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선원’ 개원 한달…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 수경 스님

2010.04.26 18:12 입력 2010.04.26 23:16 수정

“물, 풀, 나무가 모두 생명인데…파괴되니 하루하루가 고통”

봄이 왔다지만, 여주 신륵사를 끼고 도는 남한강변에는 봄이 없다. 봄꽃들이 피어나고, 덩치 큰 느티나무도 새싹을 틔웠지만 그저 ‘침묵의 봄’이다. 신륵사 삼층석탑이 서 있는 너럭바위 위에서 남한강을 느껴본 사람들은 안다. 범종소리와 유장하게 흐르는 강물이 자신을 얼마나 청정하게 만드는지. 지금 신륵사 건너 강변에는 모래가 산처럼 높이 쌓였다. 밤늦도록 이어지는 굴착기와 트럭들의 굉음은 남한강변의 봄을, 아니 강을 끼고 수천년을 살아온 수많은 생명을 깡그리 없애고 있다.

남한강 신륵사 입구에 컨테이너 박스로 만든 여강선원이 개원한 지 벌써 한 달 보름. 누더기 옷을 입고 남한강이 파괴되는 것을 지켜봐온 수경 스님은 “물, 풀, 나무, 강이 모두 다 생명인데 굴착기를 앞세워 남한강을 파고 도려내는 모습에 하루도 가슴 아프지 않은 날이 없다”고 했다. | 강윤중 기자

남한강 신륵사 입구에 컨테이너 박스로 만든 여강선원이 개원한 지 벌써 한 달 보름. 누더기 옷을 입고 남한강이 파괴되는 것을 지켜봐온 수경 스님은 “물, 풀, 나무, 강이 모두 다 생명인데 굴착기를 앞세워 남한강을 파고 도려내는 모습에 하루도 가슴 아프지 않은 날이 없다”고 했다. | 강윤중 기자

신륵사 입구 남한강변에 세워진 여강선원(如江禪院).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으로 고통 받는 뭇 생명을 위로하고, 인간의 파괴적인 물신주의를 참회하기 위해 만든 성찰의 기도 공간이다. 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인 수경 스님(61·화계사 주지)이 여강선원의 문을 연 지도 한 달이 지났다. 컨테이너 박스인 선원에서 만난 수경 스님은 봄 같지 않은 봄을, 단양쑥부쟁이와 금모래의 비명에 아파했다. 생명평화의 소중함을 알리고 물신주의에 빠진 우리들의 삶을 반성케 하기 위해 삼보일배, 생명평화 탁발순례, 오체투지까지도 해온 수경 스님. 다시 강변에 나선 스님의 손은 몹시 거칠다. 얼굴은 햇볕에 그을렸고, 다리는 여전히 불편하다. 그러나 스님의 목소리는 새벽 샘물같이 맑았다. 국민의 소리에 귀를 막은 정부, “처참한 생명파괴를 보면서도 무관심한” 일부 성직자들과 신앙인들, 그리고 사람들을 향해 죽비를 들었다.

-여강선원이 개원한 지 한 달이 넘었습니다. 강변에서 보낸 소회가 있으실 텐데요.

“고통스러웠습니다. 아픈 하루하루였죠. 제 자신이 정말 생명이 무엇인지 천착하고, 정말 절박한 심정으로 4대강 문제를 다뤄왔는지 되묻게 됩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저 공사판을 보면서, 이 목숨까지 내놓고 있는 것인지….”

-여강선원은 큰 반향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자책하시는 것 아닌가요.

“중노릇이란 게 뭡니까. 부처님의 제자가 될 때 다섯 가지 약속을 합니다. 5계, 그 첫째가 불살생입니다. 자신이 알게, 모르게라도 생명을 해치지 않겠다는 것. 누군가가 생명을 해치려고 하면 이해시키고, 설득을 해 막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럼에도 살생의 장소, 죽어가는 현장이 있다면 그 죽어가는 생명과 아픔을 함께하고, 위로하는 것입니다. 과연 이 시대, 지금 이 땅에서 이 약속을 제가 얼마나 사유하고 실천하고 있는지…. 우주 만물이 하나이고, 그 전체가 생명이란 게 부처님의 세계관, 생명관입니다. 들숨날숨만이 아니라 물, 풀, 나무, 강 그 자체가 생명이고, 이 모든 것의 기운이 어우러지고 조화로울 때 비로소 생명입니다. 그런데 지금 벌어지는 4대강 공사현장을 보면….”

-수많은 사람이 여강선원을 찾습니다. 여강선원이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알리고, 또 생명과 평화를 성찰하게 하는 중심지가 된 것 같은데요.

“힘이 많이 됩니다. 많은 분이 왔고, 또 오고 계십니다. 다른 종교 성직자들은 물론 각계각층, 아이들의 손을 잡고 온 가족이 전국에서 옵니다. 강변을 순례하는 그 분들의 모습은 아름답습니다. 그 뜻, 기운들이 하나둘 모아져 뭉치면 4대강 사업중단은 물론 생명파괴를 일삼으며 살아온 우리의 삶의 방식도 변화할 것이라 믿습니다.”

-종교계까지 나서 4대강 사업을 반대하지만, 정부는 홍보부족 때문이라며 홍보활동에 나서고 있는데요.

“한심한 일입니다. 홍보가 아니라, 소통을 해야죠. 정부는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여 각계각층과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선 공사를 중단하고, 소규모 일정 구간만 먼저 사업을 해본 뒤 그 평가에 따라 사업을 확장해도 됩니다. 소통하고,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데 설득·홍보하겠다고 나서니 참. 어떻게 종교인들까지도 그저 홍보 대상으로 볼 수 있는지.”

-종교인을 대상으로 한 정부의 홍보작업은 역효과도 큰 것 같던데요. 분위기가 어떻습니까.

“종교인들을 어린아이로 보는 것 같아요. 성직자들이 왜 나서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정치적·개인적 이득을 위한 것이 아니죠. 그저 각자의 종교적 입장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는 겁니다. 천주교 입장에선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하는 게 바로 4대강 사업이고, 불교에서는 우주 전체가 불신인데 이를 훼손하는 것이 4대강 공사입니다. 종교적으로 도저히 용납되지 않으니까 성직자들이 나오는 겁니다. 이렇게 공사가 추진되는 게 맞는 것인지 되짚어보고 살펴보자는 것이죠. 종교적으로 볼 때 4대강 사업은 단순히 4대강 문제만이 아닙니다. 지금까지의 파괴적 물신주의 의식이 4대강 사업을 낳았고, 그 의식과 삶의 방식을 전환하지 않으면 또 다른 4대강 문제가 일어날 겁니다. 이 기회에 정부와 기업·종교·시민사회단체 등 사회의 전 구성원이 모두 머리를 맞대고, 우리의 삶을 살리는, 이 땅의 생명과 평화를 살리자는 그런 큰 틀에서 4대강 문제를 이야기하고, 바라봐야 합니다. 그런데도 겨우 한다는 게 홍보하겠다니….”

수경 스님은 4대강 공사에 무관심한 성직자, 신앙인들도 비판했다. “종교가 제 역할을 제대로 못하니까 이런 문제가 일어나는 겁니다. 숱한 생명을 파괴하는 4대강 문제에도 침묵을 지킵니다. 종교는 늘 되돌아보고 성찰하도록 해야죠. 4대강 문제를 넘어 보다 근본적인, 생명평화를 파괴하는 삶의 방식 전환, 일상생활의 변화를 이끌어내도록 역할을 해야 합니다.”

스님은 정치권, 특히 야당도 신랄하게 비판했다. “한나라당도 문제지만 민주당의 문제는 더 크다”면서 “원론적 비판만 할 뿐 현장에서 직접 나서 사업의 부당성을 알리고, 연대하는 데에는 소극적”이라는 지적이다. 또 “선거문제도 마찬가지다. 4대강을 살리기 위한 결단이 필요하다. 민주당이 4대강보다 더 오랜 세월을 사는 것이 아니다. 최근 야당의 통합논의는 4대강을 살리려는 결단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경 스님은 “국민들도 생명을 그 어떤 가치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삶을 꾸려가도록 해야 한다”며 “지금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게 바로 나 자신의 문제라는, 내 생명을 살리는 것이라는 인식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불교계의 대규모 수륙대재에선 4대강 사업을 ‘이명박의 난’이라고 규정하셨습니다.

“국운이 걸린 중요한 사안인데 대통령,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합리적으로 하자고 요구하는 겁니다. 4대강 개발은 대규모의 국토 파괴행위이자 인공적인 개조, 바로 자연의 신성에 대한 도전입니다. 역사를 지우는 일이자, 국토를 하나의 소모품으로 전락시키는 거죠. 누가 이런 권리를 주었습니까. 그래서 국토와 국민을 상대로 한 ‘이명박의 난’이라고 말한 겁니다. 또 이 사업은 국가재정법 등 각종 법률을 어기는 불법행위입니다. 다수의 국민이 반대하지만 공사를 강행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 아닙니까. 이것이 법과 민주주의에 대한 ‘이명박의 난’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 대통령께 지금도 늦지 않았다, 임기 내 업적에 집착하지 말고 공사를 중단한 뒤 속도와 내용을 수정하라고 요구하는 겁니다.”

-이 대통령에게 한 말씀 하신다면.

“결단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4대강 문제는 이제 4대강에 국한된 게 아니라, 국정운영 전반에 대한 국민의 신뢰문제로 이어졌습니다. 종교인들까지 나서면서 불신을 받게 되고, 이는 국정운영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며 적으로 규정하고, 매도하는 태도는 안됩니다. 만약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철학, 국정운영 기조가 정말 그렇다면 대통령의 자질이 없습니다. 통합과 조정을 해야 할 자리, 문제를 풀어야 할 자리에 있는 대통령이 오히려 문제를 일으키고, 더 어렵게 만드는 당사자가 되어선 안되죠.”

-세워놓으신 계획이 있다면.

“저야 늘 참회하고, 기도하는 겁니다. 오후에는 오체투지를 하고. 종교인의 자세를 잃지 않아야죠. 다양한 문화행사들도 준비되고 있고, 더 많은 사부대중도 힘을 보태고 나섭니다. 4대강 문제는 단순한 생태파괴, 자연훼손의 문제가 아닙니다. 자연섭리와 생명질서를 거스르는 사회 전반의 폭력적이고 물신주의적인 삶과 그런 삶의 방식, 반생명 문화의 문제입니다. 바뀔 때까지 저는 기도해야죠.”

-종교가 연대하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지 않습니까.

“타 종교인들과 대화, 고민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 드러낼 때가 아닙니다. 5월, 6월쯤이면 종교들 간의 연대를 통한 큰 힘이 가시적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 수경 스님은

수경((收耕) 스님은 1949년 충남 청양 출신으로 18세에 수덕사로 출가했다. 사회적으론 불교계의 대표적 환경운동가로 유명하지만, 조계종단 내부적으로는 선승(禪僧)으로도 이름이 높다. 출가 이후 해인사, 용화사 등 전국의 선방에서 수행정진했다. 스님이 환경운동에 나선 것은 도반인 도법 스님과 함께 99년 지리산 댐 건설에 반대하면서부터다. 2001년부터 10년째 ‘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로 강과 산, 들판에서 땅과 나무들과 숨결을 나누며 ‘수행’하고 있다. 2003년 참여정부 당시 새만금사업 중단을 촉구하며 새만금부터 서울까지 삼보일배로 생명평화의 가치를 알렸다. 2006년 화계사 주지 소임을 맡았지만 ‘현장 수행’은 계속됐다. 2008년에는 4대 종단 성직자들과 함께 ‘생명의 강 4대강 도보순례’를 진행했으며, 2009년에는 오체투지 순례까지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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