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  

2009.02.01 18:13
노중훈 여행작가

연암의 여행 기술은 ‘열린 마음’으로

[책읽는 경향]열하일기…  

계절과 상관없이 싸돌아다니는 일을 밥벌이로 삼고 있는 까닭에 그동안 나라 안팎의 무수한 풍경과 만나고 헤어지기를 거듭했다. 길 위에 서면 항상 움켜쥐게 되는 문구가 ‘풍경의 안쪽’이다. 얄팍한 사전 정보와 편견의 속박에서 벗어나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모양새가 아닌 진짜 풍경을 카메라와 글로 길어 올리고 싶은 욕심에서다. 그런데 게으른 발과 밝지 못한 눈은 늘 안쪽이 아닌 ‘거죽’에만 머물기 일쑤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요령부득한 원고가 탄생하고 자괴감이 뒤따른다.

2003년 4월 강원도 평창에서 읽은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그린비)은 여러 모로 산뜻한 충격이었다. 고전 평론가 고미숙의 재기가 번뜩이는 문장과 연암 박지원에 대한 독특한 해석, 과거와 현재를 유기적으로 엮어내는 그의 입담과 필담에 꼼짝없이 매료당했다.

가장 깊숙하게 ‘얻어맞은’ 대목은 역시 연암의 ‘여행의 기술’이었다. 청나라 황제의 칠순을 축하하는 공식 사절단의 일원이었던 그는 끊임없이 대열을 이탈해 온갖 이질적인 대상들과 접속하고 낯선 문화를 파고들었다. 연암에게는 대팻밥 같은 지식과 고리타분한 허례와 일방적인 시선이 없었다. 열린 마음과 호기심과 유머 감각만을 대동한 채 ‘풍경의 안쪽’을 자유롭게 누비고 다닌다. 특히 여행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인 ‘유목’의 개념을 풀어놓은 문장은 지금도 마음속에서 어룽거리고 있다. “움직이면서 머무르고 떠돌아다니면서 들러붙는다. 단순한 편력도 아니며 그렇다고 유랑도 아니다. ‘지금, 여기’와 온몸으로 교감하지만, 결코 집착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어디서든 집을 지을 수 있어야 하고, 언제든 떠날 수 있어야 한다.” 어차피 우리네 인생도 이동을 통한 낯섦과 친숙함의 끝없는 변주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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