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읽히는 자본론, 20년 짐 덜었어요”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 독일어 원본 국내 첫 번역 강신준 교수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Das Kapital) 독일어 원본을 번역한 책이 국내에 처음으로 나왔다.

[이사람]“쉽게 읽히는 자본론, 20년 짐 덜었어요”

‘자본 I-1·2’(도서출판 길)의 번역자는 마르크스경제학 전공자 강신준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54). 지금까지 국내에는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1989년 번역한 ‘자본론’(비봉출판사)이 널리 읽혔으나 이는 영어판을 번역한 것이다. 강 교수는 10일 “20년 동안 지고 있던 무거운 짐을 이제야 겨우 일부나마 내려놓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수행 교수보다 2년 앞선 87년 국내 최초로 자본을 번역했다. 다만 민주화된 공간에서도 정치 사정이 여전히 엄혹해 가명을 쓸 수밖에 없었다.

“87년 농협 조사부 근무 시절이었어요. 출판사 ‘이론과실천’ 김태경 사장이 원고 뭉치를 들고 왔더군요. 나중에 집에 와서 보니 그게 자본론 1권을 번역한 것이었습니다. 익명의 서울대생 두 명이 했던 초벌번역인데, 제가 며칠 밤을 새워 감수를 해서 ‘김영민’이라는 가명으로 책을 냈습니다. 문공부에 납본하기까지 1주일간 책이 불티나게 팔렸죠. 잠적했던 김 사장이 결국 체포돼 법정에 섰어요. 당시 검찰은 서울대 안병직, 배무기 교수 등에게 이 책의 이적성을 판단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어요. 검찰로서도 이 책의 어떤 점을 들어 기소해야 할지 몰랐던 거죠.”

김 사장의 부인이던 강금실 변호사, 한신대 김수행·박영호 교수 등의 탄원에 힘입어 검찰은 기소를 철회했다. 사실상 ‘해금’이었다. 강 교수는 이어 자본론 2·3권을 자신의 이름으로 번역해냈고, 김수행 교수도 자본론 1~3권을 잇달아 번역 출간했다. 강 교수의 책은 출판사가 문을 닫으며 절판됐고, 지난 20년간 강 교수는 제대로 된 개역본을 내놓겠다는 것을 숙제로 삼고 있었다. “인류 지성사의 최상급 고전 반열에 들어 있는 ‘자본’의 번역본이 절판된 책을 포함해 겨우 2개뿐이라는 점은 우리의 서글픈 문화적 현주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50년도 더 지난 영국 사정을 토대로 쓴 ‘자본’이 지금도 널리 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강 교수는 “마르크스가 ‘자본’을 쓴 계기는 노동하는 다수가 죽도록 일하면서도 부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이었다”며 “그런 모순이 한국사회에는 1997년 이후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데, 그 부분에 대한 과학적이고 적절한 형태의 대답이 나오고 있지 않다는 점 때문에 계속 읽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자본’을 구성하는 세 가지 지적 유산을 부가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설명한 ‘경제학’, 이 부가 왜 노동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지 않는지를 담은 ‘사회주의’, 부를 공평하게 나누기 위한 변혁의 수단인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정리했다.

강 교수의 ‘자본’ 번역이 이미 ‘제1권 上’을 기준으로 3만권 이상 팔린 것으로 추정되는 김수행 교수의 ‘자본론’과 차별되는 부분은 우선 문헌학적인 부분이다. 강 교수는 “독일어로는 단어가 다른 데, 영어는 같은 단어가 돼서 자기들이 설명하기 곤란한 경우는 빠지는 경우가 있었다”며 “특히 ‘자본’을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인 변증법적 유물론을 영어본이 독일어 원본만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는 측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자본’이 유명한 책이긴 하지만 독자들에게는 여전히 난해하다. 강 교수는 자신의 ‘자본’ 번역이 김수행 교수 책보다 독자들에게 더 쉽게 읽힐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놀이공원 안내도’에 비유하며 ‘자본’ 해제를 썼으며, 번역도 독일어 원문에 충실하되 쉬운 이해를 위해 곳곳에 상세한 주석을 달았다. 그래도 자본이 어렵게 느껴지는 독자들을 위해 그는 “맨 앞장인 ‘상품’ 편부터 읽지 말고, 뒷부분인 ‘노동일’ ‘분업과 매뉴팩처’ ‘기계와 대공업’ 등 영국 공장의 역사적 사실을 재미있게 풀어놓은 부분을 먼저 읽을 것”을 권했다. 강 교수는 이들 부분에 “심지어 현재의 기업인들이 비정규 노동과 관련해 참고하고 싶어할 정도로 다양하고 악랄하게 비정규 노동을 이용하는 영국 산업자본주의의 모습이 상세하게 예시돼 있다”고 말했다.

마르크스가 ‘자본’을 썼던 당시는 유럽을 휩쓸었던 1848년 혁명이 실패로 돌아갔던 때였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혁명은 의지나 소망만으로 성공할 수 없으며, 과학이라는 지렛대를 필요로 한다는 생각으로 그의 반생을 바쳐 자본을 집필했다. 강 교수는 그 함의는 지금 한국사회에도 유효하다고 한다.

“한국사회의 변혁 운동도 많은 민중의 뜨거운 참여에 기반한 중대 고비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열기에도 불구, 철저한 결과를 내지 못했던 것은 과학성의 결여 때문이었습니다. 마르크스가 과학적 과정을 거쳐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라는 단 하나의 추상으로 타도 대상을 규명해냈듯이 한 마디로 압축될 수 있는 무언가를 도출해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게 과학입니다. 지금 불 붙고 있는 촛불집회의 열기에 대해서도 누군가는 그런 접근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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