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문학을, 속삭임을 엿듣다”

2008.06.20 17:49
글 윤민용·사진 박재찬기자

‘문화적 동지’ 한국화가 김호석·시인 김형수

한국화가 김호석씨(51)와 시인 김형수씨(49)의 관계는 ‘열자’에 나오는 거문고의 명인 백아와 그 벗 종자기에 비유할 수 있을 듯하다. 두 김씨는 1991년 한 대학 강연회에서 단상에 함께 오른 인연으로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됐다. 상대를 문화적 동지로 규정하는 둘의 관계는 93년 화가 김씨가 개인전을 앞두고 시인 김씨에게 전시회 도록 서문을 부탁하면서 친해졌다.

‘한국의 바위 그림’을 출간한 동양화가 김호석(오른쪽)과 ‘…김호석의 수묵화를 읽다’의 저자 시인 김형수.

‘한국의 바위 그림’을 출간한 동양화가 김호석(오른쪽)과 ‘…김호석의 수묵화를 읽다’의 저자 시인 김형수.

그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졌고, 종종 화가의 개인전을 보고 시인이 쓴 전시 서문이 책으로 탄생했다. ‘옷자락의 그림자까지 그림자에 스민 숨결까지-김호석의 수묵화를 읽다’(문학동네)이다. 때맞춰 화가가 오랜 세월 탐구해온 바위그림에 관한 글을 모은 ‘한국의 바위그림’(문학동네)도 출간됐다.

막역한 두 사람을 함께 만났다. 미술평론가가 아닌 문인에게 전시소개글을 부탁한 이유는? 화가에게 먼저 물었다.

“문화가 풍성했을 때에는 문학과 미술이 서로 소통했습니다. 주례비평이 흔해져서, 화가와 관객 사이에 중간매개체가 있으면 좋겠다 했는데 그 적임자라 생각했어요. 그의 글에는 현장에서 직접 체험하며 얻은 글감과 우러나와 곰삭은 맛이 있습니다.”

시인의 그림독법이 화가에겐 어떻게 느껴졌을까. 친하다고 더 치켜세우지는 않았을까? 짓궂은 질문에 화가는 답한다. “호주머니 속의 송곳이랄까요. 비수를 들이대고서도 칼날을 감추지 않아요. 형수씨의 글은, 한국미술의 전통성과 현재성에 관한 논의를 토론장으로 이끌어내고 싶어서 문제제기를 하며 쓴 글이에요.”

시인은 화가가 전통회화형식을 끊임없이 실험하고 있는 데 대해 호의적이면서도 미학적 한계에 대해선 가감없이 비판한다. 때로 과욕을 부렸다고, 때로 긴장감이 결여됐다고 호통을 치는 것이다. 시인은 “글에 호불호가 너무 표 나서 줄여볼까 했지만 내 성격이 그렇다보니 잘 안되더라”며 웃었다.

한국회화의 원형성을 찾다 바위그림 연구자가 된 화가의 책 이야기도 나눴다. ‘한국의 바위그림’은 화가의 미술사 박사학위논문을 바탕으로 학술적인 내용은 제외하고 “일반인과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을 위주로 새로 묶어 쓴 책이다.

시인은 화가에게 몽골의 바위그림 이야기를 듣고 충격받아 화가의 답사길에 따라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동행이 수월하지만은 않은 듯했다. “김호석씨는 타고난 탐험가예요. 위험을 피하지 않고 즐겨요. 술도 안 마시고 늦잠도 안 자니, 저 같은 사람들이 따라나서면 체력이 버티질 못해 힘들어요. 덕분에 제 시야도 많이 넓어졌지요. 특히 짧게 있다 소멸하는 것과 오래 불변하는 것에 대한 감수성이 학습됐습니다.”

이내 김호석씨가 받아친다. “그렇게만도 볼 수 없는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미학적 전범은 중국이나 일본, 서양에서 유래한 것들인데 저는 사라져버린 유라시아의 문화가 ‘찾아 헤매던 것들의 원류’가 될 수도 있다는 감만 갖고 있었거든요. 함께 가보니 김형수씨는 그걸 탁월하게 논리적으로 짚어내더라고요.”

바위그림 답사 역시 그의 작품처럼 전통미학형식에 대한 고민에서 기원하고 있었다. 화가는 그 원류를 찾아 “지그재그로 샅샅이 유라시아를 55번이나 다니며 훑었다”고 했다. 그림 그려 번 돈 대부분을 몇번씩 비행기 갈아타고 자동차로도 며칠을 달려야 하는 바위그림 답사에 썼다.

결과는 작업실에 쌓인 2만여점의 필름과 탁본이다. “저는 과거의 전범이 미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시대의 삶 속에서 새로운 전통, 조형언어를 만들어 나가야죠.”

두 사람은 대순환의 고리 속에 인간이 놓여 있으며, 그러한 욕망이 미학으로 발현되는 것이라는 데 공감하면서도 경제논리에 떠밀려 문화의 가치가 소홀히 여겨지는 세태,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 비가 오면 빗물이 새는 누추한 현실을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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