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 교과서 한국근현대사’ 논란

2008.04.01 18:14 입력 2008.04.01 18:15 수정

“건국·근대화 뿌리 재조명” “성공한 역사 합리화 불과”

‘교과서 포럼’이 최근 내놓은 ‘대안 교과서 한국근현대사’는 출간 전부터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이 책의 필자들은 정부수립 60주년을 맞아, 그간 이뤄져온 한국 근현대사 서술이 ‘건국’과 ‘근대화’의 의미를 지나치게 평가절하했다며 남한만의 자랑스러운 역사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한국사 학계는 지나치게 냉전적이고 우파적인 역사 서술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교과서 포럼’의 공동대표이자 경제사학자인 이영훈 서울대 교수와 한국사학자인 윤해동 성균관대 연구교수가 지난달 31일 경향신문사에서 대담을 했다. ☞ 대담 전문 보기 클릭

이영훈 서울대 교수(왼쪽)와 윤해동 성균관대 연구교수가 지난달 31일 경향신문사에서 대담하고 있다. <김세구기자>

이영훈 서울대 교수(왼쪽)와 윤해동 성균관대 연구교수가 지난달 31일 경향신문사에서 대담하고 있다. <김세구기자>

이영훈 = 기존 교과서가 일국사적인 입장에서 역사를 서술해 왔는데, 저희는 큰 줄기를 달리 설정하고 싶었습니다.

윤해동 = 완전히 새로운 역사 해석이 나타났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검정 시스템 밖에서 활동하는 단체가 왜 ‘교과서’라는 이름을 내걸었는가 의문입니다. 교과서를 집필하려면 검정 시스템에 들어가서 검증을 받으면 될 것이고, 그게 아니면 시스템 자체를 비판하는 게 옳을 텐데요. ‘대안 교과서’가 교과서로 채택되려는 노력 이전에 단행본 시장에서 먼저 출간된 것은 정치적인 의도가 앞선 것 아닌지요?

이영훈 = 전교조에서 ‘살아있는 한국사’를 내면서 ‘21세기 역사를 위한 대안 교과서’라는 부제를 달았습니다. 전교조 교과서는 교육현장에서 쓰이고 있습니다. ‘교과서 포럼’은 2002년 만들어졌던 근현대사 교과서에 심각한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를 비판하는 모임으로 결성됐습니다. 2005~2006년 공청회를 열고 결과물을 냈는데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안 교과서’를 만들게 됐지요. 기존의 일국사관은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질서가 어디에 역사적인 기원을 두고 있는가에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 기원이 바깥에 있었고, 그게 뿌리내리고 열매맺을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나름의 흡수 능력 때문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윤해동 = 국제주의적인 시각을 강화한다고 했지만, 대한민국의 성공한 역사를 합리화하는 데 너무 치우친 것 아닌가요.

이영훈 = 오늘날 한국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비판은 나중 문제입니다. 그 제도가 어떻게 생겨났는가 하는 질문을 먼저 던져야 합니다. 우리의 문제제기를 ‘한국판 후소샤 교과서’라고 하는 분들은 아직 식민지 피해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합니다. 저희는 일제시대가 억압·차별의 시기였다는 것과, 이에 대한 저항운동사도 충분히 다룬 동시에 한국인이 근대문명을 자기 능력으로 학습·계발했다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윤해동 = 이 책이 대한민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실증을 내세우는 것은, 민족주의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실증을 내세우는 기존 사학계의 주류와 닮은꼴입니다. 역사가의 가치중립은 일종의 신화입니다. 이 책은 대한민국 중심주의, 자유시장 중심주의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것을 실증주의로 포장하는 건 정치적인 의도가 깔린 것이 아니라면 실증주의를 잘못 이해한 겁니다.

이영훈 = 한국인들이 들으면 당황스러워할 만한 이야기도 있는 그대로 다 쓰겠다는 취지였습니다. 일제의 보호국론, 조선통감부의 병합론 반대, 6·25전쟁 때 많은 사람들이 학살됐다는 것 등 어떠한 터부도 없이 다 드러냈습니다.

윤해동 = 당혹스러운 것을 내세우는 것이 실증주의는 아니지요. 역사란 수많은 사실을 다 쓸 수 없으니까 선택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가치가 개입됩니다. 한국전쟁 시기 ‘학살의 광기와 인권의 부재’를 박스로 다뤘는데요, 학계에서는 국군이나 우파에 의해 학살됐던 민간인이 더 많다고 대체적으로 정리돼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서술은 좌파에 의한 학살에 대부분 할애됐습니다.

이영훈 = 저희가 인용한 ‘6·25사변 피살자 명부’(1952) 자료는 구체적입니다. 어느 한쪽의 책임을 묻기보다는 전쟁 과정에서 인권이라는 가치가 한국 사회에 굉장히 낯선 개념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했습니다.

윤해동 = 우파의 학살이 더 많았다는 점을 명기해주었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이영훈 = 이승만에 대해서는 사실 의식적으로 부각하려고 했습니다. 하나의 국가, 제도화된 이념이 만들어지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죠. 대한민국 건국에는 6·25전쟁이 있었는데, 공산주의가 대안이라고 했던 사람들은 북한 편에서 싸웠고, 사유재산 제도와 시장체제가 대안이라고 본 사람들은 남한 입장에서 싸웠죠. 그 이념의 전쟁에서, 이승만의 공로가 대단히 큽니다. 전쟁 전후 100만명이 월남했을 정도로 광범한 지지를 받았고 단정론, 북진통일론 등에는 논리적인 일관성도 있었습니다. 이승만이 아니었으면 한국은 사회주의에 포섭됐을 겁니다.

윤해동 = 1950년 이후 월남한 사람들을 이승만의 정치력과 연결하는 것은 과잉해석입니다. 그때 월남한 사람들은 미군의 원폭 투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내려왔다는 게 정설입니다. 단정론이나 북진론을 건국의 필요불가결한 이념의 제시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이 책에서 제주4·3에 대한 서술은 이승만 정권의 이념을 너무 무리하게 정당화하는 데 이용된 듯합니다. ‘남로당을 중심으로 한 좌파세력이 무장반란을 일으켰다’는 것은 사실인데, 좌파세력의 저항이 김일성의 국토완정론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건 사실이 아닙니다. 완정론은 이때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4·3은 일률적으로 평가하기엔 너무 복잡합니다. 저는 무모한 경찰과 우익단체의 진압에 의해 초래된 민중반란 성격이 더 강하다고 봅니다.

이영훈 = 완정론이 4·3을 일으켰다는 기술은 교정해 2판부터 빠졌습니다. 4·3 서술 때문에 여러 단체에서 성명을 발표하는데, 저희가 예전 교과서들보다 국군의 무자비한 진압을 강조했다는 것은 몰라줍니다.

윤해동 = 이승만 중심의 기술 때문입니다. 이 책은 이승만을 너무 부각시킨 역편향이 있습니다. 특히 50년대 경제정책이나, 의도하지 않은 이승만의 외교정책이 낳은 결과를 확대 해석했습니다.

이영훈 = 어느 나라가 자국사를 쓸 때, 나라 세운 사람의 공적을 강조하지 않습니까. 마오쩌둥은 큰 과오를 저질렀지만 지금도 톈안먼 광장 앞에 사진이 걸려 있고, 워싱턴 대통령도 노예제 폐지를 반대했고, 개인적으로 도덕적인 문제가 있었지만 건국의 아버지로 존경받지 않습니까.

윤해동 = 이 책에서 북한을 ‘보론’으로 배치한 인식이 방금 하신 말씀과 연관돼 있다고 봅니다. 남북한 정부 수립 전후, 이승만의 북진통일론과 김일성의 국토완정론이 부딪친 게 한국전쟁입니다. 이 과정에서 둘 다 내부적으로 무리를 했지만 그 결과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김일성이 책임지지 않았기에 북은 이상한 주체사회로 귀결됐고, 이승만은 독재를 했지요. 두 체제는 상호작용하는 적대적 의존관계였습니다. 북한이 없었다면 이승만이 6년간 그런 정체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요.

이영훈 = 이승만이 헌법적 가치, 대의적 질서를 부정하진 않았어요. 심지어 전쟁 중에도 선거를 했죠. 그 원칙에 충실하다보니 부정을 저지른 측면도 있죠. 민심은 떠나가는 데 선거는 해야 하니까.

윤해동 = 그것은 대의민주주의의 최소주의적 해석입니다. 52년에 전라도·경상도의 제한된 지역에서 계엄령 아래 선거를 해서 다수표를 얻었던 것인데, 그런 선거를 높이 평가할 수 있는 것인지요.

이영훈 = 지나친 상호논리인데요. 그런 정치공학적 논리가 없진 않았지만 어쨌든 50년대의 한국 사회는 6~7회의 보통선거를 치르면서 국민들 스스로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학습했습니다. 지금 기준에서 비판해서는 안됩니다.

윤해동 = ‘근대화혁명’이라는 용어도 당혹스럽습니다. 경제성장과 변화의 속도가 유례없이 빠르다는 게 근거인데, ‘산업혁명’은 들어봤어도 근대화혁명은 좀 심합니다. 지금 한국 현실에서 민주주의 제도화가 이뤄졌다고 하지만, 그 내용이 형편없는 수준이고, 특히 경제적인 분배 또는 양극화에 너무 관심에 두지 않은 것 아닌가요.

이영훈 = 근대화 기간에 사회·경제·문화의 폭발적인 변화가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근대화라는 게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도 하지만 억압하기도 합니다. 그 말 속에는 그런 의미까지 들어가 있습니다. 저희 책을 우파 교과서라고 자꾸 그러는데, 인류보편의 가치에 입각해 세워진 나라를 긍정적으로 서술한 게 왜 우파인지 납득하지 못하겠습니다. 기존 학계가 너무 닫혀 있습니다. 한국사 학자를 참여시키려고 노력했지만 다 거절당했어요.

윤해동 = 그쪽 사람들을 못 오게 한 측면은 없는지 돌아볼 필요도 있는 듯합니다.

토론자
이영훈 서울대 교수·경제사
윤해동 성균관대 연구교수·한국사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