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대표 맡은 영화감독 임순례

2011.05.23 21:14
손동우 기획에디터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동물도 사랑합니다”

인본주의, 또는 인간중심주의란 모든 사람의 존엄과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상 체계인 만큼 대체로 긍정적으로 통용된다. 그러나 그것이 사람만이 최고이며, 사람만이 세계의 전일적 지배자라는 오만으로 빠져들 경우 크나큰 재앙을 낳게 마련이다. 그 오만함과 편협함은 인간이 발을 딛고 있는 자연을 파괴하고,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동물을 파멸시키며, 결국 인간 스스로에게도 죄업의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된다.

인간의 육식 섭취와 이윤 추구라는 인간중심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공장식 목축을 보자. 그것은 필연적으로 주변환경을 오염시키고, 동물들에 대한 잔학행위를 수반한다. 광우병과 구제역 따위는 어쩌면 그것의 불가피한 값비싼 비용일 터이다. 인간이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애완동물을 키우는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동물의 귀엽고 예쁜 측면만 보고 선택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게 되거나 싫증이 날 경우 함부로 버린 결과 유기동물 문제라는 사회적 난관에 봉착하게 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 15일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운수리 마석 동물보호소에서는 유기동물을 위한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비영리공익재단인 ‘아름다운 재단’으로부터 전달받은 7000만원의 유기동물보호기금에 힘입어 동물보호시민단체인 ‘카라(Korea Animal Rights Advocates)’가 의료봉사대·미용봉사대 발대식을 갖고 유기동물의 중성화수술, 피부치료, 미용 등 본격적이고 체계적인 활동에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이날 행사에는 평소 유기동물보호에 깊은 관심을 보여온 배우 채시라·가수 김태욱 부부 등 유명인들이 참가해 다른 회원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펼쳐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이날 행사의 중심인물은 넉넉한 체구를 지닌 여장부 스타일의 어느 중년여성이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생순)> 등 일반에도 널리 알려진 영화를 연출한 임순례 감독(51)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2년 전 카라의 대표를 맡은 이래 열정적인 활동을 해오고 있는 임 감독을 만나 동물보호와 영화에 얽힌 얘기를 들어 보았다.

동물보호단체 ‘카라’의 대표인 임순례 감독이 15일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동물보호소에 열린 의료봉사대·미용봉사대 발대식에서 유기견을 품에 안고 미소짓고 있다. 그는 “지구상의 약자인 동물을 사랑하는 것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동물보호단체 ‘카라’의 대표인 임순례 감독이 15일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동물보호소에 열린 의료봉사대·미용봉사대 발대식에서 유기견을 품에 안고 미소짓고 있다. 그는 “지구상의 약자인 동물을 사랑하는 것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임순례가 카라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실로 우연이었다. 평소에도 동물을 좋아해서 백구 한 마리를 키우고 있던 2004년 어느날 그는 개를 잃어 버렸다. 동네방네 벽보를 붙이고, 인터넷에도 ‘심견(尋犬) 광고’를 띄우고 있던 어느날 그는 한 네티즌으로부터 ‘내가 어떤 유기견을 구출하려고 눈여겨보고 있는데 당신이 찾는 개와 용모·골격이 비슷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두 사람이 ‘공조·연합 작전’을 실시했는데도 결국 백구는 찾지 못했다. 임순례는 그러나 “그 과정에서 유기견을 비롯한 온갖 버려지는 동물들의 실상을 생생하게 알게 된 것이 큰 성과였다”고 말했다. 네티즌은 카라의 전신 격인 인터넷 동호인 커뮤니티 ‘아름품’의 열렬 회원이었고, 임순례는 그의 권유의 따라 그 단체의 명예이사가 됐다. ‘아름품’은 2006년 사단법인 ‘카라’가 됐고, 임순례는 동물사랑을 위해서는 뭐든지 하겠다는 본인의 강력한 ‘권력의지’와 주위 사람들의 열렬한 추대로 마침내 2009년 7월 카라 대표라는 ‘대권’을 움켜쥐었다. 그는 “당시 대표가 공석이었는데 영화 만드는 일이 힘들었지만 그 어떤 무엇에 끌려가듯 자리를 수락했다”고 말했다.

임순례가 카라의 대표가 된 데는 달라이 라마의 설법과 인도 다람살라 현지 여행의 영향도 적지 않았다. 원래 임순례는 가족 전체의 영향으로 가톨릭 신자였지만 15년 전부터 우연한 계기로 불교에 대해 막연한 관심을 갖게 됐다. 또한 해인사 부근 가야대학의 강의를 맡게 되면서 사찰의 법회에 참여하고, 불경을 읽으면서 불교에 대한 애정이 깊어졌다. 특히 그는 독서 등을 통해 티베트 불교가 불교의 본원적 가르침에 가장 가깝다고 여겨오다가 세 차례에 걸친 다람살라 방문을 통해 이를 더욱 확신하게 됐다.

임순례는 달라이 라마가 이끄는 티베트 망명정부의 소재지 다람살라에서 “모든 깨달음이나 지혜는 실천으로 완성된다”는 그의 설법을 듣고 큰 감명을 받았다. 동물사랑에 대한 자신의 견해와 입장이 결국 구체적으로 ‘동물을 실제로 사랑하는 것’으로 연결될 때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임순례의 가슴에 벅찬 감동으로 다가온 것은 사람과 동물의 평화로운 공존이었다. 동물들은 심지어 달라이 라마의 법회장소에도 아무 거리낌 없이 돌아다녔다. 사람들은 진심어린 자비심으로 먹을 것을 동물들에게 주었고, 수레바퀴에 벌레가 깔려 죽을 것을 염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이들은 개미통로를 만들어 개미들의 자유로운 통행을 돕고 있었다. 임순례는 “다람살라의 곳곳에서 뛰어노는 개, 고양이, 소, 원숭이, 당나귀는 모두 주인이 없는 자유의 몸이었고, 이들은 사람들과 자연스레 하나의 몸과 영혼으로 합쳐져 있었다”고 말했다.

다람살라에는 양계장도 없었다. 당초 사람들이 닭고기와 달걀을 얻기 위해 양계장을 짓자는 의견을 제시했을 때 달라이 라마는 “동물들에게 열악한 환경을 조성할 수 없으며 만일 공장식으로 닭을 키울 경우 사람에게도 재앙이 올 것”이라며 단호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임순례는 “그분의 말씀은 엄청난 지혜였다”고 말했다. 또 하나 놀라운 것은 다람살라에 돌아다니는 개, 고양이 등은 대부분 중성화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이었다. 동물들의 개체수가 지나치게 늘어날 경우 결국 동물들에게 비극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곳 사람들은 일찍이 알았던 것이다. 임순례는 “중성화 수술이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은 된다는 측면에서 동물 사랑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카라의 열성적 회원들은 대부분 평범한 생활인들이지만 이름이 널리 알려진 인사들도 적지 않다. 자신들이 직접 유기동물을 입양해 키우고 있는 유명인들은 가수 이효리, 배우 채시라·가수 김태욱 부부, 배우 김혜수, 성악가 조수미, 생물학자 최재천, 무용가 홍신자, 만화가 박재동 등이다. 카라의 회원은 아니지만 배우 김부선도 영화계에서는 동물애호가로 알려져 있다. 임순례는 “이효리, 조수미, 채시라 부부 등은 올해 초에도 마석에 와서 봉사활동을 하고 갔다”면서 “아무래도 유명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동물보호활동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임순례가 카라 활동을 하면서 지금도 가슴 뭉클한 그 무엇으로 남아 있는 것은 지난해 말 연평도 포격사건 직후 두 번에 걸쳐 섬에 들어가 굶주린 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개와 고양이 등을 돌본 일이다. 사진작가와 동물보호단체 활동가 등과 함께 연평도에 들어간 그는 주민들이 대거 섬을 떠나는 바람에 졸지에 유기동물 아닌 유기동물이 된 “아이들”을 끌어안고 쓰다듬어주면서 사료와 거처를 제공했다. 임순례는 “따지고 보면 한국전쟁 등에서도 동물들은 철저하게 버림받았을 것이 분명하다”며 “연평도 방문은 국가재난시기에 동물들을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해 깊이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고 말했다. 그에게 연평도의 평화는 사람에게뿐만 아니라 동물에게도 소중한 것이었다. 임순례는 “우리의 평화는 작고 소박한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거듭 힘주어 말했다.

2009년 11월 MBC 예능프로그램인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멧돼지 사냥놀이’ 코너를 주저앉힌 것도 카라의 주요 업적으로 꼽힌다. 당시 그는 피켓시위와 성명서 발표 등으로 압박했고, 결국 ‘박진감 있는 사냥’을 표방했던 그 프로그램은 저절로 막을 내렸다. 임순례는 “프로그램 연출자인 김영희 PD와는 평소에도 절친한 사이였지만 그 빈약한 동물감수성을 모른 체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구제역으로 350만마리의 짐승들이 생매장을 당했을 때도 임순례는 당연히 ‘동물권 보호’를 위해 앞장섰다. 그는 “일거에 수많은 생명들이 목숨을 잃었는데도 그 사건이 갖는 상징성과 현실성을 대중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사람도 먹고살기 어려운데 무슨 동물보호냐’는 주위의 비아냥에 대해 임순례는 “그런 말 하는 사람치고 소외된 이웃이나 더 어려운 이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고 단호히 말했다. 그에 따르면 사람에 대한 사랑을 거쳐 동물에 가는 것이며, 사람을 제치고 동물 보호로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또한 동물 후원자들은 대부분 인권 후원자들이며, 동물을 돌보는 것은 지구의 환경을 개선하는 동시에 인간 스스로의 삶을 개선하는 것이라고 한다. 임순례는 “동물과의 교감을 통해 인간의 영혼도 치유된다고 믿는다”면서 “사람 사랑과 동물 사랑은 결코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자신이 여러 마리의 개를 키우게 되고, 동물 보호에 대한 확고한 인식이 싹트면서부터 임순례는 채식주의자가 됐다. 영화판에서 ‘소주에 삼겹살’은 하나의 문화에 속하지만 그는 채식주의자의 지조와 절개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보신탕도 당연히 없어져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는 “동물보호법 개정, 개식용 반대, 실험동물·오락동물 반대, 농장동물 복지 증진 등이 카라의 중점 과제”라면서 “장기적으로는 동물원 반대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5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임순례는 어렸을 때부터 개를 업고 다닐 정도로 지독하게 개를 좋아했다. 집에서 기르는 개뿐만 아니라 동네 개들도 어린 임순례를 따라다녔다. 학교에 들어간 뒤에는 그의 어머니는 동네의 수십 마리 개들이 일제히 반갑게 짖는 것을 듣고 딸의 귀가를 알았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는 연탄가스에 중독돼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 부뚜막에서 자고 있던 ‘재롱이’가 낑낑대며 문을 긁어대는 바람에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하기도 했다. 임순례는 “어느날 재롱이가 죽는 바람에 너무 큰 충격을 받아 한동안 실성한 것처럼 돌아다녔다”고 말했다.

임순례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인천시 구산동으로 그가 어렸을 때만 해도 그곳은 충청·전라도에 올라온 이농민들이 주민의 절대다수인 빈민촌이었다. 친구 아버지들은 이른바 ‘노가다’로 불리는 일용직 건설노동자들이 많았고, 술 마시고 싸우는 일이 일상사였지만 아이들은 수십명씩 몰려다니며 즐겁게 놀았다. 임순례는 “특별히 가진 것 없고, 특별히 배운 것 없으며, 특별히 잘난 것 없는 주변부 삶에 대한 애착과 관심은 그때 형성되지 않았나 싶다”면서 “<와이키키 브라더스>나 <세 친구> 등 내가 심혈을 기울였던 영화들도 그것의 연장선에 있다”고 말했다.

임순례는 영화감독 입문 당시 “100만명이 보고 99만명이 잊어버리는 영화보다는 100명이 보고 99명이 잊지 않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각오를 다졌다고 한다. 지금도 그 같은 초심은 부인하고 싶지 않지만 이제는 “지금의 삶이 너무 힘들고 고단한데 사람들이 단 2시간 동안만이라도 재미를 느끼고 행복해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다”고 말했다.

◇ ‘인간과 동물의 교감’ 주제 영화 ‘미안해, 고마워’ 제작

영화 ‘미안해, 고마워’

영화 ‘미안해, 고마워’

영화관 곳곳에서는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인간과 동물의 교감을 주제로 한 <미안해, 고마워>의 시사회가 열린 16일 서울 왕십리 CGV는 영화가 주는 감동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관객들의 호응으로 가득했다. 남편 김태욱과 함께 시사회에 참석한 배우 채시라는 “너무 슬프고 감동적이었다”며 “동물들에게서 받는 사랑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내 울었으며, 버려진 동물들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평소 동물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널리 알려진 가수 이효리도 시사회장을 찾았다. 그는 “너무 많이 울어서 눈이 퉁퉁 부었다”며 “동물 보호다 뭐다 말만 하지 말고 이런 영화 한 편 보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이번 서울환경영화제 개막작이기도 한 <미안해 고마워>는 옴니버스 형식의 4부작으로서 임순례는 전체 제작을 총괄하는 한편 ‘고양이 키스’의 감독을 맡았다. 송일곤·오점균·박흥식 감독은 각각 ‘고마워, 미안해’ ‘쭈쭈’ ‘내 동생’을 연출했다. ‘고양이 키스’는 길 고양이를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딸과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아버지의 갈등과 화해의 과정을 담았다. 임순례는 “그동안 소도 찍어보고 개도 작품에 올렸지만 고양이는 처음”이라며 “개는 사람에게 금방 반응하는 데 비해 고양이는 그것이 없어 촬영에 아주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고마워, 미안해’는 세상을 떠나기 전 아들에게 마지막 선물로 자신의 반려견을 남긴 아버지의 이야기를 실었다. ‘쭈쭈’에서는 노숙자와 강아지의 우정이, ‘내 동생’에서는 여섯 살 소녀와 강아지의 따뜻한 관계가 그려진다. ‘내 동생’을 연출한 박흥식 감독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백구를 찾던 중 ‘보리’ 역으로 캐스팅했는데 백구의 너무나 빠른 성장속도가 문제가 됐다고 한다. 결국 세 마리의 백구가 ‘보리’ 역을 맡았다.

영화 상영에 앞서 ‘하늘이’ ‘사랑이’ ‘보리’ 등 주요배역을 맡은 ‘동물 배우’들이 ‘사람 배우’들과 함께 무대 인사에 올라 관객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이들은 관객들과 깜짝 포토타임까지 가져 더욱 주목을 받았다. 한편 이날 시사회에서는 동물과 사람의 평화적 공존이라는 영화의 취지에 동참하기 위해 ‘유기동물 후원 서명회’도 열렸다.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맨 뒷줄에서 관객들의 반응을 살폈다는 임순례는 “관객 특히 어린 학생들이 집중해서 관람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며 “영화의 교육적 효과를 감안한다면 학생층이 많이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미안해, 고마워>는 26일 개봉한다.

◇ 임순례 약력

△1960년 인천 출생 △한양대 영문과, 동 대학원 연극영화과 졸업 △파리 제8대학 영화과 석사 △영화 <우중산책> <세 친구> <와이키키 브라더스> <날아라 펭귄>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우생순> 연출 △1994년 제1회 서울단편영화제 대상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 NETPAC상 △1997년 스위스 프리브르그 영화제 페스탈로치상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