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통해 상처 극복하는 힘 주고 싶어요”

2008.05.30 18:10
글 윤민용·사진 김세구 선임기자

판타지동화 ‘아무도 모르는 색깔’ 펴낸 작가 김혜진씨

처음 책을 펼쳐보고는 600쪽에 달하는 묵직한 두께 때문에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한데 한번 붙잡으니 은근히 감칠 맛이 있다. 읽다가 내려야 할 지하철역도 지나쳤다.

[이사람]“판타지 통해 상처 극복하는 힘 주고 싶어요”

동화작가 김혜진씨(29)의 신작 ‘아무도 모르는 색깔'(바람의아이들) 이야기다. 2004년 ‘아로와 완전한 세계’를 펴내면서 한국형 본격 판타지동화의 등장이라는 호평을 받은 작가는 지난해 2편 ‘지팡이 경주’를 낸 데 이어 이번주 마지막편인 ‘아무도 모르는 색깔’을 펴냈다.

엄마를 잃은 아로·아현·아진 남매가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완전한 세계’를 경험하며 성장한다는 내용의 동화는 스케일의 방대함과 더불어 세계에 대한 진지한 성찰 때문에 그저 단순한 판타지 동화로 치부할 수 없다. 실제로 독자층도 초등 3학년에서부터 대학생까지 다양하다.

작가의 상상력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무슨 할 말이 그리 많기에 이토록 방대한 호흡이 긴 이야기를 펼쳐놨을까, 궁금했다. 반듯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꿈꾸는 분위기의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어릴 때부터 다른 세계에 관심이 많았어요. 판타지가 진실을 보여주기에 더 적합한 장르라고 생각해요. 신화와 동화의 원형에 관심이 많아서 그걸 새롭게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구상하게 됐어요.”

마지막편 ‘아무도 모르는 색깔’에서는 엄마의 죽음을 거부하는 아진이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그려낸다. 작가는 아진이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완전한 세계와 불완전한 세계가 어느 한쪽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관계임을 설파한다. “불완전함이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가능성이 있어야 완전한 세계가 존재할 수 있죠. (가능성이) 닫힌 세계는 건강한 세계가 아니에요.”

별꽃나라와 호수섬, 건축도시, 노래나라, 색채나라 등 완전한 세계의 열두 나라와 그곳에 사는 다양한 인물 등을 만들어내면서 즐거움을 느꼈다는 작가는 그간 쓴 작업 노트를 보여줬다. 이름 하나를 만들어내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며, 서사를 어떻게 끌고 나갈지 고민한 흔적이 노트에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아이디어가 미카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와 유사하다는 지적에 작가는 자신이 미카엘 엔데의 오랜 팬임을 고백했다. “어릴 적, 글을 모를 때부터 ‘모모’를 봤고, 수십 번 본 ‘끝없는 이야기’는 제 인생의 책이라고 할 수 있죠. 또 책 읽는 행위 자체가 다른 세계를 경험하는 은유적 행위잖아요.”

대학 졸업 후 본격적으로 글을 쓴 작가는 직접 책의 표지와 삽화까지 그렸다. ‘아로와 완전한 세계’를 책으로 펴내기 위해 다듬고 퇴고를 거듭하면서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배웠단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영국의 대학에서 기초미술 수업을 듣기도 했다.

일단 아로·아현·아진 3남매의 이야기는 3부로 완결되지만, 그는 아직 못다한 이야기가 많은 듯했다. 2부 분량으로 더 할 이야기가 남아 있지만 5년 가까이 이 시리즈에 매여있다 보니 다른 작업을 할 수가 없었단다. 현재 구상 중인 작품은 진정한 창작을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예비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다룬 청소년 소설과 서울을 배경으로 한 SF이다.

“글을 쓰며 저도 같이 자란다는 느낌이에요. 제가 믿지 못하면 글을 쓸 수 없어요. 상처와 아픔을 극복하는 힘을 갖게 되는 것, 그게 바로 판타지의 마력이 아닐까요?”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