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년 통치의 종식과 김정은 체제

2012.01.09 21:43 입력 2012.01.10 09:52 수정
와다 하루키 | 도쿄대 명예교수

북한 지도자 김정일의 죽음이 동북아를 뒤흔들었다. 김정일은 2008년 뇌졸중 발작을 일으켰음에도 다시 일어선 후 국내외를 동분서주하며 쉬지 않고 행보를 이어갔다. 아버지 탄생 100주년에 강성국가 건설의 대문을 연다는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 과도하게 움직였다. 심장이 이를 못 이겨 죽음을 맞은 것이다. 현지 지도 중 열차 안에서 죽었다는 공식 발표에 말이 많았지만 발표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여도 문제는 없다. 자신의 몸 상태를 아랑곳하지 않고 무리해 숨졌다는 점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김정일은 1974년 후계자가 돼 ‘당 중앙’의 칭호를 얻은 후 김일성이 숨질 때까지 20년간 권력 계승자로서 준비를 쌓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20년간은 김정일이 김일성 체제와 유격대 국가의 설계자, 연출가로서 중대한 역할을 한 시간이었다. 유격대 국가는 전 국민이 수령 김일성을 사령관으로 하는 항일유격대의 대원이라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국가를 일컫는다.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 당 서기이자 인민군 최고사령관인 김정일은 유격대 국가를 정규군 국가, ‘선군정치’로 대개조했다. 정규군 국가란 조선인민군이 국가의 기둥이며, 혁명적 군인정신이 국민정신, 국방위원장이 최고지도자인 국가다. 김정일은 국가 권력을 계승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와다 하루키 칼럼]65년 통치의 종식과 김정은 체제

김정일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세계의 이목은 후계자 김정은에게 집중됐다. 2009년 가을 공식석상에 등장한 후 후계자로서 1년간 부친의 현지지도를 수행하는 김정은의 모습이 자주 비쳐졌다. 김정일의 장례식과 추모대회를 통해 후계자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다했다고 본다. 그러나 그에게는 대장,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당 중앙위원이라는 칭호만 부여됐다. 김정일이 갖고 있던 국방위원장, 당 총서기,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 군 최고사령관 등 4개 호칭 중 하나도 따라붙지 않았다. 자신의 죽음이 갑작스레 닥칠 것을 각오했을 김정일이 왜 후계자로 지목받고 있는 아들에게 이들 직함 중 하나도 넘겨주지 않았을까. 이는 분명 김정일이 그렇게 돼선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김정일은 2010년 9월 당 대표자회에서 아들 김정은을 공식석상에 내세움과 동시에 당 중앙 기구를 재건했다. 선군정치의 중핵은 최고사령관의 정치, 국방위원장의 정치다. 2009년 헌법 개정에 의해 국방위원장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지도자’이고, 최고사령관을 자동적으로 겸직하게 돼 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아들이 당장 국방위원장이 돼 북한을 움직여나가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국방위 제1부위원장인 조명록이 죽은 후에도 후임을 정하지 않았다.

결국 김정일은 자신이 죽은 후, 재건된 당 중앙과 후계자 김정은의 협의하에 자연스럽게 국가가 운영되길 바랐던 것이다. 이것이 ‘계승’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자의 선택이었다.

김정일의 영결식은 12월28일, 추모대회는 29일 열렸다. 영결식에서는 영구차를 둘러싸고 걸어가는 사람들의 면면이 주목받았다. 추모대회에서는 김영남 당 상무위원·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추모사를 낭독했다. 이어 당을 대표해 김기남 노동당 비서가, 군을 대표해 김정각 총정치국 제1부국장이, 청년을 대표해 리용철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제1비서가 연설했다. 김영남의 추모사에는 ‘선군혁명’에 대한 언급은 있었지만, 국방위원장으로서 김정일이 남긴 업적에 대한 언급이 없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또 김정각은 국방위원이지만 그 직함은 보도되지 않았다.

그리고 12월30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은 회의를 열어 김정은을 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추대하기로 결정했다. 국방위원회와 당 중앙군사위원회가 관여하지 않고 당 상무위원, 당 정치국원만이 모여 국방위원장이 겸직해야 할 최고사령관 인사를 결정했다는 것은 무얼 의미하는 걸까.

여기서 김정일의 죽음과 비교할 수 있는 스탈린의 사망을 되돌아보자. 옛 소련 지도자이자 전 사회주의 세계의 지도자 스탈린의 죽음 전후의 상황은 다소 복잡하다. 그는 1953년 2월28일 밤 말렌코프, 베리야, 흐루시초프, 불가닌 4명과 함께 크렘린에서 영화를 보고 난 후 그의 별장에서 식사를 했다. 3월1일 오전 4시께, 손님들은 돌아가고 스탈린은 침실로 들어갔다. 그러나 낮이 되어도 스탈린은 기척이 없었다. 오후 6시가 지나 방에 불이 켜져도 마찬가지였다. 그 후 스탈린은 일어났지만 뇌졸중 발작을 일으켰다. 경호원은 밤 10시30분이 돼 우편물을 전한다는 이유로 집 안에 들어가 부엌에 쓰러져 있는 스탈린을 발견한다. 그러나 연락을 받고 도착한 말렌코프와 베리야가 스탈린은 숙면하고 있다고 말해 스탈린은 방치됐다. 의사를 부른 것은 3월2일 오전 7시30분쯤이었다. 치료는 그때부터 시작됐다. 오후 8시 당 간부회가 대책을 논의했다. 3월3일은 아무 일 없이 지나고 3월4일 아침이 되자 방송은 스탈린이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중태라고 발표했다.

스탈린은 암살을 두려워했고 간부들과의 관계에서도 긴장감이 돌았다. 그는 몰로토프와 미코얀을 의심해 멀리하고 있었다. 베리야와의 사이에도 갈등의 골이 있었다. 이 때문에 쓰러진 스탈린은 방치됐다.

3월5일 오후 8시. 당 중앙위원회 총회와 각료회의, 최고소비에트간부회 합동회의가 열렸다. 후계 체제를 결정하는 회의였다. 230명 정도 모였다. 흐루시초프가 의장을 맡았고 보건장관이 스탈린의 병상을 보고했다. 이어 후계자로 주목받던 말렌코프가 “어떤 혼란과 패닉도 있어서는 안된다”며 즉각 후계 체제를 결정할 것을 제안했다. 이어 베리야가 간부회에서 총리 후보로 말렌코프를 만장일치로 정했다고 밝혔다. 그러자 말렌코프가 제1부총리로 베리야, 몰로토프, 불가닌, 카가노비치 4명을 임명할 것을 제안, 승인됐다.

회의 1시간 후 스탈린은 숨을 거두었다. 다음날인 3월6일 오전 6시, 모스크바 방송은 ‘레닌의 전우이자 천재적 계승자, 공산당과 소비에트 인민의 영민하고 총명한 수령이자 교사인 소련 총리, 소련공산당 서기 이오시프 스탈린’의 사망 소식을 발표했다.

스탈린의 장례식은 3월9일 붉은광장에서 치러졌다. 장의위원장 흐루시초프와 말렌코프, 베리야, 몰로토프가 연설했다. 말렌코프 총리는 평화공존과 국민의 생활수준 향상을, 베리야 내무장관은 헌법이 보장하는 인권의 존중을 언급하며 소련을 구성하는 민족공화국의 단결을 강조했다. 스탈린 정치에 두려움을 느끼던 후계자들은 곧바로 스탈린의 정치에서 멀어지기 위한 국정운영을 시사했다. 울고 있는 국민이 변화를 바란다는 점을 감지하고 그 마음을 잡으려 한 것이다.

이렇게 절대적 독재자 스탈린의 사후 소련은 당 간부회를 통해 집단지도체제로 이행했다. 그 후 1953년 6월 베리야가 체포되고 1955년 2월에는 말렌코프가 총리직을 사임, 흐루시초프 중심의 체제가 탄생했다. 그리고 1956년 3월 흐루시초프에 의해 스탈린 개인 숭배 비판이 전개됐다.

소련의 경우와 비교하면 김정일은 스탈린처럼 주변 인물들에게 공포를 심지는 않았다. 후계 체제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당 중앙위원회 총회, 각료회의, 최고소비에트간부회 합동회의를 통해 당과 정부 인사를 한번에 바꾼 소련과는 달리, 북한은 정치국 회의만 열어 김정은의 최고사령관 추대만 결정한 게 중요하다.

김정은에게 최고사령관의 지위로 첫 출발시킨 것은 김정일과 같은 길을 걷게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국방위의 위치가 낮아진 것은 왜일까. 지금부터 단계를 밟아 김정은을 국방위원장으로 승격시킬지, 아니면 국방위의 헌법적 위상을 수정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어쨌든 김정일 시대처럼 국방위원장이 국가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체제로는 되지 않을 듯싶다.

김정은의 최고사령관 추대를 당 정치국이 결정한 것은 역시 당 정치국이 지도하는 국가, 당 국가 체제를 주장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정규군 국가 체제는 최고사령관인 후계자를 우두머리로 모신다 해도 당 국가 체제로 이동하지 않을까.

정치국의 정치는 합의의 정치다. 그리고 전문성 있는 자가 책임을 분담하는 정치다. 군은 리영호·김영춘·김정각이, 외교는 강석주·김영일 라인이 책임을 지는 구조가 될 것이다. 이에 김정일의 죽음은 김일성, 김정일이라는 강력한 지도자에 의한 65년 통치의 끝을 의미한다.

<번역 | 고영득 기자 god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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