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 동지’ 한국화가 김호석·시인 김형수
한국화가 김호석씨(51)와 시인 김형수씨(49)의 관계는 ‘열자’에 나오는 거문고의 명인 백아와 그 벗 종자기에 비유할 수 있을 듯하다. 두 김씨는 1991년 한 대학 강연회에서 단상에 함께 오른 인연으로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됐다. 상대를 문화적 동지로 규정하는 둘의 관계는 93년 화가 김씨가 개인전을 앞두고 시인 김씨에게 전시회 도록 서문을 부탁하면서 친해졌다.
그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졌고, 종종 화가의 개인전을 보고 시인이 쓴 전시 서문이 책으로 탄생했다. ‘옷자락의 그림자까지 그림자에 스민 숨결까지-김호석의 수묵화를 읽다’(문학동네)이다. 때맞춰 화가가 오랜 세월 탐구해온 바위그림에 관한 글을 모은 ‘한국의 바위그림’(문학동네)도 출간됐다.
막역한 두 사람을 함께 만났다. 미술평론가가 아닌 문인에게 전시소개글을 부탁한 이유는? 화가에게 먼저 물었다.
“문화가 풍성했을 때에는 문학과 미술이 서로 소통했습니다. 주례비평이 흔해져서, 화가와 관객 사이에 중간매개체가 있으면 좋겠다 했는데 그 적임자라 생각했어요. 그의 글에는 현장에서 직접 체험하며 얻은 글감과 우러나와 곰삭은 맛이 있습니다.”
시인의 그림독법이 화가에겐 어떻게 느껴졌을까. 친하다고 더 치켜세우지는 않았을까? 짓궂은 질문에 화가는 답한다. “호주머니 속의 송곳이랄까요. 비수를 들이대고서도 칼날을 감추지 않아요. 형수씨의 글은, 한국미술의 전통성과 현재성에 관한 논의를 토론장으로 이끌어내고 싶어서 문제제기를 하며 쓴 글이에요.”
시인은 화가가 전통회화형식을 끊임없이 실험하고 있는 데 대해 호의적이면서도 미학적 한계에 대해선 가감없이 비판한다. 때로 과욕을 부렸다고, 때로 긴장감이 결여됐다고 호통을 치는 것이다. 시인은 “글에 호불호가 너무 표 나서 줄여볼까 했지만 내 성격이 그렇다보니 잘 안되더라”며 웃었다.
한국회화의 원형성을 찾다 바위그림 연구자가 된 화가의 책 이야기도 나눴다. ‘한국의 바위그림’은 화가의 미술사 박사학위논문을 바탕으로 학술적인 내용은 제외하고 “일반인과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을 위주로 새로 묶어 쓴 책이다.
시인은 화가에게 몽골의 바위그림 이야기를 듣고 충격받아 화가의 답사길에 따라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동행이 수월하지만은 않은 듯했다. “김호석씨는 타고난 탐험가예요. 위험을 피하지 않고 즐겨요. 술도 안 마시고 늦잠도 안 자니, 저 같은 사람들이 따라나서면 체력이 버티질 못해 힘들어요. 덕분에 제 시야도 많이 넓어졌지요. 특히 짧게 있다 소멸하는 것과 오래 불변하는 것에 대한 감수성이 학습됐습니다.”
이내 김호석씨가 받아친다. “그렇게만도 볼 수 없는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미학적 전범은 중국이나 일본, 서양에서 유래한 것들인데 저는 사라져버린 유라시아의 문화가 ‘찾아 헤매던 것들의 원류’가 될 수도 있다는 감만 갖고 있었거든요. 함께 가보니 김형수씨는 그걸 탁월하게 논리적으로 짚어내더라고요.”
바위그림 답사 역시 그의 작품처럼 전통미학형식에 대한 고민에서 기원하고 있었다. 화가는 그 원류를 찾아 “지그재그로 샅샅이 유라시아를 55번이나 다니며 훑었다”고 했다. 그림 그려 번 돈 대부분을 몇번씩 비행기 갈아타고 자동차로도 며칠을 달려야 하는 바위그림 답사에 썼다.
결과는 작업실에 쌓인 2만여점의 필름과 탁본이다. “저는 과거의 전범이 미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시대의 삶 속에서 새로운 전통, 조형언어를 만들어 나가야죠.”
두 사람은 대순환의 고리 속에 인간이 놓여 있으며, 그러한 욕망이 미학으로 발현되는 것이라는 데 공감하면서도 경제논리에 떠밀려 문화의 가치가 소홀히 여겨지는 세태,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 비가 오면 빗물이 새는 누추한 현실을 걱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