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와 정우성

2011.05.02 19:49
김경 | 월간‘바자’에디터

이지아와 서태지씨의 결혼설이 사실로 밝혀지는 순간 나는 누구보다 당혹스러웠고 또 슬펐다. 무엇보다 그 엄청난 스캔들이 터지기 전 ‘하퍼스 바자’ 5월호에 썼던 정우성씨와의 인터뷰 기사(수없이 많은 매체들이 인용한 바로 그 기사, ‘정우성 사랑을 말하다’ 편) 마지막 문장이 떠올랐고, 누구보다 내 자신이 극심한 수치심을 느끼며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 들었다.

하지만 진심이었다. 적어도 하늘이 두 쪽 나도 ‘계산 없이 사랑에 빠진 사람들’ 편이니 세상이 뭐라 하든 “정우성에게 샴페인 한 병을 보내야겠다”는 마지막 나의 문장은.

지나치게 빨리 샴페인을 터트린 내 경거망동을 하늘이 벌하신 걸까? “그럼 순수는, 사랑은 어디에 있는 거냐”고.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묻고 답하며 동의하던 정우성과 나, 우리 두 사람을 세상은 바보로 만들었다. 돈과 권력, 혹은 인기 같은 물적 가치를 위해 사랑도 결혼도 비즈니스화하고, 그 비즈니스를 위해서라면 사랑하는 사람의 존재마저도 숨기고 부정할 수 있는 세상에서 여전히 ‘인간의 이상, 사랑의 순수’ 같은 걸 추구하던 사람들 모두가 모욕감을 느낄 만한 엄청나게 불쾌한 사건이 터진 거다.

나는 이지아씨에 대해 전혀 모른다. 하지만 정우성씨에 관해서라면 나름대로 잘 알고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11년 전에 인터뷰를 통해 처음 알았고, 그때부터 나는 우리의 공감대에 일종의 우정의 감정을 느끼며 지난 11년 동안 내가 아는 그만의 인간적인 매력이 조금씩 더 깊이 무르익는 걸 보았다.

예컨대 이런 거다. 그에겐 본질적으로 아직 순진무구함을 완전히 잃지 않은 성인 남자만이 가질 수 있는 순수하고 건강한 내면의 불꽃 같은 게 있다. 그게 처음 만났을 땐 스타시스템에 휘둘리고 싶지 않은 청춘스타 정우성만의 분방한 매력으로 다가왔고, 두 번째 만났을 때는 아무리 유명해져도 오래 만난 내 연인, 내 친구들을 지키고 싶어하는 남자의 듬직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세 번째 만났을 때는 <박쥐>나 <악마를 보았다> 같은 잔인하고 폭력적인 영화가 아무리 득세해도 자기만은 꿋꿋하게 “세상엔 휴머니티가 필요하다”는 연기 철학을 고집하고, ‘나쁜 놈’보다 멋없는 ‘좋은 놈’을 자청하여 아예 목숨을 내놓고 연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만의 미련한 매력에 혼자서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네 번째 만나서 우리는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로서는 인터뷰든 촬영이든 피하는 게 상책인 시기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열애설이 터지기 전에 잡혀 있던 인터뷰라는 이유로 피하려고 하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 그 약속을 지켰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했다. 자신에게는 ‘지킨다’는 의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약속을 지키고, 내 사람을 지키고, 내 이상을 지키는 게…, 아니 지키려고 노력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그 때문에 손해를 보고 바보 취급을 당하고 때로는 사기를 당하는 한이 있어도 자신은 그냥 어쩔 수 없이 계속 그렇게 된다는.

이 글을 쓰는 내 마음은 그런 그가 ‘그럼에도 가능하면 상처 덜 받으면서 자신의 이상과 가치를 계속 지켜주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수십 군데의 매체들이 내가 쓴 ‘정우성, 사랑을 말하다’ 기사를 인용하며 기사화했지만 그 중 단 한 군데라도 기사를 끝까지 읽고 한 남자의 진심을 조금이라도 헤아려 보았을까 의문스럽기 때문이다.

그는 서태지씨 같은 막강한 ‘신도’들을 거느린 신비주의자가 아니기에 지금까지 참 손해 보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서태지씨 같은 압도적인 영향력과 인기를 누려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나는 확신한다. 적어도 서태지씨보다는 정우성씨가 훨씬 더 행복한 인간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며 미래의 비전도 더 밝을 거라고. 무엇보다 정직과 순수에 가치를 두고 그걸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자기 내면의 모순으로 소진하는 일이 없다. 그래서 사랑과 일, 인생에 자신을 바치는 데 필요한 충분한 에너지가 언제나 있게 마련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니 아무도 함부로 정우성씨를 동정하지 않길 바란다.

서태지씨가 유행 타는 시대의 산물이었다면(한때는 그를 엄청난 뮤지션으로 추앙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이제와 보니 개인적으로 그런 확신이 든다.) 정우성씨는 영화를 사랑하고, 순수와 사랑, 이상을 지키는 어느 시대에나 통하는 고전적인 현재진행형 스타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나는 여전히 뻔뻔스럽게도 정우성씨를 위해 건배를 외칠 거다. 그가 최근에 다시 보고 감탄하게 됐다는 사랑에 관한 가장 진실하고도 멋진 영화 <추억>을 비디오로 다시 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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