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 치유 식당’에 가보셨나요?

2011.05.01 20:02 입력 2011.05.01 20:03 수정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심야 치유 식당>(하지현, 푸른숲)에 가보셨나요? 대학가 뒷골목 지하에 위치한 작은 카페인 그 식당에는 불면증, 음식 중독, 발기부전, 징크스, 공황장애, 우울증, 직장인 사춘기에 걸린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마음이 춥고 배고픈 그들이 전직 정신과 의사인 식당 주인과 술잔을 나눠가며 자신들의 병을 고쳐 나갑니다. 하소연할 이모나 고모, 삼촌, 그도 아니면 부모나 친구도 떠오르지 않을 때 혼자 술을 마시며 고통을 달래려고 외진 곳에 위치한 이 식당을 찾게 된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이 식당은 저자가 설정한 가상의 병원입니다. 그곳에 상주하다시피 하는 단골들과 주인, 그리고 새로운 손님들은 모두가 세상을 너무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심각한 정신병을 앓고 있습니다. 병원에서 틀에 박힌 처방전만 받고서 당황했던 이들도 이 식당에서는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인간적으로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해 나갑니다.

요즘 심리학책이 유행입니다. 2000년대 중반만 해도 역사서와 심리서가 인문서 시장을 선도했지만 지금은 심리학책들이 독주하고 있습니다. 아, 물론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100만부 팔리고, 인문학 서적을 읽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철학서가 대형서점의 알토란 같은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하고, 관계사를 중시하는 역사서들이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국내에서 심리학 관련 글을 처음 쓴 이는 청량리 뇌병원을 설립한 최신해 박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 박사는 정신분석학적 입장에서 인간의 무의식과 정신적 고뇌와 갈등, 현대인의 문명에 따른 병적인 노이로제 등을 조명하는 글을 썼습니다. 최 박사가 1963년에 펴낸 <문고판 인생>은 70년대 내내 산업화의 그늘에 시달리던 독자의 사랑을 받았지요.

80년 12월부터 컬러 텔레비전 방영을 시행한 5공 정부는 82년에는 통행금지를 해제하고 교복 자유화 조치를 시행합니다. 그리고 컬러화 시대에 적당한 콘텐츠로 82년 프로야구, 83년 프로축구와 천하장사 씨름대회를 출범시킵니다. 컬러 텔레비전의 화려한 영상과 포르노테이프의 현란함에 넋을 놓는 사이에 이시형 박사가 등장합니다. 미남 정신과 의사였던 그가 컬러풀한 옷을 입고 텔레비전에 출연해, 남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소극적 성격의 한국인에게 “우리도 이제 기를 좀 펴고 자신있게 살자. 그렇게 살다보면 남에게 신세를 질 수 있고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권유하자 사람들은 열광하기 시작했지요.

이시형 박사의 <배짱으로 삽시다>는 80년대 초반의 출판시장을 강타합니다. 때마침 ‘배짱의 화신’인 큰손 장영자가 나타나 50대 남자들의 욕망을 크게 자극하는 바람에 이 책이 대대적으로 팔리면서 대중은 산업시대에 걸맞은 인간형으로 개조할 움직임을 보입니다. 여성용 ‘배짱으로 삽시다’인 <자신있게 사는 여성>까지 내놓은 이 박사는 80년대 내내 독보적 존재로 군림했습니다.

90년대에는 <나는 다만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을 뿐이다>의 김정일, <때론 나도 미치고 싶다>의 이나미, <표현하는 여자가 아름답다>의 양창순 등 심리학 에세이 트로이카가 맹활약했습니다. 김정일 책 광고의 헤드카피는 “No 할 줄 아는 여자가 아름답다”였지요. 그의 두 번째 책 <어떻게 태어난 인생인데>의 광고 카피는 “사랑도 섹스도 성공도 다 좋다. 그러나!”였습니다. 양창순의 책 제목은 ‘진정한 섹스어필은 삶의 열정이다’가 될 뻔했다고 합니다. 이들의 주장은 글로벌화와 정보화로 행동반경이 무한대로 넓혀지고 있음에도 마음이 지난 시대의 이념이나 집단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20·30대 여성들을 질타했습니다.

외환위기를 겪은 직후인 2000년대 초반의 심리학책들은 자기계발서 역할을 했습니다. 로버트 치알다니의 <설득의 심리학>, 파트릭 르무안의 <유혹의 심리학>, 카트린 방세의 <욕망의 심리학> 등 외국에서 들여온 심리학책들은 타인을 이해하고 설득할 수 있는 원칙들을 알려주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설득 전략들은 모두 상호성, 일관성, 사회적 증거, 호감·권위, 희귀성 등 여섯 범주로 규정할 수 있다는 것을 밝혀낸 <설득의 심리학>은 밀리언셀러의 반열에 올랐지요.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이 이 책들을 정말 열심히 읽었습니다.

이제 심리학책들은 더 이상 적극적인 ‘의지’를 촉구하지 않습니다. 치유, 욕망, 관계, 응원 등을 이야기할 뿐입니다. 자살하지 않고 단지 살아남아 주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책도 점차 늘어납니다. 저자의 직업도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물론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말하다>의 김혜남이나 하지현처럼 오랫동안 정신과 전문의로 일한 분들이 인기를 끌고 있지만요. <천개의 공감> 등 심리 치유 에세이를 쓴 소설가 김형경은 심리 치유 소설도 썼습니다. <심야 치유 식당>도 소설이나 다름없어 보입니다.

최근의 심리학책들은 국가와 사회, 가족, 직장의 휘장으로부터 쫓겨 나와 허허벌판에 벌거벗고 홀로 선 사람들이 너무나 다양한 정신질환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다 보니 주제와 독자 대상을 갈수록 세분화하고 있습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외치는 책에 수많은 청춘이 위안받고 있기도 하지요. 어떠신가요? 오늘밤 저와 함께 <심야 치유 식당>에서 술 한잔 나눠 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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