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데니스 루헤인(1965~ )

2009.11.10 17:28
김지아 랜덤하우스 에디터

‘사회고발’의 칼날을 숨긴 범죄 소설

영미권 베스트셀러 차트의 대부분을 점령하고 있는 작품은 한국과 사뭇 다르다. 스릴러의 본고장답게 미국에서는 소위 ‘크라임 픽션’이라고 불리는 범죄소설이 종합 베스트셀러의 50% 이상일 만큼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작품들이 인기를 끌다 보니 이 장르는 기교적인 면에서도, 문학적인 면에서도 발전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최근 몇년 사이 국내에 소개된 해외작가 중에서 개인적으로 문학적인 면과 기교적인 면을 가장 훌륭하게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는 작가는 범죄소설계의 두 마스터 데니스 루헤인과 마이클 코넬리다. 두 작가 중 더욱 깊숙하게 사회적 담론을 다루는 루헤인을 소개한다.

[이 작가가 수상하다](21) 데니스 루헤인(1965~ )

1965년 미국 보스턴 근방에서 태어난 루헤인의 데뷔작은 국내에 소개되고 있는 ‘켄지&제나로’ 시리즈의 첫 편인 94년작 <전쟁 전 한 잔>이다. 뛰어난 문장력과 탄탄한 이야기구조, 사회성은 데뷔 후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결같다. 거의 평생을 보스턴에서 보낸 루헤인의 작품 속에는 보스턴이라는 도시의 인간 군상이 벌이는 일상 속의 어둠의 세계-가정 폭력, 아동 학대, 인종 차별 등-가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 중 가장 큰 유명세를 치른 것은 바로 <미스틱 리버>다. 지금은 명장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과 숀 펜, 팀 로빈스, 케빈 베이컨 등 연기파 배우들이 모인 영화로 유명하지만, 세 친구의 어둡고 암울한 과거를 하드보일드 범죄소설 형식으로 파헤친 이 작품은 앤서니 상, 배리 상 등을 석권한 루헤인의 대표작이자 최고작이다.

루헤인은 2003년작 <살인자들의 섬>으로 또 한 번 독자를 놀라게 한다.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모골이 송연한 반전을 자랑하는 이 소설은 절정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50년대 중반, 정신병으로 살인을 저지른 환자들만 수용하는 섬 셔터 아일랜드에서 펼쳐지는 두 연방보안관의 이 등골 서늘한 스릴러는 기존 루헤인의 작품과는 또 다른 성향을 보여준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에 의해 영화화돼 개봉을 앞두고 있다고 한다.

루헤인의 진정한 걸작은 국내에 아직 소개되지 않은 ‘히스토리 팩션’ 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루헤인이 3~4부 형식으로 발표하겠다고 밝힌 이 작품은 2008년 1편이 먼저 출간됐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조금 낯선 1919년의 보스턴 경찰 파업과 그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루헤인에게는 보통 하드보일드 스릴러 작가라는 닉네임이 따라붙지만 이 장르의 다른 작가들과는 차별성을 지니는 듯하다. 아마도 내면의 서정성 때문이 아닐까 한다. 루헤인의 작품 속에서 인물들은 심한 내적 갈등을 겪는다. 사랑, 가족, 친구 그리고 연민 때문에. 어둡고 불투명하고 우울한 도시 속에서, 섬 속에서, 그리고 평생을 함께한 마을 속에서 사색적인 주인공이든 와일드한 주인공이든 그들은 모두 상념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의 작품이 절대 내면심리만 따라가는 지루한 심리소설이라는 말은 아니다. 루헤인의 소설은 굉장히 재미있다. 이러한 내면심리가 바탕이 되어 독자는 주인공과 철저한 교감을 나누면서 이야기 속에 감정이입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루헤인의 작가적 성향 역시 다른 작가들과의 차별성을 드러내주는 듯하다. 루헤인의 큰 장점은 뛰어난 소설가적 재능과 함께 올곧은 이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그의 대표 시리즈인 ‘켄지&제나로’ 시리즈에는 평소에 그가 생각했던 모든 사회문제와 정치적 신념이 드러나 있다. 독자는 켄지와 제나로의 캐릭터적 매력과 추리 스릴러 소설 특유의 이야기 전개에 빠져 있다가 어느 순간 사회적 이슈를 고민하는 데 동참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점이야말로 루헤인이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상업소설 작가라는 것을 훌륭히 증명한다.

※ 국내 출간작 : <살인자들의 섬> <미스틱 리버> <가라, 아이야, 가라> <비를 바라는 기도> <코로나도> <전쟁 전 한 잔>(황금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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