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을 물으면 형편이 안된다는 뜻이죠”

2009.07.01 15:45
안정효 소설가

지난 주일에는 lie back and enjoy it이라는 표현의 출처가 ‘공자님 말씀’이 아니라고 지적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성경 말씀이라고 믿는 the Lord works in the mysterious ways 또한 정작 성경을 찾아보면 어디에서도 나타나지를 않는다.

필자는 온갖 자료를 이용하여 성경에서 문제의 인용문을 찾아내려고 했지만 수월치가 않았고, 그래서 바티칸 성서대학(Pontificio Istituto Biblico)에서 성서학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한 딸에게 도움을 청했다. 수녀인 내 딸은 “mysterious 같은 단어는 히브리어로 존재하지도 않을 듯싶다”고 전제하면서, 문제의 인용문과 가장 비슷한 구절은 이사야 55장 8~9절이 아닐까 추측했다. 그 인용문은 이러하다.

[안정효의 Q-English]“값을 물으면 형편이 안된다는 뜻이죠”

“For my thoughts are not your thoughts, neither are your ways my ways, saith the Lord.”(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다르기 때문이니라.) ― 8절

“For as the heavens are higher than the earth, so are my ways higher than your ways, and my thoughts than your thoughts.”(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 9절

허무맹랑한 인터넷 괴담 같은 ‘헛소문’은 이렇게 공자님 말씀과 하느님 말씀까지도 제멋대로 희롱한다.

하지만 정확하고 적절한 인유와 인용은 어떤 사람의 화술을 풍요하게 뒷받침하며, 문학이나 연설에서는 재치가 넘치는 하나의 문장이나 표현을 넘어, 때로는 어떤 상황과 사건 전체를 차용하기도 한다. 이때 흔히 동원되는 원자재가 일화(逸話=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재미있는 얘기)다.

‘일화’는 영어로 episode나 anecdote라고 하는데, 그 두 가지 분야는 개념상으로 상당한 차이가 난다. 문학에서 훨씬 더 보편적으로 쓰이는 anecdote의 어원 anekdotos는 그리스어로 “책으로 엮어지지 않은”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어떤 개인에 대해서 역사나 전기를 통해서 공식적으로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흥미 있고 짤막한 얘기”가 anecdote이며, 설화나 전설에 가까운 내용이 되겠다.

반면에 정통성이 더 뚜렷한 episode는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 두 개의 코러스를 연결하는 삽입 부분으로서 어떤 작품의 큰 흐름에 끼어들어가 삽화 노릇을 하는 토막을 뜻한다. 그렇다면 <형사 콜롬보>에 등장하는 다음 두 가지 ‘일화’가 어째서 episode보다는 anecdote라고 해야 옳은지를 생각해 보기 바란다.

‘죽음의 소곡(Etude in Black)’에서 지휘자 존 캐사베티스는 연주를 앞두고 아내 안자네트 코머와 장모 머나 로이에게 이런 얘기를 한다.

“You know that Tchaikovsky got so nervous before a concert, he had

hallucinations and once he was so sure that his head was about to fall off he held it on with his left hand and conducted with the right hand.” (두 사람 다 알다시피 차이코프스키는 연주를 앞두고 너무나 신경이 예민해져서 환각에 빠지고는 했는데, 언젠가 한 번은 머리가 떨어져 나가리라고 너무나 굳게 믿었던 나머지, 왼손으로 머리를 받쳐 들고는 오른손으로 지휘를 했답니다.)

before a concert에서 정관사가 아니라 부정관사를 쓴 까닭은 어떤 특정한 경우가 아니라 습관적인 현상이었음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위기의 포도주(Any Old Port in a Storm)’ 편에서 콜롬보는 포도주 회사의 사장 도널드 플래전스에게 그동안 의심해서 미안했다고 사과하는 체하면서 함정에 빠트리려는 속셈으로, 사장과 여비서를 최고급 식당으로 초대하여 불러낸다. 그리고 콜롬보는 이런 조건을 붙인다.

“I want you to pick out the restaurant and I want to pick up the check.”(사장님께서는 식당을 고르시고, 계산은 제가 하겠습니다.)

pick이라는 단어로 곁말놀이를 한 이 예문에서 pick up the check은 “계산서(tab)는 ~가 맡는다”는 뜻이다. 어쨌든 그래서 막상 최고급 식당에 가서 보니 차림표에 가격을 밝혀놓지 않았고, 그래서 불안해하는 콜롬보를 보고 플래전스 사장이 (최근의 경제 환란을 통해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진) 미국 경제계 인물의 일화를 소개하며 여유를 부린다.

“J. P. Morgan was once asked how much his yacht would cost. His reply, if I

remember correctly, was: If you have to ask the price, you can‘t afford it.”(전에 누군가 J. P. 모건에게 그의 요트 값이 얼마나 나가느냐고 물었답니다. 내 기억이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가격을 꼭 알아야 할 사람이라면 그런 돈을 낼 만할 여유가 없다는 뜻이겠죠.”)

예문의 첫 문장은 수동태로서, was asked는 “~에 의해서 물어졌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말에서는 수동태를 별로 쓰지 않아서 어색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누군가’라는 불특정 주어를 집어넣고 능동태로 바꿔 번역했음을 유의하기 바란다. 이른바 ‘번역체’를 우리말답게 옮기는 한 가지 간단하고도 편리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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