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영화’ 만드는 신지승·이은경 부부

감독 : 신씨 제작 : 이씨 배우 : 전국의 마을 주민들

“할매, 어제 옆집 할배랑 싸웠지? 고대로 하면 돼요” “자, 레디~ 액션!” 

‘마을영화’ 만드는 신지승·이은경 부부

영화는 산업이다. 제작에서부터 배포에 이르기까지 자본의 뒷받침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다. 한데 이 자명한 사실을 거부하는 이들이 있다. 돈 없이도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신지승(46)·이은경(40) 부부다.

영화제작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출연료는 0원, 영화촬영에 동원되는 배우와 스태프에게 소요되는 식사와 숙박 등의 제비용도 들지 않는단다. 해답은 ‘마을영화(혹은 공동체 영화라고도 부른다)’이다. 감독은 신씨가, 제작은 아내 이씨가 맡는다. 배우는 전국의 마을 주민들이다. 때로 아이들도 동원된다. 주민들은 배우일 뿐 아니라 때론 영화감독이 되기도 하고 손이 모자라면 붐마이크를 들고 녹음기사를 하기도 한다. 연기를 배운 적이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카메라 한번 만져본 적 없고 심지어는 영화 자체를 본 적도 없는 고령의 노인들과 함께 영화를 촬영하는 일이 대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부부를 만나러 길을 떠났다. 부부의 작업실 겸 거처는 경기 양평 용문산 자락. 사륜구동 차가 있어야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가파른 산중턱이다. 집에는 여러 명을 수용해 영화교육과 상영이 이뤄지는 작업실이 있고, 집 앞 경사로 한쪽에는 돌을 쌓아 만든 작은 규모의 노천원형극장이 있다. 영화제작과 관람이 한 공간에서 이뤄지는 원스톱제작 시스템이 숲속 한 가운데 구축된 셈.

지금의 공간을 만들고, 마을영화의 개념을 바로 세우기까지 부부는 지난 10년간 고군분투했다. 충무로와 여의도 등 영화사와 드라마프로덕션에서 10여년간 연출부 생활을 하다 데뷔가 어그러지면서 좌절한 뒤 지금의 양평에 귀촌한 것이 99년. 경제적으로도 어렵고 작품창작에도 한계를 느끼면서였다. 연고도 없는 곳에 와서 몇년간은 힘들었다. 하지만 오히려 서울이 아닌 시골에서 새로운 영화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지금 한국의 영화는 돈으로 만드는 겁니다. 자본을 투자해도 단기에 최대한의 성과를 얻어내려고 하다보니 더욱 상업화가 되죠. 독립영화도 마찬가지예요. 독립영화 감독들조차도 언젠가는 상품으로서 자신의 영화를 들고 대중과 만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투자비가 많지 않다보니 오래 촬영하고 오래 묵히고 고민해가면서 영화를 만들 수 있어요.”

마을영화의 개념을 구체화시킨 것은 2003년 무렵. 가진 돈 탈탈 털어 5t 트럭을 사들여 작업을 하고 먹고 자고 씻을 수 있도록 개조한 뒤 트럭을 타고 전국의 마을을 누볐다. 영화현장에서 부부의 연을 맺어, 실무를 맡아 온갖 뒷감당을 다 해내는 아내 이씨도 물론 함께였다.

부부가 제작하는 영화에는 성공이니 복수, 살인 등 보편적인 영화의 소재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며 빚어내는 소소한 일상이 소재로 등장한다. 송아지를 잃어버려 화병이 나 누워버린 할아버지, 고춧값 100원 차이로 서로 싸우는 할머니, 경로잔치의 주인공인 노인들이 스스로 잔치 준비를 위해 전을 만드는 씁쓸한 현실, 이주여성 며느리와 시어머니간의 갈등 등 작지만 농촌의 단면이 담긴 모든 것들이 소재가 된다.

5톤 트럭 타고 전국 누비며 촬영
때론 배우가 감독이자 녹음기사
영화, 돈 없이도 잘 만들 수 있다

‘마을영화’ 만드는 신지승·이은경 부부

“기존의 드라마는 복수와 선악의 문제를 다루고 갈등이 있고 이것이 풀리면서 완결되잖아요? 마을영화에서는 생활속 갈등을 다룹니다. 마을마다 고유한 술이 있듯이, 마을영화도 마을마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갖고 있죠. 마을영화는 마을 사람들이 빚어내는 드라마입니다.”

마을영화는 자본과 대중의 입맛에 맞춰 기획된 상업영화, 독립영화와는 분명히 선을 긋는다. 제작 방식도 통상의 영화제작과는 차이가 난다. 영화제작 방식은 대강 이렇다. 역사, 설화 등을 통해 영화의 단초를 찾은 뒤 영화촬영지를 고른다. 마을 이장을 통해 연락을 넣고 협조를 구하는 것은 필수. 요즘엔 직접 의뢰가 오기도 한다. 다음 단계는 사전답사를 통해 주민들을 인터뷰하고 소재를 수집하는 것. 그 후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가면서 전체 주제를 잡아나가고 편집 등 마무리 작업을 한다. 그게 끝이 아니다. 제작의 마무리는 주민들과 함께하는 ‘달빛영화제’다. 야외에 천막을 치고 모두 함께 마을영화 시사회를 즐기는 것이다.

기존 영화제작과 가장 큰 차이라면 사전에 시나리오를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열려진 상태에서 작업을 합니다. 시나리오를 들고 가면 일단 그건 감독 개인의 영화가 되는 겁니다. 마을영화는 백지상태에서 출발합니다. 이야기의 원형을 마을에서 구해요. 여러개의 에피소드가 통합되면서 하나의 구성체가 돼 가는 거죠.”

신씨는 상업주의에 물든 한국 영화계의 대안을 마을 공동체에서 찾고 있었다. 그는 “마을은 자본주의의 물신 숭배를 극복하고 인간 정신의 가치를 위협하는 퇴폐성을 극복할 수 있는 공동체 창작의 소립자”라고 강조했다. 그뿐만 아니라 마을주민들에게는 유쾌한 체험이자 놀이며 치유의 경험을 제공하는 예술행위라고 설명했다.

“전남 화순에 갔었어요. 겨울이라 농한기였는데, 경로당에 가니 노인분들이 60~70여명 앉아계시더군요. 영화 이야기를 했더니 즐거운 소일거리로 받아들이시더군요. 나이를 막론하고 사람들은 누구나 즐겁고자 하는 놀이의 욕구를 갖고 있습니다. 예술은 즐거운 것이라는 데서부터 마을영화는 출발합니다.”

마을 주민들의 어설픈 연기가 혹여 영화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사실 농어촌의 잔잔한 일상을 완결된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일이 어렵지 ‘전원일기’류의 연기는 어렵지 않아요. 오히려 시골분들이 예술적 그릇이 더 커요. 무엇을 하는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다 알아요. 상황만 주어지면 스스로 알아서 대사를 해요. 서로 연기를 지켜보며 스스로 감독이 되어 훈수를 두기도 하죠.”

때문에 촬영 현장은 모두 함께 웃고 즐기는 축제의 장이다. 신씨는 공동체 구성원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력을 요하는 마을영화 작업은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문화예술교육·미디어교육과는 전혀 성격이 다른 작업이라고 강조했다. “이건 미디어 운동이 아니라 영화를 찍는 행위, 예술창작행위예요. 영화를 통한 미디어교육이라든가 문화예술교육은 아이들이나 청소년들에게는 가능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하루하루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주민들에게는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그 분들이 기껍게 참여해야 영화제작이 진행되거든요.”

부부는 지난 10여년간 60여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대부분 중·단편. 90분 이상의 장편도 10편이 넘는다. 작지만 성과도 있다. 환경을 소재로 한 영화는 영화제에 초청되고 청소년과 노인들이 배우로, 스태프로 참여한 영화는 청소년영화제, 노인영화제 등에서도 초청을 받아 상영됐다. “마을영화가 널리 알려지진 못했지만 영화계 내부에서는 파급력이 크다고 봅니다. 영상자료원이 진행하는 ‘찾아가는 영화관’이나 독립영화배급지원센터가 진행하는 ‘우리동네 극장만들기’ 등 최근에 커뮤니티를 위한 영화상영 이벤트가 늘고 있어요. 물론 커뮤니티의 구성원들이 제작에 참여한 영화를 상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죠. 그런 면에서 마을영화는 앞으로 더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하나의 문화브랜드가 될 수 있다고도 보고요. 맛집을 찾아가듯, 마을영화를 보려면 그 마을로 가도록 만드는 거죠.”

부부는 최근 그간의 경험을 모아 마을영화의 이론과 방법론, 비전을 담은 책 <떠돌이 감독의 돌로 영화만들기>(아름다운사람들)를 펴내기도 했다.

자본과 분업화된 시스템, 전문인력 없이는 불가능해보이는 영화제작을 농어촌 주민들과 유쾌하게 진행하고 있는 부부와 이들이 제작한 마을영화를 관람하고 서울로 돌아오면서 오랫동안 잊고 있던 예술의 본질을 되새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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