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회장님, 한국사회 변했습니까?”

2009.07.02 09:30
최병태 특집기획부장

김성주라는 여성 기업인 이름을 처음 대한 것은 MBC TV의 <성공시대>를 통해서였습니다. <성공시대>는 지금은 없어졌지만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공한 사람의 성공사례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 프로그램을 꼬박꼬박 챙겨보는 것은 아니었는데 우연히 접한 그의 이야기가 지금까지 생각나는 것은 비틀린 한국의 현실을 잘 집어낸 프로라고 여긴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기업을 하면서 술접대 안 하고, 돈봉투 안 돌리고, 거짓말 안 하면서 기업을 꾸려간다는, ‘김성주식 경영’이 주된 내용이었습니다. 김 회장은 그 프로그램이 방송된 후 자신이 납품하는 백화점과 면세점으로부터 많이 두들겨 맞았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10여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외환위기 때 일시적인 부도위기를 넘기고 지금은 투명경영, 가진 자가 책임을 다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대표적인 여성 최고경영자(CEO)의 대명사로 우뚝 섰습니다. 지난달 2일에도 모교인 연세대에서 21세기 지도자가 갖춰야 할 덕목을 주제로 강연하는 등 사업 외적인 일로도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가 2000년에 쓴 <나는 한국의 아름다운 왕따이고 싶다>는 사업을 하면서 겪었던 한국사회의 현실과 변화 방향에 대한 그의 생각이 녹아 있는 책입니다. 저는 그 책을 읽으면서 시종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가 책에서 조목조목 비판한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부조리한 현실들이 약 10년 만에 얼마나 고쳐졌나 하는 점입니다. 좀 거창하게 말하면 한국사회는 진보하고 있는가에 대해 기업가로서, 딸을 키우고 있는 엄마로서, 외국인 남편을 둔 아내로서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대성그룹 회장의 7자녀 중 막내가 누릴 수 있는 기득권을 과감히 벗어던진 그가 본 한국사회는 수술해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얼치기 엘리트만 생산하는 잘못된 교육, 일에 열정이 없는 공무원, 높은 부패지수, 북한 지원을 비판하는 시선에 대한 안타까움, 여성차별, 가진 자가 의무를 다하지 않는 아쉬움, 시스템 부재의 사회…. 이런 것들을 단순히 기록하는 정도에 만족해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 대해 회의적입니다. 그동안 한국사회는 나아진 것 없이 잘못된 관행을 답습하고 있거나 오히려 뒷걸음질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2008년 9월에 발표된 한국의 부패지수는 그동안 등락을 거듭하다 여전히 40위권에 머물고 있습니다. ‘또 다른 김성주’가 나올 수 없는 주입식 교육은 여전합니다. 공부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자살하는 학생들이 줄을 잇고 있고 첨단기술로 무장한 벤처기업인들이 정보 고속도로를 질주해야 할 때에 땜질식 삽질경제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남북관계는 크게 헝클어져 있고요. 기업인들의 사회공헌의식이 희박하다는 기사도 여전히 지면에 오르내립니다.

김 회장은 여러 가지 명예로운 수상 실적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게 가장 돋보이게 보이는 것은 포브스가 선정한 ‘아시아 이타주의자 48인’에 이름을 올린 것입니다. 그의 오랜 노력이 정당한 평가를 받은 결과입니다. 그로 인해 가진 자들의 기부의식이 사회 전반에 점차 확산되고 있는 것도 큰 공입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런 사회운동을 개인 차원이 아니라 사회연대 차원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길을 김 회장께서 모색해보시면 어떨는지요.

<최병태 특집기획부장 cb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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