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극은 손맛···4m 거인 앞, 소인이 돼 보세요”

2024.05.01 16:54 입력 2024.05.01 21:16 수정

5·6일 마포아트센터서 거리 인형극

이수정 ‘극단 봄’ 대표

“저출생에 어린이 관객 줄어 고민”

자신이 만든 인형 사이에 있는 극단 봄 이수정 대표. 마포문화재단 제공

자신이 만든 인형 사이에 있는 극단 봄 이수정 대표. 마포문화재단 제공

‘전국 다니면서 아이들에게 인형극 보여주자’는 소박한 마음으로 2003년 인형극단 봄을 창단했다. 최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만난 이수정 대표는 “그때만 해도 무모한 일인지 몰랐다”고 말했다.

대부분 인형극단은 비용 절감을 위해 인형을 직접 만든다. 이수정도 마찬가지다. 대학에서 조소 전공을 하고 어린이 방송용 인형을 다수 제작했지만, 무대극에 어울리는 인형을 만드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인형 옷을 만들어야 해서 재봉틀부터 사서 배우기 시작했다.

이수정은 “지금도 가장 어려운 건 대본”이라고 했다. 아무리 인형을 잘 만들어도 이야기가 좋지 않으면 어린이 관객을 끌어들일 수 없다. 희곡의 베테랑이라 해도 인형극 대본을 잘 쓰는 건 다른 문제다. 이수정은 “인형을 움직이면서 대사를 여러 차례 쪼개고 고쳐본다. 인형 움직임에 맞추는 게 우선”이라고 설명했다.

인형극 전문 배우가 많지 않다는 점도 고민이다. 연극을 거쳐 인형극으로 향하는 배우가 많은데, 처음에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은 ‘연기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라고 한다. 배우는 울고 웃고 화내는 연기에 익숙한데, 인형극 배우는 그 모든 연기를 인형에 양보하고 뒤로 물러나야 한다. 이수정은 “배우는 표정과 행동을 모두 거둬들이고 인형에 생명을 넣어야 한다”며 “이 과정을 이해하지 못해 3분의 2가 인형극을 떠난다”고 말했다.

21년이 흘렀다. 봄은 무대극과 거리극에 모두 능한 인형극단이 됐다. 그동안 <아주 특별한 그림여행> <이중섭의 편지> 등 무대극과 <걸리버 여행> <가족나들이> 등 거리극을 선보였다. 이수정은 “인형극은 손맛이다. 내 손으로 만든 인형이 거리에 나갔을 때 사람들이 좋아해주고, 또 언제 하느냐고 물어봐 줄 때 그렇게 보람 있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한정된 공간과 관객을 전제로 하는 무대극과 달리 거리극은 변수가 많다. 일단 날씨다. 비가 와서 공들여 준비했던 극을 올리지 못했던 적도 많다. 갑자기 바람이 세차게 불어 대형 인형이 위험할 정도로 흔들린 적도 있다. 날씨에 비하면 갑자기 인형 손을 잡아당기는 어린이 관객은 변수에 속하지도 않는다.

극단 봄 이수정 대표가 화가 이중섭과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 인형을 들고 있다. 마포문화재단 제공

극단 봄 이수정 대표가 화가 이중섭과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 인형을 들고 있다. 마포문화재단 제공

5월 가정의달을 맞아 마포아트센터 야외광장에서 극단 봄의 레퍼토리 <걸리버 여행>(5일)과 <가족나들이>(6일)가 공연한다. <걸리버 여행>에는 배우 4명이 움직이는 4.3m 인형이 등장한다. 거인 걸리버가 관객이 사는 소인 마을에 나타났다는 내용이다. 거리의 관객은 극단이 나눠준 가면을 쓰고 소인이 돼 극에 참여한다. 타인과의 소통, 공존을 이야기한다. <가족나들이>에는 배우 혼자 움직이는 3.3m 인형이 나온다. 가족의 소중함과 세대 간 소통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무대극용 소형 인형은 통상 한 달, 거리극용 대형 인형은 세 달에 걸쳐 제작한다. 대형 인형의 경우 무게가 있고 중심 잡기가 어려워 배우와의 소통이 필요하다. 인형을 다 만들고도 배우의 요구에 따라 끝없이 수정한다. 이수정은 “배우 이야기 듣고 고치긴 하지만, 일단 비주얼이 우선이라 인형에 욕심을 낸다. 대표의 특권”이라며 웃었다.

저출생은 수많은 인형극단에도 큰 과제가 됐다. 어린이 관객이 날로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수정은 “코로나19 때도 그렇고, 어린이 관객이 너무 줄었다는 것을 느낄 때 직업의 위기를 생각하곤 한다”며 “배우들도 투 잡, 스리 잡을 뛰다 보니 시간 맞추기 어려워 새벽에 연습을 잡을 때도 있다”고 전했다.

그래도 여전히 인형극이다. 몇달 전에는 영국 극단에 워크숍도 다녀왔다. 낮이 짧고 밤이 긴 유럽에서는 밤에도 볼 수 있는 거리극이 발전했다. 대형 인형 안에 LED 조명을 넣어 빛을 낸다. 이수정은 “새로운 제작방식을 도입해 조만간 야간 거리극을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걸리버 여행>과 <가족나들이>에 등장하는 대형 인형들. 마포문화재단 제공

<걸리버 여행>과 <가족나들이>에 등장하는 대형 인형들. 마포문화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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