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은 축음기를 어떻게 수리하는가

2010.08.01 22:13 입력 2010.08.02 01:35 수정
인진혜 | 도서출판 띠 대표

지구 저편의 낯선 삶까지도 사랑하게 하다

▲ 군인은 축음기를 어떻게 수리하는가 | 사샤 스타니시치·낭기열라

[책읽는 경향]군인은 축음기를 어떻게 수리하는가

나는 앞으로 10년 동안 기억하는 일을 그만두겠다고 약속하고 싶었지만, 카타리나 할머니는 잊는 것을 반대하셨어. 할머니에게 과거란 개똥지빠귀들이 지저귀고, 이웃 아낙네들도 재잘거리고, 누구나 우물에서 커피를 끓여 마실 물을 퍼올 수 있고, 슬라브코 할아버지와 친구들이 숨바꼭질을 하던 정원이 있는 여름 별장이야.

그리고 현재는 그 여름 별장에서 멀리 데려가고, 탱크의 캐터필러 밑에서 흐느끼고, 자욱한 연기 냄새가 나고, 말들이 도살되는 길이지. 뒷자리에 있던 할머니가 내게 속삭이셨어. 사람은 둘 다 기억해야만 한단다. 모든 것이 좋았던 시절과 아무것도 좋지 않은 시절 모두를 말이야. (177쪽)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비셰그라드. 베오그라드. 한 번도 가본 적 없고 앞으로 가볼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작가의 이름을 발음할 때마다 그 낯섦에 혀가 꼬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꼬마 이야기꾼 알렉산다르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으로 정신없이 빠져든다.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마을의 모든 것이 좋았던 시절과 아무것도 좋지 않았던 시절의 그 이야기에, 그 사랑스러운 흥겨움과 뻐근한 아픔에, 많이 웃고 많이 운다.

좋은 이야기란 이런 거구나. 지구 저편의 낯선 삶까지도, 그 헤아릴 수 없는 고통까지도, 상상하게 하고 아파하게 하고 품게 하고 (바라건대) 사랑하게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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