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쌈넷- 이곳은 ‘숨은 고수’들이 즐기는 무대

2009.01.21 15:16
글·진행 | 박준흠(가슴네트워크 대표)

아트마케팅 기업 쌈지의 ‘쌈지 아트프로젝트’

게토밤즈

게토밤즈

1997년 11월 한국에서 일어난 ‘IMF 사태’를 아직까지도 대략의 발생 일자까지 기억하는 이유는 두 가지 때문이다. 첫 번째는, 32살이었던 당시 대중음악계로 전업하는 계기가 되었던 대중음악전문지 서브(SUB) 창간 작업을 하는 와중에 겪었던 최고의 악재였기 때문이다. 아마 저녁 먹다가 TV 기자회견을 통해서 정부 고위관리자의 발표를 접했던 것 같은데, 이 때문에 당분간 광고시장이 75% 줄어들 것이란 소문은 10월부터 본격적으로 창간작업을 하던 내게는 거의 패닉 상황을 안겨주었다. 결국 그해 12월24일에 창간호가 나왔지만, 짐작하다시피 당시의 잡지광고 시장은 최악이었다. 두 번째는, 그 ‘IMF 사태’ 이후 한국에 본격적으로 인터넷 인프라가 구축되면서 강남 테헤란로를 중심으로 일었던 ‘IT 벤처붐’ 때문인데, 그 시기의 끝물인 2000년 3월부터 인터넷음악방송국 ‘쌈넷’의 개국 작업을 했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IMF 사태’ 전후로 인생에 중요했던 두 가지 작업을 했던 셈이다.

쌈넷은 90년대 당시만 해도 낯설었던 ‘아트마케팅’을 기업 차원에서 효과적으로 했던 패션잡화 회사인 ‘쌈지’가 만든 자회사이다. 쌈지는 ‘디자인과 예술, 상품과 예술의 인터미디어’를 표방하면서 회사 초기였던 92년경부터 예술가 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대표적으로 IMF 당시 가난한 예술가를 위하여 “예술이 브랜드에 생명을 불어넣는다”는 캐치프레이즈로 만든 ‘쌈지 아트프로젝트’가 있다. 대중음악 쪽에서도 2008년 10회를 맞은 언더그라운드 록 페스티벌의 대표격인 ‘쌈지사운드 페스티벌’을 들 수가 있고, 여기 ‘숨은 고수’ ‘무림 고수’ 양대 프로그램은 인디뮤지션들을 대중적으로 알리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이 페스티벌은 “감각 공유라는 점에서는 미술이나 전시회보다 록 페스티벌이 좀더 직접적이고 접촉적이고 효과적이다”라는 천호균 대표의 생각 때문에 시작되었는데, 이미 실질적으로 가장 오래된 록 페스티벌로 자리잡았다.

포춘쿠키

포춘쿠키

이후 쌈지는 IT와 관련한 사업 방향을 정했고 그것이 바로 ‘인터넷과 대중음악이 결합된’ 쌈넷이었다. 아마 98년부터 생겨난 여러 문화 관련 웹진, 인터넷방송국들을 예의주시하면서 내린 판단이었을 것이다. 쌈넷은 쌈지사운드 페스티벌의 주관사이면서 ‘쌈지 팝프로그램’을 맡는 회사가 되었다. ‘쌈지 팝프로그램’은 쌈지가 아트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언더그라운드 록밴드를 후원하는 프로젝트로 99년부터 가동했다. 매년 몇 개의 밴드와 음반을 공동 제작하고, 그들의 콘서트를 열어 음악성을 마케팅하는 동시에 쌈지 소비자들에게 음악을 서비스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처음 나온 음반이 황신혜밴드의 ‘Ver 2.5 특별시 소년소녀’였다. 하지만 이를 쌈지 홍보실에서 주관하는 것이 어느 정도 힘이 부치면서 전문성 있는 운영집단이 필요하게 되었고, 쌈넷이 이를 맡으면서부터는 본격적으로 음반 레이블 형태로 발전했다. 이게 오늘날의 ‘55AM Music’의 모체인 인디레이블로서의 쌈넷이다.

여기서 독자들이 하나 궁금해 할 수 있는 사항이 있다. 어떻게 쌈지의 대자본(?)이 투여된 쌈넷이 ‘인디레이블’일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인디음악’의 기준은 음악생산의 주체를 뮤지션이거나 뮤지션의 의견을 전적으로 수용하는 제작자인 경우로 보기 때문에, 또한 쌈넷에서 그간 나온 음반들이 인디뮤지션 부류였기 때문에 쌈넷을 인디레이블로 보는 것이다.

[한국의 인디레이블](35) 쌈넷- 이곳은 ‘숨은 고수’들이 즐기는 무대

쌈지사운드 페스티벌의 주관사인 덕에 ‘숨은 고수’ 프로그램을 통해서 발굴된 신인들과 계약할 수 있는 이점이 있는 쌈넷은 음악사업 인프라가 인디레이블들 중에서는 가장 튼실한 편이다. 하지만 쌈지라는 회사가 모회사란 점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음악사업에서 운신의 폭이 넓지 않다는 단점도 있다. 당장 쌈지사운드 페스티벌만 해도 사업적인 방향으로 끌고 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디씬의 활성화를 위해서 쌈넷에 거는 기대가 있고, 그건 그간 아트마케팅으로 성과를 보았던 쌈지의 노하우가 접목되기를 바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천호균 쌈지 대표(사진)와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쌈지는 “예술이 브랜드에 생명을 불어넣는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갖고 앞으로는 새롭게 ‘쌈지 농부프로젝트’를 진행하려 한다고 들었다. 아트프로그램도 함께 진행되나.

“올해로 쌈지사운드페스티벌이 10년 되었다. 아트프로젝트의 전반적인 방향들이 그 때 그 때 바뀌어왔는데, 그럴 때마다의 특색은 그 당시에 좀더 소외된 쪽, 소외됐는데 내용은 있는 쪽으로 우리가 접근해갔다. 그 바뀌는 과정 중에 지금은 “농사가 예술이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변하는 시점에 ‘농사 테마’가 낀 것이다. 농사를 중심으로 농사를 예술 같이 생각하고, 농사를 사랑하는 예술가들, 쌈지가 농부를 사랑하는 그 마음을 고객들하고 얘기하자 해서 생긴 프로젝트가 ‘농부 프로젝트’이다. 이는 아트프로젝트의 전환 또는 업그레이드?”

-그럼 농부프로젝트에서 향후 ‘쌈지 팝프로그램’(쌈지사운드 페스티벌, 쌈넷에서 하는 음반사업 등)이 기존 방향과 달라지는 게 있나.

“음악 파트도 농부프로젝트 회의에 꼭 참석하라고 한다. 그래서 농촌에 농가나 민요나 이런 것도 있겠지만, 농촌은 그 나름대로 갖고 있는 민중성이 있잖은가. 그런 경향의 음악들에 대해 음악가들하고 얘기하면서 그런 부분을 보여줬으면 하는 희망이 있다. 미술 쪽도 그렇고. 우리가 폐교 사용 신청을 해놓고 있는데, 그 프로그램이 되면 거주를 하면서 의무적으로 한 달 정도는 농촌에 관련되는 일, 직접 농사를 짓는다든지, 그림을 그려준다든지, 그런 걸 작가들하고 협의를 할 계획이다. 좀더 적극적으로 아티스트들과 교류를 생각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이런 콘셉트로 진행된 경우는 없었다. 서울 근교의 추수가 끝난 논에 쌈지사운드 페스티벌 무대를 만든다든지 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다.

“대형 페스티벌이 한국에서 많아지다 보니까 차별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올 해 쌈지사운드 페스티벌이 10주년이라 다르게 가자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아직은 한국에서 한 적이 없는 방식을 실험적으로 해보고 싶다. 지역 밀착형, 지방이나 지역 단체 등을 끼워서 다르게 해볼 생각도 있다. 단지 대중성이니 하는 큰 틀에서는 방향성을 좀 바꿔야 할 거 같다. 재래시장에서의 공연도 생각해 보고 있다. 장터, 뭐 각설이 같은 게 나올 수도 있고. (웃음)”

-쌈지사운드 페스티벌이나 음반사업 쪽에 관심을 갖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있나.

“음악으로 직원들하고 소통을 하고 싶었다. 처음에 쌈지사운드 페스티벌을 할 때, 초청 대상이 우리 회사 직원들, 협력 회사 직원들이 중심이었다. 그리고 가까운 소비자들하고. 그런데 그 당시에 황신혜밴드하고 대학로 학전에서 공연을 기획하게 됐다. 7회를 했는데 내가 7회를 다 가서 봤다. 항상 맨 뒷자리에서 보곤 했었는데, 볼 때마다 관객들이 반응하는 게 다르더라. 연극을 보는 것 같았다. 내가 적극적으로 음반을 만들자 해서 같이 음반도 만들고, 매장에서 판매를 시도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확장을 해서 그런 뮤지션들을 한 무대에 세우게 된 게 쌈지사운드 페스티벌이다. 소통을 하기 위한 도구로 음악을 사용했고, 그 방법으로 매일 듣는 걸로 소통하는 것보다는 뭔가 듣기 어려운 쪽을 같이 듣자고 생각했다. 그들이 주로 서는 무대 공연에서 자연스럽게 미술하고 같이 섞이는 계기도 됐다.”

골든팝스

골든팝스

-음반사업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쌈넷이란 회사를 만들 때, 좀 전문적인 조직으로 음반비즈니스를 하면서 쌈지 마케팅에 도움이 되게 하자는 생각이었다. 쌈넷 음반사업의 기본적인 취지는 쌈지사운드 페스티벌에서 신인으로 나온 ‘숨은 고수’들 중심으로 음반을 만드는 게 원칙이다. 슈가도넛이나 이런 쪽에서 이상은, 언니네이발관 이런 쪽으로 자연스럽게 바뀌어 간 거다. 현재 음반시장 전체 상황이 너무 안 좋아지면서 어떻게 보면 지금 쌈넷은 쌈지사운드 페스티벌 기획회사로서의 존재 가치가 가장 큰 순위가 아닌가 싶다.”

-음반사업 부문에서 어떤 뮤지션의 음반제작에 관심이 있나.

-사실은 쌈넷이 다른 일반 레이블들처럼 처음부터 음반을 만들자, 그러기 위해서 레이블을 만들자, 해서 성립이 된 회사가 아니었다. 쌈지사운드 페스티벌이 있었고, 즐기기 위해서 재밌는 걸 하자해서 그렇게 하다가 어느새 쌈지사운드 페스티벌과 마찬가지로 커져버린 거다. 스스로 걸어가려던 것보다 더 커진 케이스다. 그래도 한 가지 고마운 것은 쌈지라는 이미지가 있어서, 좀 특이하다거나 생각이 있다거나 하는 뮤지션들이 찾아와 준다는 것이다. 그렇게 찾아와 주는 친구들을 픽업만 해도 특이한 쌈지만의 색깔을 가질 수 있었는데, 요즘은 그게 약간씩 변해가면서 그냥 레이블들 중의 하나로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도 고민을 하고 있다. 국악이라든가, 딴 데서 주목을 안 하거나 혹은 못 받거나 하는 쪽으로 관심을 돌려 다시 한번 원점으로 가서 원래의 ‘쌈지 색깔’을 찾아가보자는 목표를 갖고 있다.”

-쌈넷에서 나온 음반에서 드러나길 바라는 쌈지 색깔이라는 게 어떤 건가.

“뭔가 좀 ‘다르다’라는 얘기를 하는 것, 좀 촌스럽달까? ‘대중적이지는 않은데 대중적인 소재’를 찾는 것이다. 아직 ‘들어가지 않았지만 들어가야 할 것’들, 이걸 우리는 ‘소외’됐다고 하는데, 소외된 것들이 인정을 받고 그런 게 쌈지 문화의 신인이고 젊음의 연속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볼 때는 뭔가 다르다는 말로 표현될 것 같다.”

-여기서 ‘소외’됐다는 건 단순히 소외됐다는 게 아니라, ‘향후 5년이나 10년 이내에 빛을 볼 거라는 확신에서의 소외’이고, 그런 판단에서 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아닌가.

보이

보이

“뜨고 안 뜨고 보다는 그동안 검증된 것들만 보거나 고르거나 하는데, ‘쌈지의 눈’으로 검증시켜서 보여주는 그런 일정 부분의 역할이 예술문화와 관련된 쌈지의 입장이다. 그런 중에 농부가 나타난 거다. ‘농사가 예술이다’란 얘기는 예전부터 많이들 해왔던 얘긴데, 그걸 실천을 하는 것이다. 인사동도 그렇고, 헤이리도 그렇고, 매장으로 그걸 보여주려고 한 것이다. 그리고 우선 우리 직원들만이라도 농사도 짓고, 농사지은 걸 먹고, 그런 분위기로 회사를 이끌어 가면 교육적인 효과도 있고, 환경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음악, 미술 등이 같이 엮여 갔으면 하는 게 쌈지아트프로젝트의 연장선상이라고 본다.”

-쌈지 아트프로젝트에서 매년 10명씩 선정하는 미술가들을 보면 어느 정도는 미술계에서 중견 이상으로 올라간 것 같은데, 음악 쪽은 좀 다른 것 같다.

“미술 쪽이 오래되다 보니 지원 폭이 좀 크다. 미술 쪽은 레지던스 프로그램이 있으니까 나름대로 경쟁력이 있는 것 같다. 레지던스를 신청할 때마다 대단하고, 작가들의 해외 활동도 훌륭하다. 그런데 개인적으론 그게 뭐 대단히 중요한가라는 생각도 든다. 결국 그 작가들이 큰 길을 걷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하면 관객들, 대중들하고 소통하는가’가 가장 큰 목적인데,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거다. 너무 전문적이 되다보니까.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음악은 쌈지 소속도 많지는 않지만 대중과 소통하는 데 미술보다 가까운 거 아닌가. 재밌는 건, 미술 전공하는 학생들도 쌈지에 기대를 많이 갖고 있고, 음악도 숨은 고수다 해서 신청이 많이 들어오는데, 실질적으로 쌈지의 본격적인 문화를 대변하는 쌈지의 상품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쌈지는 그냥 문화인 거다. 문화가 담긴 물건이 아니라, ‘문화’와 ‘물건’을 철저히 구분하는 것 같다. 그걸 우리가 경계를 하고, 너무 전문적으로 가는 걸 섞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본다. ‘상품과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생활 속의 예술, 예술 속의 생활’이 모토인데 그걸 실천을 못하고 있다 (웃음). 쌈지 농부 할 때는 실천을 좀 하자고 굳게 다짐하고 있다.”

쌈넷(55AM, 쌈지) 발매 음반

[한국의 인디레이블](35) 쌈넷- 이곳은 ‘숨은 고수’들이 즐기는 무대

황신혜 밴드

[Ver 2.5 특별시 소년소녀] (1999)

어어부 프로젝트 밴드

[New Hair] (2000)

[21C New Hair] (2000)

닥터코아(Dr. Core) 911

[비정산조] (2000)

허벅지

[장미 허벅지] (2001)

황보령

[태양륜] (2001)

허클베리 핀(Huckleberry Finn)

[나를 닮은 사내] (2001)

[한국의 인디레이블](35) 쌈넷- 이곳은 ‘숨은 고수’들이 즐기는 무대

슈거도넛(Sugardonut)

[Spinner Jump] (2002)

[Speed King] (2003)

[Phantom Pain] (2006)

코코어(Cocore)

[Super Stars] (2003)

[Fire, Dance With Me] (2006)

게토밤즈 & 스키조 (Ghettobombs & Schizo)

[Star] (2003)

네스티요나(Nastyona)

[Bye Bye My Sweet Honey] (2004)

[한국의 인디레이블](35) 쌈넷- 이곳은 ‘숨은 고수’들이 즐기는 무대

포춘쿠키(Fortune Cookie)

[행운의 시작] (2004)

[Hills Like White Elephants] (2007)

언니네 이발관

[순간을 믿어요] (2004)

[가장 보통의 존재] (2008)

게토밤즈(Ghetto Bombs)

[Rotten City] (2005)

[한국의 인디레이블](35) 쌈넷- 이곳은 ‘숨은 고수’들이 즐기는 무대

골든팝스(Golden Pops)

[The Great Fictions] (2007)

보이(Voy)

[쉬어가기] (2007)

백현진

[Time Of Reflection] (2008)

V.A.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 1999] (1999)

[도시락 특공대 2. Behind Story] (2000)

[2001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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