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윤리

2009.09.01 17:51
소설가 손홍규

[손홍규의 로그 인]인간의 윤리

누군가 내게 우리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문장가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박지원 선생을 맨 앞에 내세울 것이다. 조금 길지만 인용하고 싶은 선생의 문장이 있다. “여인의 고개 숙인 모습에서 그녀가 부끄러워하고 있음을 보고, 턱을 괸 모습에서 그녀가 원망하고 있음을 보고, 혼자 서 있는 모습에서 그녀가 그리워하고 있음을 보고, 눈썹을 찡그린 모습에서 그녀가 수심에 차 있음을 보고, 난간 아래 서 있는 모습을 보고 그녀가 누구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고, 파초 잎사귀 아래 서 있는 모습을 보고 그녀가 누구를 바라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선생이 문장에 대한 견해를 피력한 글이다. 일종의 문장론이라고 할 수 있는데, 타인에 대한 이해를 비유로 삼았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문장에서 윤리를 거론할 수 있다면, 나는 마땅히 타인에 대한 이해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여긴다. 도덕적인 문장이란 도덕을 옹호하는 글을 뜻하지 않는다. 가치 있다고 믿는 것을 적었다고 해서 도덕적인 문장인 건 아니다. 문장의 경우 도덕성이란 우리가 글로 옮기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철저한 관찰과 이해를 뜻한다. 그러한 바탕 없이 관습적인 문장을 남발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문장의 윤리를 저버리는 셈이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땅 위에서 싱싱하게 퍼덕이는 저 물고기’라는 문장은 얼마나 비윤리적인가. 땅 위에서 퍼덕이는 물고기는 살기 위해 몸부림친다. 고통스럽게 아가미를 헐떡인다. 물고기를 동정하지 않아 비윤리적인 게 아니라 대상에 대한 철저한 관찰과 이해가 없기 때문에 문장의 윤리를 위반한 것이다. 문장의 윤리가 무슨 대수냐고 생각하실 분들도 있겠다. 그러나 문장의 윤리는 곧 인간의 윤리이기도 하다. 타인에게 관심과 애정이 없다면 저 숱한 도덕의 목록들도 아무 소용이 없다. 타인에 대한 이해 없이 도덕이 홀로 존재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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