘누구 제자슈?’ 하고 물어요. 최승희를 입 밖에 내면 안되잖아요. ‘평양에서 배우다 왔다’고 하니 ‘최승희 제자슈? 어쩐지!’ 하고 칭찬하더군요.”

송범은 서울에서 공연될 무용극 ‘인도 연가’ 출연을 청했다. 아라비아 공주로 분한 그는 배꼽을 드러내고 남자를 유혹하는 춤을 추었다. ‘한순옥이 저런 춤도 출 줄 아냐’며 주위에서 놀랐다. 그때부터 송범 작품에 단골로 출연했다.

마산의 한국무용가 김해랑도 함께했다.
“김해랑이 일제강점기에 최승희 제자여서 가까워졌죠. 피란 때 마산으로 이사가 1년 정도 김해랑 연구소를 같이 운영했고 공연도 하고. 그러다 22세에 부산에서 최진이 왔어요. 대만에 ‘춘향전’ 공연 가는데 박성옥이 ‘춘향이로 한순옥을 데려오라’고 했대요. 조용자가 이도령인데 김해랑은 조용자의 사생활을 거론하며 가지 말래요. 제가 가겠다고 하자 김해랑이 제 따귀를 때리는 거예요. 부모에게도 맞은 적이 없는데, 기가 막혔죠.”

춘향모 김문숙, 이도령 조용자, 방자 옥구현(캐나다 거주), 향단 신영자(미국 거주), 춘향 한순옥. 그러나 화폐 개혁의 어수선한 시기여서 공연은 무산됐고 결국 부산극장에 올랐다. 그 후 무용공연마다 한순옥이 주역이었다.

“제가 어리고 북에서 왔기 때문인지, 남자·돈·배역 등과 관련돼 별 모략을 다 받았답니다. 하다못해 사진관에서 사진 찍을 때도 사진관 주인이 김문숙과 저에게 (얼굴이 예쁘니) 사진을 더 찍자고 하는 것조차 구설수에 올랐답니다. 질투하던 그들 대부분이 아직 살아있어요. 그저 최승희 제자라는 자부심 하나로 꾹 참았습니다.”

부산의 춤 행사는 거의 한순옥이 도맡아 했다. 광복동에 박성옥과 동업인 무용연구소를 냈다. 그런데 박성옥의 애인이 박성옥과 한순옥의 사이를 의심했다. 결국 광복동에 따로 연구소를 냈다.

그때 문화공보부 국장인 서예가 고 배일기가 미국 가는 행사에 예술가들을 초청했는데, 첼리스트 전봉초를 비롯해 이빈화, 최미연 등 스타들이 총출동됐다. 무용가로는 한순옥이 유일했다. 그런데 외국공연은 불발이었다. 그땐 그랬다.

#남편보다 춤이 좋았다

남편도 그때 알게 됐다. “부산에서 무용연구소를 했는데 안기부 소장이 찾아와 경찰서로 연행하더군요. ‘평양에서 언제 내려왔냐’며 ‘최승희 제자죠?’ 해요.” 당시 4년 연상인 남편 정준모가 민주신문사 정치부 기자여서 고생은 면했다.

박성옥과 무용연구소를 하던 25세. 서예가 배일기가 제자 정준모를 소개했다. 그는 1년반 동안 연구소를 출근하다시피 찾았다. “춤만 추었지, 남자에게 관심없었어요. 당시 부산 승마장에서 아침에 승마를 배우고 영도다리를 건너 광복동 연구소로 돌아오곤 했죠. 그런데 남편이 승용차를 몰고 승마장까지 찾아와 광복동까지 데려다 주는 거예요.”

남편은 집요했다. 부모는 서울에 있고 부산에서 외롭게 살던 처녀는 27세에 약혼한다. 그런데 무용가인 아내를 이해한다던 남편이 얼마 후 춤을 못 추게 했다. 춤이 전부인 한순옥은 결단을 내려야 했다. 28세에 아들 재승을 낳은 후 6개월 만에 파리 공연을 떠난다. 우리나라에서 참가한 최초의 민속예술제였다.

“미신을 믿진 않지만 제 나이 32세에 삼재가 들고 남편도 용띠 삼재가 들어 서로 부딪친대요. 별거 4년 후 예그린예술단에서 활동할 때 남편이 이혼해달라더군요. 여자를 만난 거죠.” 박정희 대통령 시절 남편은 일본 특파원이었다. 문제는 한순옥이 해외공연하는 사이 남편이 14세 아들을 비롯, 재혼한 여성과 낳은 두 아이를 데리고 일본으로 가버린 것.

“친정 어머니께선 ‘아이를 뺏겼다’고 난리셨죠. 걱정 마시라고 위로할 수밖에요. 아들이 일본에서 거주한 4년 동안 지옥이었지만 제가 국립무용단원으로 일본 공연 가서 만났어요. 데이코쿠호텔에서 아들을 만났는데 ‘엄마! 작은엄마 옷 한 벌 사주고 가’ 해요. 옷은 크기를 몰라 사지 못하고 대신 이브닝백을 사보냈죠. 제 심정 이해하시겠어요?”

#빌딩 5채는 아무 것도 아니다

30세. 서울 삼선교에 70평의 연구소를 열었다. 이화여대 무용과에 입학하려는 고3 입시생들에게 한국무용뿐 아니라 현대무용 발레를 지도했다. 창작춤도 안무해주었다. 국립무용단 창단 멤버인 그는 73년부터 지도위원으로 활동했다. 송범, 김문숙, 한순옥, 최희선 등이 국립무용단원이었다.

“저는 큰 무대 아니면 서지 않았습니다. 30여년 전 문화공보부에서 외국사절단이 오면 저에게 공연을 청했어요. 저는 개런티로 200만원을 제안했죠. 50만원이 정가(?)였지만 저는 자존심에 죽고 살았습니다. 예술가들, 자존심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큰 무대 아니면 춤추지 않았는데, 요즘은 아무데서나 추대요. 옛날에 요즘처럼 추었으면 떼돈 벌었겠죠.”

스타의 품위를 지켰고, 어지간하면 주요 배역을 후배에게 양보했다. 손해를 많이 본 것도 그 때문이다.

“제가 로비 잘하면 이러고 안 살죠. 그저 최승희에게 배운 대로 순수하게 그 춤을 이으며 살 뿐입니다.”

대학 총장이 교수를 하라는 것도 거절했다. 일본에서 돈벌이 춤도 추지 않았다. 그러나 후학 지도는 양보하지 않았다. 72년부터 13년 동안 선화예고 전임강사로 활동했다.

“요즘 무용인들은 인간문화재 종목의 춤에만 몰리고, 순수한 춤을 무시해요. 배워야 할 사람이 가르치고…. 저는 손해보더라도 최승희의 춤 정신을 이어갈 겁니다. 오래 전 유명한 점쟁이에게 사주를 보니 ‘빌딩 5개 해먹었구먼’ 하대요. 그래도 저는 손해보며 살 겁니다.”

〈유인화 선임기자〉

◇한순옥 약력

1932년 평양에서 5남매 중 셋째로 출생
47년 최승희 무용연구소 입소
51년 마산 김해랑 무용연구소 강사
52년 제1회 한순옥 무용발표회
53년 한국무용예술협회 회원
55년 부산 한순옥 무용연구소 개설
56년 부산 화교중학교 무용강사
57년 부산 혜화여중 강사
59년 프랑스 국제민속예술제 참가
62년 서울 한순옥 무용연구소 개설
62년 한국무용협회 이사
64년 국제민속예술제 52개국 순회공연
66년 예그린악단 한국무용 주임교수
70년 국제펜클럽대회 한국무용인 최초 출연
73년 국립무용단 지도위원
76년 선화예술학교 무용전임강사
88년 한국무용협회 부이사장
2006년 한국무용협회 고문

국립무용단 ‘심청전’(74·81년) ‘원효대사’(76년) ‘시집가는 날’(79년) ‘우리춤 우리의 맥’(93년), 한국무용협회 지역 순회공연(85~87년), 봄맞이 춤제전(92년), 추석맞이 임진각공연(92년) 등. 국민훈장 목련장(73년), 춤의해 감사패(92년), 예총 예술문화상 공로상(93년), 한국무용협회 무용대상(93년), 예총 예술문화 대상(95년)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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