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최대 정적과도 비밀편지 주고받은 ‘정치 9단, 정조’

2011.04.01 20:57

▲ 정조의 비밀어찰, 정조가 그의 시대를 말하다…박철상·안대회 외 | 푸른역사

2009년 2월, 정조 시대를 다룬 모든 드라마, 영화, 역사서를 다시 쓰게 만들 만한 문헌이 나왔다. 정조가 그의 최대 정적으로 알려진 노론 벽파의 영수 심환지에게 보낸 297통의 비밀 편지를 묶은 <정조어찰첩>이 공개된 것이다. ‘개혁군주 정조 대 보수적 신하 심환지’의 대결구도에 익숙했던 학계와 대중은 심환지가 실은 정조의 최측근이었음을 밝혀주는 편지 내용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정조의 비밀어찰>은 <정조어찰첩>이 공개된 이후 두 차례에 걸쳐 열린 연구발표회에 나온 논문들을 묶은 책이다.

물론 정조가 심환지에게만 편지를 보낸 건 아니다. 일찌감치 측근으로 분류된 채제공에게 보낸 편지는 이미 공개된 바 있고, 다른 신하들과도 편지를 주고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즉 “정조는 신하들의 성향 내지 행동을 바꾸기보다는 어찰을 소통과 조정의 수단으로 사용해 자신의 뜻을 관철했다”. 비유하자면 “하늘의 달은 하나이지만 물에 비친 달의 형상이 다양하듯이, 정조는 자신의 뜻을 여러 신하에게 각각 다른 방식으로 구현하려고 했던 것”이다. 정조는 대단한 군주였지만, 읽는 즉시 폐기하라는 왕명을 어기고 받은 날짜까지 기록해 보관한 심환지도 보통은 아니다. 심환지에게 이 어찰은 일종의 ‘정치적 보험’이었던 셈이다.

[책과 삶]최대 정적과도 비밀편지 주고받은 ‘정치 9단, 정조’

정조는 심환지에게 보낸 서찰에서 인사, 정치 현안, 인물평 등 다양한 것들을 논의했다. 정조는 현안에 대한 자신의 뜻을 전하고, 심환지가 자신의 주장인 것처럼 말하게 한 뒤 이를 윤허하는 방식을 취하기도 했다.

비밀 어찰인 만큼 정조의 개인적, 인간적 면모가 드러나는 점도 흥미롭다. 정조가 “진실한 선비의 전형이라기보다는 국왕 지지세력조차도 당혹스러워할 정도로 기만과 독단을 자주 사용”했다는 점은 기존 연구에서도 드러났지만, 정적들에 대해 “호로자식” “입에서 젖비린내 나고 미처 사람 꼴을 갖추지 못한 놈” 같은 격한 표현을 썼다는 점은 새롭다. “뒤쥭박쥭” 같은 한글을 섞어 쓰는가 하면, “껄껄(呵呵)” 같은 의성어도 썼다.

정조는 ‘의리탕평’을 추구했다. 특정 사안에 대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하늘의 이치에 연결시켜 밀어붙이는 것이 ‘의리’라면, 극단으로 대립하는 세력까지 포용하는 것이 ‘탕평’이었다. 즉 각 정파의 의리를 넘어 이를 포용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운 셈이다. 원칙론적으로 정조에게 반대했던 노론도 변통의 가능성을 열어두었다는 점에서 정조시대는 오늘날까지 주목할 만한 고차원의 정치기술을 보여준 셈이다. 2만7800원

[책과 삶]최대 정적과도 비밀편지 주고받은 ‘정치 9단, 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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